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96

경자보(도산보)

李翰邦 경자보(도산보) 서문: 김륵, 오운//이동언 옮김 ▲庚子舊譜序 예기에 이르기를 조선祖先을 높이기 때문에 일가를 공경하고, 일가를 공경하자면 족의族誼를 모아야 된다 하였으니, 족의를 모으는 도는 반드시 그 보계譜系를 밝혀야 할 것이라. 그러므로 효자와 어진 손자들이 그 조종祖宗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반듯이 그 근원과 지파支派를 모아서 한집의 역사를 이룩하는 것이니, 구양씨歐陽氏나 소씨蘇氏들과 같이 세상에서 보첩譜牒을 만든 자가 많지만은 하물며 난리를 겪은 뒤에 일가들이 서로 흩어져서 통섭統攝할 길이 없고 돈목敦睦할 의무를 갖지 못하는지라, 이러하므로 진성이씨眞城李氏가 오늘에 족보를 꾸미는 것이다. 대개 진성이씨는 송안군松安君때부터 비로소 귀족이 되어서 퇴도선생退陶先生에 와서 커졌으며 그 사이에 지엽枝..

선조를 찾아서 2012.05.19

진성이씨의 등장

관리자 진성이씨의 등장 글쓴이: 東彦 2. 진성이씨 가문의 등장 진성 이씨 가문의 사족화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이루어진다. 시조는 이석李碩으로, 진보현의 서리 출신이다. 공의 휘는 석이고, 성은 이인데, 가계는 진보에서 출발한다. 고려 시대에 현의 서리로서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나중에 아들 송안군松安君 자수子隋가 귀하게 됨으로써 봉익대부 밀직사로 추봉되었다. 부친의 휘는 영찬英贊으로 호장이고, 조부의 휘는 송주松株로 역시 호장이다. 증조 고조 이상은 찾아 말할 수 없다. 전 부인은 호장 김현金玄의 여식이고 후 부인은 성씨를 알 수 없다. 두 아들을 두었으니, 장자는 송안군으로 김씨 소생이고, 둘째는 자방子芳으로 전 부인 소생인지 후 부인 소생인지 알 수 없는데, 지금 그 자손들은 사마 백패를 잃고 본래 ..

선조를 찾아서 2012.05.19

진보이씨는 진성이씨입니다

李殷植 眞寶李氏는 眞城李氏는 입니다. ■ 역사(歷史) 문헌(文獻)의 진보이씨와 족보(族譜).가첩(家牒)의 진성이씨 시조부군(始祖府君)께서는 신라계(新羅系) 고려(高麗)의 진보인(眞寶人)이시며 맏아들 송안군(松安君)이 출사(出仕)한 시기인 고려 공민왕조(高麗 恭愍王朝-1365年) 공첩(公貼)인 [전의 정안 典儀政案]의 기록(記錄)에는 본관(本貫)이 보성부(甫城府)로 되어 있으며 조선 초기(朝鮮初期)까지 공첩(公貼)에 본관(本貫)을 보성부(甫城府)로 하여 내려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보성부는 곧 진보현을 통합(統合)한 행정명(行政名)으로 후일 조선초에 다시 신라 때의 원래 이름인 진보현 (眞寶縣)으로 분리(分離)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 중기(朝鮮中期)에 이르러 본관을 진보(眞寶)로 하였으며,퇴계선생(退溪先..

선조를 찾아서 2012.05.19

본관과 시조의 유래

李殷植 본관 및 시조의 유래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진보(眞寶)는 경상북도에 있는 지명으로 신라 초기에는 칠파화현이라 하다가 경덕왕 때 진보현으로 고치고 고려초에 진안현과 합쳐 보성부로 개편하였다. 세종때 청보군이라 하다가 진보로 고쳐 현으로 삼았으며 지금은 진보면으로 남아있다.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시조 이석(李碩)은 누대로 진보현에 토착해온 호족의 후예로 고려 충렬왕때 진보현의 아전으로 있다가 생원시에 합격했고, 그의 맏아들 자수(子修)가 홍건적의 난때 전공을 크게 세워 안사공신으로 송안군에 봉해졌으므로 그공으로 인하여 시조 석(碩)은 봉익대부로 밀직사에 증직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이석을 시조로 받들고, 선조의 본향지인 진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면서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시켰다. 가문을 ..

선조를 찾아서 2012.05.19

도산서원과 천원권 지폐 이야기

도산서원과 1000원권 지폐, 그리고 퇴계이야기 ♣ 매화를 너무나 사랑한 퇴계(退溪)선생은 그냥 매화라 하지 않고 매형(梅兄), 매군(梅君), 매선(梅仙)이라는 존칭으로 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매화와 함께 퇴계를 이야기 할때는 늘 떠오르는 한명의 여인이 있는데 단양의 관기 두향(杜香)입니다. 이 두사람의 이야기는 아마 인터넷 어느공간에서 한 번쯤은 읽어보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1000권지폐와 도산서원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은 경북 안동 도산면 낙동강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산서원을 일반 대중들께 가장 널리 알려 준 것이 바로 1000원권 지페인데 구 1000원권 지폐 뒷면의 그림이 바로 도산서원 풍경입니다.(위 그림 참조) 도산서원을 방문하는 이들은 대개가 지폐를 한장..

선조를 찾아서 2012.03.16

성씨의 고증(진성이씨

眞寶李氏,眞城(진보이씨,진성) ▣ 由 來 始祖(시조) : 李 碩(이석) 眞城李氏(진성이씨)는 李碩(이석)을 始祖(시조)로 한다. 眞城(진성)을 本貫(본관)으로 삼은 것은 先祖(선조)들이 代代(대대)로 眞寶縣(진보현)(現 眞城)에 살았기 때문이다. 眞城李氏(진성이씨)의 祖上(조상)들은 이 고을의 衙前(아전)[高麗時代(고려시대)의 衙前(아전)은 높은 官職(관직임)]이었다고 한다.代代(대대)로 衙前職(아전직)을 이어오다가 高麗末(고려말)李碩(이석)이 學文(학문)에 뜻을 세워 生員試(생원시)에 合格(합격)해 家門(가문)을 새出發(출발)시켰다.그의 아들 李子脩(이자수)가 忠肅王(충숙왕)때 明書業[명서업,글씨 잘 쓰는 사람을 뽑는 科擧(과거)]에 及第(급제),나중 紅巾賊討伐(홍건적토벌)에 功(공)을 세우고 安社功臣..

선조를 찾아서 2011.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