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강유의 다섯 번째 출정과 동오의 정권 교체( 2 )

오토산 2022. 5. 17. 07:57

삼국지(三國志) .. (409)
강유의 다섯 번째 출정과 동오의 정권 교체( 2 )

호림 땅에서 낭야왕(琅琊王)으로 있는 손휴(孫休)는

손권(孫權)의 여섯째 아들 이었다.

 

손휴가 밤에 자다가 꿈을 꾸는데,

자신이 용이 되어 하늘을 짓쳐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용의 꼬리가 없는 것이 보여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 이튿날,

조정의 종정 손해(宗正 孫楷)와 중서랑 동조(中書郞 董朝)가

손휴를 찾아와서 공손히 절을 하더니 청했다.

 

"도성으로 돌아가시지요."

 

손해와 동조는 손침의 명에 따라

낭야왕 손휴를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손휴는 자세한 내막은 모른 채 둘을 따라 나섰다.

 

일행이 곡아(曲阿)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다가와 자신의 이름은 간휴(干休)라고 밝히면서 머리를 조아려 말한다.

 

"지체하시면 반드시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속히 떠나소서."

 

손휴는 다시 길을 떠나 포색정(布塞亭)에 이르렀다.
손은(孫恩)이 어가를 준비해놓았다가 손휴에게 타기를 권했으나

손휴는 감히 황제의 어가를 탈 수는 없다고 사양하고 
작은 수레에 몸을 싣고 도성으로 들어갔다.

 

도성 내 길가에 문무백관이 일렬로 늘어서서 손휴에게 절을 하며 맞이했다.
손휴가 수레에서 내려 답례를 하려는데,

손침이 나오더니 곧장 손휴를 대전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어좌에 오르시지요.

폐하."

 

손침의 말에 손휴는 거듭하여 사양하다 결국 옥새를 받아 쥐었다.
그리고 연호를 태평(太平) 3년(258)에서 영안(永安) 원년으로 고쳤다. 
손침은 스스로 승상(丞相) 겸 형주목(荊州牧)에 올랐고,

조카 손호(孫皓)를 오정후(烏亭侯)에 봉했다.

 

이로써 손침의 가문은 제후가 다섯이나 되었고,

그들이 모두 금위군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 권세가 황제를 누를 지경이었다. 
오주 손휴는 혹시 손침이 무슨 변란이라도 일으키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겉으로는 은총을 내리면서도 속으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방비하고 있었다.
손침의 교만방자한 태도는 날이 갈 수록 극심해졌다.

영안 원년 12월,

손침은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에서 쇠고기와 술을 가지고 입궐했다.
그러나 손휴는 어떤 음모가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것을 받지 않았다.

정성을 거절 당하자 손침은 화를 내며 그 쇠고기와 술을 도로 가져다가
좌장군 장포(左將軍 張布)에게 들고 가서 함께 먹고 마셨다.

술이 얼큰하게 오르자 손침이 장포에게 속내를 말한다.

 

"내가 회계왕을 폐했을 때,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직접 제위에 오르라고 권유했으나

내가 지금의 황제가 어질고 덕망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데려다 옹립(擁立)했네.

그런데 오늘 나의 축수(祝壽)을 거절하더군.

나를 무시하는 것이 틀림없네.
두고 보라지. 내 조만간에 뭔가를 단단히 보여줄테니!"
장포는 손침의 말씀이 그저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장포는 궁에 들어가 손휴에게 손침이 했던 말을 은밀히 아뢰었다.
손휴는 제위에 오를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손침에게서 직접 그런 말이 나왔다니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며칠 후,

손침은 중서랑 맹종(中書郞 孟宗)에게 중영(中營) 소속

정예병 일만 오천 명을 내주어 무창(武昌)에 주둔하게 하고,

무기고에 비축한 무기들을 모조리 꺼내다 군사들에게 무장하게 하였다.
장군 위막(將軍 魏邈)과 무위사 시삭(武衛士 施朔)은 손휴에게 그 사실을 은밀히 고했다.

 

"손침이 정예병을 도성 밖으로 빼내어 훈련시키고,

무기고의 병기도 모두 옮겨갔습니다.
손침이 변란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하옵니다."

 

손휴는 대경실색하여 급히 장포를 불러서 상의했다.
장포는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 대책을 아뢴다.

 

"정봉(丁奉)은 지혜가 출중한 백전노장이옵니다.
큰일을 도모할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오니

그와 더불어 의논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손휴는 곧바로 정봉을 불러다 사정을 설명하고 계책을 물었다.
정봉이 자신있게 말한다.

 

"폐하, 근심하지 마옵소서.
신에게 나라의 적을 처치할 계락이 있사옵니다."

 

"계책이 무엇이오?"

 

"내일은 납일(臘日, 조정에서 제사 지내는 날)이니,

군신대회를 연다는 명목으로 신하들을 모두 부르십시오.
손침 또한 그 자리에 참석할테니 그 후엔 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나이다."

 

시원시원한 정봉의 말에 손휴는 한 시름 놓았다. 
정봉은 퇴궐과 동시에 위막과 시삭을 불러 궁 밖에서

해야할 일을 지시하고, 장포를 불러 궁궐 안에서 할 일을 지시했다.

 

이날 밤,

광풍이 크게 일면서 모래와 돌이 흩날리고

땅에 단단히 뿌리 박혀 있던 고목들이 뿌리채 뽑혀 쓰러졌다.
다음날 날이 밝아서야 바람은 잦아들었다. 

 

궁궐의 사자가 칙명을 받들고 나와서

손침에게 궁중의 잔치에 참석하라는 황제의 명을 전했다.
손침은 그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마치 누가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혼자서 나자빠진 일 때문에 기분이 찝찝하며 잔치에 참석할 기분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입궁할 마음을 먹고 채비를 했다.
그런데 아내가 나서서 손침을 말린다.

 

"지난 밤 광풍이 몰아친데다

오늘 아침에는 까닭도 없이 놀라 넘어지셨으니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오늘 연회에는 참석하지 마십시오."
손침은 만류하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며 말한다.

 

"내 형제 다섯이 모두 금위군을 거느리고 있는데

어떤 놈이 감히 내 곁에 접근할 수 있겠소?
그래도 혹시 무슨 변이 생기면 부중에서 불을 올려 신호를 보내 주시오."

 

아내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손침은 궁궐로 가는 수레에 몸을 실었다.
오주 손휴는 손침이 들어서자 황급히 어좌에서 내려와

그를 맞이하고 상석에 앉기를 권했다.
잔치가 시작되고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였다. 

 

"궁 밖에 불이 났다!"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손침은 아내에게 부탁했던 말이 떠올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데, 손휴가 말리며 말한다.

 

"승상, 편히 앉아 계시오.
밖에 근위병이 호위하고 있는데 무얼 걱정하신단 말이오."

 

손휴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좌장군 장포가 칼을 들고 무사 서른 명을 거느린 채

대전으로 뛰어오르더니 목청 높여 외친다.

 

"칙명을 받들어 역적 손침을 체포한다!"

 

손침은 기겁을 하고 달아나려 했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무사들에게 붙잡혀 끌려내려갔다
손침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오주 손휴에게 통곡하며 애걸한다.

 

"폐하,

부디 용서해 주소서!
교주(交州) 시골 땅으로 귀양보내 주시오면
저는 밭이나 갈며 조용히 살겠으니 목숨만 살려 주시옵소서."
손휴는 헛웃음을 짓고 말한다.

 

"네 손에 죽은 여거(呂擧), 등윤(滕胤), 왕돈(王惇)이

지하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시골 땅보다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여봐라! 당장 이 역적을 잡아다 목을 쳐라!"

 

황제의 명에 따라 장포가 손침을 대전 동쪽 모퉁이로 끌고 가서 처형했다.
손침을 따르던 측근 호위병들은 군주가 보인 위엄에

사색이 되어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장포가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이 모두 듣도록 칙명을 선포한다.

 

"죄는 손침 한 사람에게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누구도 문책하지 않겠다."
그제야 손침의 부하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폐하, 오봉루(五鳳樓)에 오르시지요."

장포가 손휴에게 청했다.

 

그때,

정봉이 위막, 시삭 등과 함께 손침의 다섯 형제들을 붙잡아 왔다. 
손휴가 말한다.

 

"너희 또한 역적 손침의 권력을 자기 것처럼

이용하여 국정을 문란하게 하였으니
그 죄가 손침에 못지 않다.
이 자들을 모두 저잣거리로 끌고가 참수형에 처하라!"

 

손침과 더불어 손침의 오형제, 그 삼족과 일당 수백 명은

손휴의 지엄한 명에 모두 목이 달아났다.

 

뿐만 아니라,

손휴는 앞서 죽은 손준(孫峻)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끌어내 그 목을 자르게 했다.

 

손휴는 그들에게 목숨을 잃었던 제갈각, 등윤, 여거, 왕돈 등의 무덤을 크게 다시 만들어

그들의 충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먼 곳으로 귀양 가 있던 충신들을

모두 풀어주어 고향에 돌아가도록 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주도한 정봉 등에게는 상을 후하게 내리고 벼슬을 올려주었다.
이로써 손침과 그 일가의 횡포는 잠재워지고 권력은 군주에게로 돌아갔다.

410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