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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과 함께한 한밤마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시행하는 ☞시민을 위한 국학아카데미☜에서
현장학습으로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을 방문을 했다.
돌담과 함께한 缶林洪씨의 터 한밤마을은 행정지명은 大栗里이지만
한밤마을로 더 알려져있으며 부림홍씨가 대성을 이루고
영천최씨, 전주이씨도 이웃하여 살고 있다.
부림홍씨宗宅은 景節堂을 비롯하여 중시조 9세손 敬齋 洪魯선생의
불천위를 모신 사당과 祭典廳등 5동의 건물이 있었다.
경재선생은 1366년출생 25세별시문과급제하여
포은 정몽주의 천거로 翰林院에 들어가 문하사인에 올랐으나
려말 국운이 기울자 落鄕하여 두문불출하시다
1392.7.17.고려가 망하던 다음날 의관정제 북향사배후
'신은 나라와 함께 죽나이다'하고 자리에서 운명하시어
충현 72현으로 두문동서원과 전남 장성 경현사에 봉안되었다.
그후 자손들이 '불사이군의 정신'을 이어받아
벼슬길에 나가지 않다가 정조이후에 벼슬에 나갔다.
대율리 大廳은 조선전기건립후 임란때 소실되었다가
현재 건물은 수차례 중건하여 1992년에 완전해체복원하였다.
마을서당으로도 사용하다가 현재는 마을집회장소로 사용된다.
전설에 의하면 대율리전체가 신라시대에는 사찰터이었고
이곳은 종각이었던곳으로 마을의 모든길이 여기로 집중되어있다.
남천고택은 부림홍씨 문중에서 제일 큰집으로 19세손 雙栢堂 洪宇泰의
살림집으로 興자 형태로 지었으나 일부만 남아 고택체험을 하고있으며
우리가 돌아볼때도 체험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밤마을의 돌담장은 대청으로 모여들고 대청에서 퍼져가며
돌담사이로 꼬리를 감추는 4.7km가량의 길이라 한다.
돌담의 돌들은 마을안에서 나온 강돌을 모아서 싼것이며
박정희대통령시절의 새마을사업시에 좁은마을길을 확장하였다.
종손이 한복을 입지않고 안내를 드려서 죄송하다며
문중의 모든의례를 1300년전의 송대의례를 지키는것보다는
현실에 맞게 많이 개혁을 해가고 나가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조상중에 종헌아라는 조상이 있어 삼헌시에 종헌을
종헌이라 부르지 않고 삼헌이라 부른다는 설명이 현실적이었다.
오늘 우리들을 안내해주시고 대문앞에서 일일히 인사를 하여주신
부림홍씨 24대종손 내외분께 감사를 드리고
상세한설명과 친절한 안내를 하여주신 군위군 문화원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한밤마을이 명칭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栗里, 栗村, 一夜, 大夜등으로 부르던 마을을 신천강씨가 살면서
一夜로 불러왓으나 950년경 부림홍씨의 입향조가되는 홍란(洪鸞)이
인근 남산리에서 이거하면서 大夜로 고치고
1390년 무림홍씨 11대손 洪魯는 밤야(夜)를 밤율(栗)로 고쳐서
大栗로 고쳐서 지금까지불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자말은 변했어도 우리말로는 달라진게 없다.
일(一)이나 대(大)는 '크다','많다','하나다'라는 뜻의 '한'이라는 우리말이고
夜)는 栗이던 우리말로 소리나는 '밤'이니 '한밤'이 되는것이다.
여기서 우리말의 우수성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네요
고택체험중인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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