풍수지리

안동풍수기행 현장답사(소산마을)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2. 4. 8. 21:36

안동풍수기행 현장답사(소산마을)을 다녀와서

 

우리는 수2리 서애선생산소 답사를 마치고 소산 역골로 가서

한성부판관 김계권선생 내외분 묘소를 답사하고 나와서

삼구정을 답사하였다.

 

 역동재사앞에 주차를 하고 

우리는 좌측능선에 있는 판관공 산소를 답사하였다.

 

준비하여간 주과포로 참배를 드린 후

후손이신 김회동회원님이 집안의 유래를 설명하시었다.

 

판관공은 안동김씨 소산마을 입향조이신 비안현감의 자제이며

판관공의 동생이 묵계서원에 모셔진 보백당 김계행 이시다.

맏아들은 한글창제에 많은 공을 세우시고

세조의 국사로 지내신 등곡(학조)대사이며

판관공이 돌아가시고 6년동안 상복을 입고 계시던

등곡대사에게 세조가 상복을 벗지 못 하는 이유를 물으니 

아직 판관공을 모실 터가 없어서 모시지 못 하였다면서

 역골에 터가 있으나 역이 있는 곳이라 장사지내지 못 한다고 하니

세조가 역을 새역마로 옮기게 하고 쓰여진 묘소가 이곳

창평부수형(蒼萍浮水形:푸른개구리밥이 물 위에 떠있는 형국)이라 한다.

 

등곡대사가

아버지 판관공과 조카 김번의 산소를 명당으로 잡아서 모신 후

후손들이 발복을 받아서 크게 번창하였으며

金璠의 후손들은 서울 장동에 거주하면서

조선말 60년 세도정치를 주도하여 한 시대를 살아왔다고 한다.

 

판광공 산소의 위쪽에 자리한 산소의 배위 예천권씨는

5형제를 관직에 내보내고 자식들이 지어준 삼구정에서

자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88세까지 사셨던 분이라 한다.

 

이완규선생은

이 곳은 내룡을 확실하게 알수 있는 곳이며

내룡이 힘있게 내려오다가 좁아지는 곳이 생기면서

내룡의 힘이 기복, 굴곡 등 변화가 많이 생겨나서 명당이 있으며

판관공산소 아래에 산소가 있는 것은

혈처의 지기가 넘처 흘럿거나

 지기가 멈추지 못하고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역골입구의 저수지(蒼萍半月蓮花浮水池)

지기를 모으기 위한 비보풍수라고 설명을 하였다.

 

우리는 산을 내려와

소산마을입구에 주차를 하고 삼구정으로 올라 갔다.

 

소산(素山 138m)은 낮고 규모가 작은 산이지만

상당한 역량과 포근한 기세를 품고 있는 산으로

풍산들이 내려보이는 소산마을은 金山村이라 불렀으나

병자호란(1636)때 낙향한 청음 김상헌선생이

'김가가 사는 곳을 금산이라 하면 너무 화려하고 사치스럽다

모름지기 검소하다는 소산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여 바꾸었다.

마을의 좌청룡 언덕인 東吳의 끝에 삼구정이 자리하고 있다.

 

소산마을은 같은 본관 '안동김씨'로 쓰는 두 성씨가 살고 있다.

경순왕의 넷째인 김은열의 둘째아들 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상락군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선안동김씨와

고려개국공신 삼태사의 한분으로 태사공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후안동김씨의 후손들이 함께 살아오는 마을이다.

 

마을입구에는

안동김씨 자손으로 소산출신과 연고가 있는 분들의 솟대가 복원되어 있었고

청음선생의 시비와 삼당선생의 한글시를 한자로 번역한 시비를 구경하면서

삼구정에 오르니 입구에 돌거북이 세 마리가 자리를 하고 있었으며

시원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삼구정에서 내려다보는 주변은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함을 느낄수 있는 위치였다.

 

우리는 소산마을 답사를 마치고

보충설명을 상세히 하여주신 김회동 회원님께 감사드리며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인 가을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