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문화

조선의 상징적거리 광화문앞 6조거리(갈지)

오토산 2014. 9. 17. 22:28

 

 

 

 

 

 

 

六曹 거리 광화문 

 

★조선의 상징적 거리 광화문 앞 6조(六曹)거리★

 

 

임금이 계시는  

정전의 정문인 광화문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  

의정부(議政府=현재의 국무총리실)  

이조(吏曹= 지금의 내무부) 

한성부(漢城府 =지금의 서울 시청) 

호조(戶曹 =지금의 재정경제원)가 차례로 있었고 

서쪽에  

예조(禮曹= 지금의 외무부,교육부)  

병조(兵曹= 지금의 국방부)  

형조(刑曹 =지금의법무부) 

공조(工曹= 지금의 건설부)가 차례로 있었다.

 

 

그 복판으로난 길이라 해서 6조(六曹)거리라 했다 

조광조가  

도학정치를 펴다가 모함을 받고서 옥에 갇히자  

성균관을 비릇한 장안의 유생들이 

이 六曹(육조 = 여섯개의 관청=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궐문을 밀치고 난입  

궐병(궁궐수비대 병사)들과 싸우는 바람에 유혈이 낭자했다. 

 

옛 六曹 거리는  

민심의 공감이 분출되는 시위의 현장이였으며 

정부에 항의하는 4.19와 6.3의 학생데모가 

이곳에서 벌어졌음도 우연이 아니다.

 

6조 거리엔 

큰 구경꺼리가 있었는데 만인산(萬人傘) 행열이었다. 

시골의 현감과 군수들이  

자신의 치적들을 六曹의 벼슬아치 들에게  

과시 하고자 벌이는 헤프닝인 것으로  

커다란 양산에 수령의 치적을 적은 베 나부랭이를  

주렁주렁 매어 달고  

 

이를 성장한(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생에게 들려 말을 태운 후 

<아무개 고을 마무개의 만인산 나들이요!> 하며  

삼현육각을 앞세워 이 6조거리를 수십차례 왕복했다고 한다. 

 

 

 

1892년의 광화문 육조거리를 묘사한 그림

 

 

 

 

 

 

 

 

 

 

 

 

 

 

 

 

 

 

 

 

 

 

 

 

 

 

 

 

 

 

 

 

 

 

 

 

 

 

 

 

 

지금의 서울 시청격인 한성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