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비(比) [ㅡ, 水地比] 경쟁의 생활 속에서
진정한 스포츠맨쉽의 알파와 오메가
경쟁은 전쟁과 다르다.
전쟁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
하지만 경쟁은 정정당당해야 한다.
승부보다 과정을 중시할 수 있어야 지더라도 얻을 것이 있다.
지나치게 승부에만 집착하면 실령 이기더라도 차라리 지는 것만 못하다.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 夫 凶
有孚比之 无咎 有孚盈缶 終來有他 吉
比之自內 貞 吉
比之匪人
外比之 貞 吉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比之无首 凶
인간이 사회는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 그러므로 경쟁 자체는 길한 것이다.
인간이 서로 견주고 경재함음 인류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그 자체가 허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에서의 첫 번째 도(道)는 정정당당하게 이기는 것이다.
정당하지 못한 승리자는 아무리 성공했다 하더라도 끝에는 결국 흉하게 된다.
경쟁에는 또한 질그릇같이 순수한 믿음이 있어야 허물이 없다.
경쟁이 끝난 후에 상대방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경쟁에서 진실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잠재능력, 내적인 힘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상대와 나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경쟁의 결과는 그 다음이며, 경쟁의 최종적인 승패는 인간이 정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경재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당당하고 힘찬 태도도 중요하다.
이런 자신감과 성실성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한 싸움이 아닌 경쟁이라면 여유와 아량 또한 중요한 덕목이다.
예컨데 삼구(삼구)의 그물로 사냥을 하고, 왕의 면전에서 사냥감을 놓쳐도 백성들이 이 때문에 두려워 떨지 않는다면,
이런 경쟁이야말로 길하다.
모든 경쟁에는 조력자로서의 스승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흉하다.
比 吉 (비 길)
비(比)는 한마디로 이것과 저것을 비교한다는 말이니, 승패를 가리는 경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이나 인간사회는 결국 모두 이 경쟁을 바탕으로 해서 유지되고 발전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경쟁이 없었다면 인간은 결코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개인들의 경쟁, 더높은 학문과 기술을 위한 공동체들 사이의 경쟁, 더 펴닐하고 고도화 된 사회 시스템을 위한 국가들 사이의 발전 경쟁이,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탄생시킨 장본인인 것이다.
그럼 면에서 경쟁은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다. 그래서 <주역>은 이를 吉하자고 하였다. 물론 이때의 경쟁은 동물들의 생존을 위한 먹이 싸움이나 인간의 전쟁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싸움과 전쟁은 凶한 것이라고 <주역>은 바로 앞의 장에서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여기서 경쟁은 오늘날의 스포츠 경기, 혹은 경제적인 면을 위시한 일체의 발전적인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경쟁만이 吉하다.
原筮 元永貞 无咎 (원서 원영정 무구)
그렇다면 경쟁은 인간이 태어나서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당연히 인류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 경쟁도 시작되었다. 그것이
원서(原筮)이다. 운서는 직역하면 처음을 점을 친다는 의미지만 여기서는 인간의 탄생과 함께 처음부터 경쟁도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또 경쟁은 언제 끝이 나게 되는 것일까? 인류의 삶이 있는 한 모든 개인과 공동체가 완벽하게 행복해지지 않는 한 경쟁은 끝이 날 수 없다. 당연한 이치다. 그것이 바로 <주역>이 말하는 원영정(元永貞)의 의미다. 元과 貞은 각각 元亨利貞의 처음과 끝, 인류의 시작과 종말, 무극(无極)과 멸극(滅極)의 시절을 의미하는데, 겯쟁은 그 사이에 영원히(永)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자체가 나쁘다거나 흉하다 할 수 없다.
경쟁은 인류의 턴생과 함계 시작된, 인류의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 될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 그 자체는 허물이 없다(无咎). 문제는 경쟁에 임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인 것이다.
不寧方來 後 夫 凶 (불녕방래 후 부 흉)
피할 수 없는 아니 어떤 면에서 권장해야 할 경쟁(스포츠 경기라 생각하자)에 나서는 사람들의 첫 번째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넓게 말하면 스포츠맨쉽이요, 좁혀서 말하면 정정당당한 대결일 것이다. <주역>은 이를 녕(寧)이라 표현했다. 서로에게 편안하고 공정한 경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불녕방래(不寧方來)는 편안하지 못하게 경쟁에 임하는 것,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경쟁에 나서는 태도를 말한다.
이렇게 공정하고 정당하지 못하게 경쟁에 임하면(不寧方來), 우선 크게 성공하드라도(夫) 뒷날 결국은 凶하게 된다고 <주역>은 경계하고 있다. 夫는 장정, 큰 사람, 성공한 사람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경쟁의 승리자를 의미한다. 정당한 범위를 넘어선 경쟁에서 거둔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될 수 없다는 오히려 화(禍)의 근원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부도덕한 경쟁, 불합리한 거래로 인한 폐해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有孚比之 无咎 有孚盈缶 終來有他 吉 (유부비지 무구 유부영부 종래유타 길)
유부(有孚)의 부(孚)는 믿음, 신뢰, 확신을 의미하는 글자다. 그러므로 유부비지(有孚比之)는 경쟁(比之)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믿음(孚)이 있어야 (有) 한다는 말이고, 그래야 허물이 없다(无咎)고 했다. 그런데 이때의 믿음(有孚)은 질그릇을 채우고 넘치게 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질그릇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이요, 여기에 차고 넘친는 믿음이란 충분하고도 폭넓은 믿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경쟁에 필요한 믿음은 여러 가지이다. 자기의 승리에 대한 확신, 그동안의 노력과 연습에 대한 확신, 경쟁의 공정함에 대한확신, 승리에 따르는 영광의 확신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 상대에 대한 믿음도 있어야 한다. 상대 역시 나와 똑같은 입장에서 똑 같은 목표를 향해서 , 똑같이 공정하고도 당당하게 경쟁에 나서고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래야 경쟁이 끝난 뒤에 다시 형제처럼 가까워질 수 있고, 승패에 상관없이 경쟁을 경쟁 자체로 끝낼 수 있게 된다.
종래유타(終來有他)는 이처럼 경쟁이 끝난 뒤에(終來) 상대(他)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것(有)을 의미한다. 국간 간의 스포츠 경기가 끝난 뒤에 양팀의 선수들이 서로 끌어안고 악수를 나누고, 옷을 바꿔 입고 하는 순간을 생각해 보면 <주역>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만약 스포츠 경기가 아니고 전쟁이었다면, 그 종료 후의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이것이 전쟁과 경쟁이 다른 점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까지를 포함하는 선의의 경쟁으로 가야 吉하다고 <주역>은 가르친다.
比之自內 貞 吉 (비지자내 정 길)
경쟁은 어쨌던 승패를 가리는 일종의 싸움이고, 싸움에서는 항상 어떻게 승리를 거둘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주역>이 말하는 승리의 첫째 조건은 바로 비지자내(比之自內)다. 자내(自內)는 경쟁에 필요한 힘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내부(內)로부터(自)표출되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한 것이다.
실제로 경쟁에 임하면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 나아가 자신을 믿고, 잠재된 모든 기운을 표출시켜 경쟁에 사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정신적인 힘, 강한 집중력이 승리의 첫째 조건이라는 말이다. 승리를 위한 강한 정신 무장, 이것이 비지자내다. 그래야 최종적으로(貞) 승리할 수 있다(吉)고 했다.
比之匪人 (비지비인)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시작하고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어린아이들의 놀이, 학창시절의 공부, 진학과 취직을 위한 시험 등 우리의 삶에서 경쟁 아닌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회에 나가면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생존을 위한 싸움의 성격까지 강해진다. 대부분의 직업인들이 벌이는 비즈니스며 장사라는 이름의 모든 활동들이 결국은 경쟁 아닌 것이 없다. 정치판 같은 경우는 잠자고 숨쉬는 모든 일상까지도 경쟁과 싸움의 연속이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경쟁은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앞의 구절(原筮 元永貞 无咎)에서도 이를 확인한 바 있다. 실제로 우리가 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수많은 다른 정자들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승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승패 역시 단순한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라는 인간을 만든 정자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면에서 신의 섭리와 자연의 질서에 따른 것이지, 나의 노력만으로 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가장 중요한 경쟁의 승패는 사람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주역>은 이를 비지비인(比之匪人), '경쟁은 사람의 일이 아니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이 역설적인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경쟁의 시작과 결과는 인간이 만들거나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저 최선능 다해 경쟁에 임하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삼국지의 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이란 말과 동일한 의미이다.
外比之 貞 吉 (외비지 정 길)
최선을 다해 경쟁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앞에서 우선 정신자세에 대해 얘기한 바가 있거니와, 여기서는 당당한 경쟁의 실제적인 모습, 외형적인 태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외비지(外比之)는 육체, 언변, 행동 등을 통해 겉으로 나타나는 경쟁의 모든 태도를 총칭한다. 당당하고도 사나운 표정과 진지한 땀방울, 심사숙고와 논리정연한 설득의 자세가 모두 포함된 것이다. 이렇게 외부로 표출되는 겉모습(外比之)도 경쟁이 끝날 때까지(貞) 한결같이 당당하고 힘차게 이어져야 吉하다.고 하였다.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현비 왕용삼구 실전금 읍인불계 길)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정치판의 싸움 같은 것을 생각해 보자. 이때의 싸움은 민심을 얻기 위한 싸움이자, 나와 상대가 다 함께 발전하는 상생(相生)의 싸움이어야 한다. 이런 싸움에서는 아량과 덕이 큰 몫을 차지한다. 단순히 너 죽고 나 살자는 시그이 무한 경쟁은 당파싸움으로 번지고 결국 정쟁(政爭)으로 끝아 너게 된다. 그 사이에 불행해지는 것은 백성들이다. 오늘날 여의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과연 이런 경쟁의 기본 원리와 원칙을 알고나 있는지, 때때로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런 큰 경쟁에서 필요한 아량과 도덕성에 대해 <주역>은 사냥터에서의 정황을 들어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비(顯比)는 밖으로 드러나는 큰 경쟁이니, 옛날로 치자면 임금이 직접행차하는 큰 사냥을 생각할 수 있고, 오늘날 정치판의 목소리 크고 지지자 많은 사람이 이기는 정치와 같은 게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역>에서 사냥터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어진 임금(王)은 사냥에 나가도 삼구(三驅)를 사용한다(用). 三驅는 사방(四方) 가운데 한 곳을 열어놓고 사냥감을 모는 방식이다. 주변의 사냥감을 몰살시키지 않는 어질고 아량이 넘치는 사냥 방식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놓지는 짐승이 생긴다.
실전금(失前禽)이 바로 그 상황이다. 눈앞의(前) 사냥감(禽)을 놓친(失)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럴 줄 알고 시작한 사냥이다. 임금이 그렇게 시킨 것이며, 몰리꾼(백성)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임금에게 변명을 하거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벌을 받을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읍인불계(邑人不誡), 백성들(邑人)이 임금을 무서워하여 떨지 않는다(不誡)고 했다. 그러므로 吉하다는 것이다. 誡는 남의 눈치를 살피고 스스로 조심하고 두려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얼마나 아름답운 사냥터의 풍경이요, 여유와 아량이 엄치는 경쟁의 모습인가? 이것이 바로 <주역>이 가장 높게 궁상하는 경재의 태도라고 할 것이다.
무릇 다스리는 자는 이렇게 해야 백성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임금이나 정치인들에게는 백성들의 지지가 곧 경쟁에서의 승리에 다름 아니다. 이 이치를 오늘날 정치인들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比之无首 凶 (비지무수 흉)
문자 그대로 경쟁에(比之) 수자잉 없으면(无首) 凶하다는 말이다. 스포츠 경기를 예를 든다면 수(首)는 감독이요 코치며, 리더이고 선배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치르는 모든 경쟁에서도 반드시 지도자가 필요하고 조력자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홀로 사는 것이 아니요, 세상에는 완전히 홀로 참여하는 경쟁도 있을 수 없다. 누군가의 지도와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경쟁에서 백전백패할 것이다.
비지무수(比之无首)면 凶하다는 가르침은 지도자에 대한 강조이자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재인식이다. 지금 당신이 벌이고 있는 경쟁의 지도자는 누구이고, 조력자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벌이고 있는 경쟁(사업, 공부 등등)이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런데 그 경쟁에서 꼭 승리하고 싶다면, 점집에 찾아갈 일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합한 지도자와 조력자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주역>의 진정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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