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장 서합(噬嗑) [ㅡ, 火雷噬嗑] 사법부의 관리들에게
비리와 부정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사법활동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이를 담당한 형인(刑人)은 모든 죄를 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처벌하여야 한다.
그 과정에는 유혹도 있고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이를 이겨내고 공평무사하게 죄를 물어야 진장한 형인이라 할 수 있다.
噬嗑 亨 利用獄
屨校 滅趾 无咎
噬膚 滅鼻 无咎
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
噬乾胏 得金矢 利艱貞 吉
噬乾肉 得黃金 貞 厲 无咎
何校 滅耳 凶
사법활동은 바르고 힘차야 한다. 죄인을 다룰 때는 감옥을 이용하면 이롭다.
우선 족쇄를 채워 달아나지 못하게 해야 허물이 없다.
명예나 재물에 관련된 사건은 오랜 시간을 투자해 세밀하게 조사해야 허물이 없다.
해묵은 비리를 파헤치다 보면 어려움이 있지만 허물이 없다.
파렴치한 사건을 조사하다 보면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였다.
조사의 어려움은 있지만 끝내는 길하다.
부정을 조사하다 얻은 재물은 끝까지 지키기 어렵지만 허물은 없다.
소신 없이 행동하거나 여론을 무시하면 흉하다.
噬嗑 亨 利用獄 (서합 형 리용옥)
서(噬)는 아랫니와 윗니로 음식을 씹는다는 말이고, 합(嗑)은 음식을 씹으면서 입을 꼭 다물고 있다는 말이다. 무르거나 딱딱한 모든 음식을 흘리지 않고 씹어 먹는다는 말이며, 여기서는 법을 집행하는 활동과 그 담당자인 형인(刑人)을 가리킨다.
서합이 형(亨)해야 한다는 것은, 사법(司法)활동은 기본적으로 바르고 힘차야 한다는 말이다. 형은 젊은이의 바르고 힘찬 기운을 나타낸다.
사법활동의 가장 큰 특징이 죄인을 '가두고' 벌을 준다는 것이다. 리용옥(利用獄)은 이렇게 죄인을 다룰 때에는 감옥(獄)을 써야(用) 이롭다(利)고 했다. 즉, 죄와 벌은 엄중해야하고 격리하여 두려움을 주는 수단인 감옥이 필요한 것이다.
사법활동을 음식을 씹어 먹는 행위에 비유한 것은 왜일까? 음식을 씹어 먹는 이(齒) 가운데 윗니는 하늘의 기(氣, 陽)를, 아랫니는 땅의 세력(勢力, 陰)을 상징한다. 둘이 부딪칠 때의 그 강한 힘, 양과 음이 만날 때의 그 조화,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부숴뜨리는 그 행위가 죄를 엄하고 세밀하게 다루는 형인의 활동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屨校 滅趾 无咎 (구교 멸지 무구)
구교( 屨校)는 죄인의 발에 채우는 형틀, 소위 족쇄(足鎖)이다. 멸지(滅趾)의 趾는 발의 뒤꿈치인데, 여기서는 뒷걸음질 쳐 달아나는 범인을 상징한다.
멸(滅)은 그런 범인을 멸절(滅絶) 시킨다는 말이다. 멸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뒤꿈치(趾)를 잘라 버린다(滅)는 말인데, 역시 범인을 달아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다. 전체적으로 해석하자면, 족쇄(屨校)를 써서 범인이 달아나지(趾) 못하게(滅) 해야 허물이 없다(无咎)는 말이다.
噬膚 滅鼻 无咎 (서부 멸비 무구)
서부(噬膚)는 고기(噬)를 씹는다(膚)는 말이다. 고기는 우선 귀한 음식이니 재물을 상징한다. 고기를 씹는다는 것은 이런 재물과 관계된 사건을 조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기는 어떻게 씹어야 하는가? 천천히 오래 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멸비(滅鼻)는 코(鼻)를 베어 버린다(滅)는 말이니, 코가 상징하는 범죄의 처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코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코는 얼굴릐 정중앙에 우뚝 선 기관으로 자존심과 명예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서부멸비(噬膚滅鼻)를 함께 묶어서 풀이하면, 재물이나 명예와 관련된 사건은 고기를 씹듯이 천천히 오래 조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허물이 없다(无咎).
그러므로 서부멸비를 함께 묶어서 풀이하면, 재물이나 명예와 관련된 사건은 고기를 씹듯이 천천히 오래 조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허물이 없다(无咎).
오늘날에도 명예와 관련된 사건(명예훼손)은 여가 까다로운 게 아니다. 범죄의 구성 요건이 애매할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도를 객관적으로 밝혀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일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기를 씹듯이 천천히 오래 조사하고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 (서석육 우독 소린 무구)
석육(腊肉)은 오래된(腊) 고기(肉), 즉 썩은 고기를 가리킨다. 진즉에 먹어치우고 끝냈어야 할 음식인데, 아직까지 먹지 못했다. 한마디로 해묵은 사건, 오랜 기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대형 비리사건이다. 서석육(噬腊肉)은 그런 썩은 고기같이 해묵은 대형 비리를 파헤친다(噬)는 말이다.
썩은 고기에선 당연히 몸에 해로운 독이 나온다. 그래서 우독(遇毒), 毒을 만나서 약간의 어려움(小吝)이 있다고 했다. 이때의 독은 형인(刑人) 자신이 입게 될 재난이나 화(禍)이다. 해묵은 대형 정치 비리사건 같은 걸 조사하다가 옷을 벗는 등 불이익을 당하는 검사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렇다고 형인이 썩은 고기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독이 있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씹어 먹어야 한다. 그래야 형인으로서 허물이 없다(无咎).
噬乾胏 得金矢 利艱貞 吉 (서건자 득검시 리간정 길)
건자(乾胏)는 마른 밥찌꺼기이다. 재물을 위해 도덕과 양심을 저버린 파렴치한 범죄의 상징이다. 서건자(噬乾胏)는 이처럼 이익을 위해 양심을 져버린 소인배를 조사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느닷없이 쇠(金)로 된 화살촉(矢)이 나왔다(得). 아랫사람의 뇌물수수 같은 사소한 사건을 조사하다가, 이 사건에 상층부의 윗사람이 연루되어 있다는 단서를 잡게 된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쇠로 된 화살촉은 그런 단서를 상징한다.
이렇게 되면 상황이 어려워잘 수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형인 자신의 자리나 목숨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利의 시절이 어렵다(艱)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를 방치한다면 진정한 형인이 아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 그러면 결국 마지막에는 吉하다는 것이 <주역>의 독려이다.
噬乾肉 得黃金 貞 厲 无咎(서건육 득황금 정 려 무구)
마른고기(乾肉)를 씹다가(噬) 황금을 얻으니(得) 끝까지(貞) 어렵지만(厲) 허물은 없다(无咎)는 말이다. 마른고기는 고기를 오래 저장하기 위해 말린 것이니, 말하자면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 같은 걸 은닉한 사건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 시절에 부정하게 축재한 재산을 은닉해서 온 국민에게 빈축의 대상이 되었는데, 말하자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 조사 과정에서 황금을 얻었다는 것은, 그 은닉된 재산을 마침내 찾아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조사하는 형인의 어려움은 끝까지 이어진다.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을 은닉할 정도라면 보통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른 밥찌끼를 씹다가 쇠로 된 화살촉 하나를 찾아내도 시련이 따르는데, 이 경우는 그보다 더한 시련이 따를게 뻔하다. 그래서 마지막까지(貞) 어렵다(厲)고 했다. 하지만 이는 형인의 당연한 도리이니 허물이 아니다(无咎).
何校 滅耳 凶 (하교 멸이 흉)
앞 구절까지는 형인이 범죄와 비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의 문제, 즉 형인의 적극적 임무에 대해 말했다. 이에 반해 이 구절은 형인이 조심해야 할 것, 즉 형인의 소극적 임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늘날 개념으로 보자면 무작정 범인을 잡아 족치는게 능사가 아니고, 형을 집행하는 자는 먼저 범인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주역>은 형인이 경계해야 할 것으로 무소신과 여론에 대한 무관심을 들었다. 하교(何校)는 소신이 없어서 여기저기 묻고만 다니는 모양을 나타낸 말이며, 귀를 잘라 버린다는 멸이(滅耳)는 여론에 등을 돌린 자세를 일컫는다.
문제는 하교(何校)와 멸이(滅耳)가 다분히 서로 상충하된다는 것이다. 하교에 익숙한 사람은 결쿄 여론을 무시하지 않는다. 너무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잘들어 우왕좌왕하는게 오히려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여론을 무시하는 멸이에 익숙한 사람은 우왕좌왕하지는 않되, 지나치게 개인의 소신에 의지해서 세상의 형편을 살피지 않는 법 집행이나 판결을 하는게 문제이다.
이처럼 하교와 멸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형인으로서는 凶하다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오늘날 검찰이나 사법부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여론을 따르자니 법에 맞지 않고, 법조문만을 따르자니 시대착오적인 법 집행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주역>은 두 가지 모두를 살피라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凶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