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국학아카데미에서 예천 용문사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4. 5. 15. 17:07

국학아카데미에서 예천 용문사를 다녀와서

 

부처님오신날을 하루앞둔 5월 14일 

정충사를 떠난 우리는 14:40 소백산 용문사에 도착을 하였다. 

 

용문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예천군 문화관광과장으로 퇴직을 하셨다는 문화해설사님이

용문사로 이름 붙여진 많은 사찰 중 경기 용문사는 머리로,

예천 용문사는 허리, 남해 용문사는 꼬리로  일컬어 지고 있으며

예천 용문사는 고려를 건국하신 태조(왕건)이래로 왕찰로서 이어져 

해운루와 보광명전, 자운루와 대장전이 일직선을 이루는 대가람으로

문효세자와 제현왕후의 태실이 주변에 있기도 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해설사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사찰탐방을 하였다.

 

소백산 용문사(小白山 龍門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870년(경문왕 10) 두운(杜雲)스님이 이 산의 동구에 일르렀을 때

용(龍)이 영접을 하여서 용문사라 하였고 절을 지을 때 나무둥치 사이에

16냥의 은병(銀甁)을 캐어서 공사비로 충당을 하였다고 전하며

절의 남쪽에 9층 청석탑(靑石塔)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는데

4층탑 위로 오색구름이 탑 둘레를 돌았다고 전한다.

 

고려태조가 후삼국을 정벌하던 중 군사를 거느리고 이 절에 머물면서

큰 절을 일으키겠다고 맹세하고 936년(태조 19) 칙명으로 중건하였으며

두운의 법맥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1171년(명종 1) 태자의 태를 보관한 뒤 

창기사(昌期寺)로 바꾸고 축성수법회(祝聖壽法會)를 열었다고 전하며

1478년(성종 9) 소헌왕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산 용문사로 바꾸었고

1783년 문효세자(文孝世子)의 태실을 봉안하고 소백산 용문사로 바꾸었다.

 

우리는 사찰 경내를 한 바퀴 돌았는데

대장전을 보수 중이어서 부처님은 출타를 하셨고

보광명전에 참배를 하고 사찰을 나왔으나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사찰은

오색등으로 단장은 되어 있으나 왠지 조용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용문사를 가는길에 황만기 교수님은 

예천에는 사찰이름이 지명으로 사용된 곳이

용문, 보문 지보 등 세 곳이나 된다 설명을 하시며

 현(縣)이상의 고을이라야 본관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는 설명과

용문사 윤장대는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삼월 삼짓날과

구월 중구날에만 개방을하고 평상시에는 성보관의 모형윤장대를

돌릴수 있다고 하셨다.

 

사찰탐방을 마치고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의 자비가 온누리에

충만하시길 빌며 15:20 초간정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