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97

진성이씨 두루종택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063 진성이씨 두루종택 와룡면 주하리에 있는 진성이씨 두루종택은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난리때 공을세워 안사공신에 책록되어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지고 판전의시사를 지낸 이자수가 지은 진성이씨 대종택으로 금학산 기슭에 남향집으로 본채. 별당. 사당. 행랑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침은 "ㅁ'자형이며 전면 좌측에 사랑채가 있으며 사랑채에는 고송류수각(古松流水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경류정은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의 익공식건물로 기둥은 원형이며 일부에는 배흘림이 남아있으며 당호인 경류정은 퇴계 이화이 지었다고 한다. 종택 앞의 뚝향나무는 수령 550년으로 높이 3.3m,가슴높이 둘레 2.3m,밑둥둘레 3..

선조를 찾아서 2015.04.19

마애리 망천파종택(들꽃/청계)

● 위치 :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 276 ● 객실정보 - 큰방 2실 10인 기준으로 요금은 별도 문의 - 취사 불가하며 조식제공도 불가능함 - 마애솔숲공원 및 낙동강 백사장 체험가능, 낙동강 레프팅 체험 가능 ● 사진자료 미비로 추후 촬영하여 올리겠습니다. 1. 망천파 세거지 마애촌 전설 지금으로부터 6백여년전 진보에서 안동으로 나오셔서 망천기지를 잡으신 송안군 선조께서 남기신 일화도 많으려니와 이곳 망천마을에 전해오는 전설도 허다하다. 일찍이 송안군 선조께서 말씀하시기를 『富不過百石이은 천년香火不絶之地이며 兵火不入이요 避亂入處也라』하셨다고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있다. 그리고 선조께서 택지하신 마애촌은 저멀리 신라시대에는 마루촌으로 일컬어 오다가 전조에 와서는 마라촌(磨羅村)으로 개칭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이..

선조를 찾아서 2014.12.26

오랜만에 찾아본 도산서원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6995 오랜만에 찾아본 도산서원 8월10일 날싸가 맑아서 도산서원 나들이를 갔더니만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만났다. 휴가기간이고 방학시즌이어서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陶山書院은 퇴계 이황선생이 명종16년(1561)에 도산서당을 세워서 후학 양성을 하여 왔으며 선생의 사후 4년만에 선조7년(1574)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고 선조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현판을 사액(賜額)하였다. 현재 세계문화유산등록을 위하여 준비중이다. 退溪선생은 연산군7년(1501)에 도산면온혜리에서 출생하여 선조3년(1570)에 돌아가셨으며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풍기군수.공조판서.예조판서.우찬성. 대제학을 지냈으..

선조를 찾아서 2014.08.10

550년의 뚝향나무(처음처럼作)

사진이 열리지 않으시면 아래 글주소를 클릭하시면 보실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123ad/9vTE/355 오늘 어느 시인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치 못한 미안함으로 점심을 함께 하러 보릿고개 황토 묵집에 갔다가 오랫만에 두루에 있는 종가를 다녀왔다. 깔끔하게 잘 다듬어져 있어 전에 고즈넉한 고가의 분위기가 다소 달라지긴 했으나 주변 경관이 아주 아름다와졌다. 종손이 외출한지라 나는 그저 조용히 경류정과 종가의 사랑채인 고송유수각을 돌아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는 뚝향나무를 만나고 그 품넓은 나무그늘에 넋을 놓고 보고 있다. 이렇게 용틀임하며 하늘을 향해 치솟는 이 나무를 선산 부사공도 보고 계실까 ? 평안도 정주에서 머얼리 이곳까지 옯겨져 550 여년을 굳건히 종가를 지키고 있는..

선조를 찾아서 2014.03.15

산신령과 내기바둑두어 황금을얻은 퇴계선생

산신령과 내기 바둑 두어 황금 얻은 퇴계선생 퇴계선생은 바둑도 국수급이래요. 바둑을 아주 잘 뜨는 분이라. 어느 날 금강산 유람을 들어갔는데, 한참을 가다가 보니 어느 젊은 사람이 마상(馬上)에 떡 앉아서 퇴계선생을 보고 말을 아주 반말 비슷하게 말을 걸드라 그해요. 저 당신 이황선생이지요. 아 그렇다.고 하니. 당신이 나이도 많고 유학자이지만 바둑도 잘 뚠다는데. 하고 반말 비슷하게 하이께네. 퇴계선생이 바둑 잘 뜨지는 못하고, 그냥 외유나 하고 논다.고 답을 했어. 그러니 젊은 사람이 하는 말이 그럼 내하고 바둑 한 번 둡시다. 한단 말이래. 그래 퇴계선생이 마지못해서 그럼 뜨자고. 하니. 젊은 놈이 마상에서 내리더니만 바둑판을 펼치는게라. 퇴계선생이 가만이 보니, 바둑판과 바둑알이 전부 쇠고 금이래..

선조를 찾아서 2014.01.24

비뚤게쓰여진 도산서원 현판

비뚤게 쓰여진 도산서원 현판 이전에 선조가 그 당시의 명필 한석봉에게 명을 해서 도산서원 현판을 쓰게 하였는데. 이 때 선조가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도산서원 현판이라고 한석봉이에게 가르쳐 주면, 놀래서 붓이 떨려 글씨가 잘 안되께라 싶어가 가르쳐 주지 않고, 도산서원 네 글자를 거꿀로 한 자 한 자 불렀어요. 그래 한석봉이는 영문도 모르고 받어 쓰는게라. 맨처음에 원(院)자를 쓰고, 다음에 서(書)자, 다음에 산(山)자, 그리고 인제 마지막에 도(陶)자를 쓰게 했어. 한석봉이는 원, 서, 산자를 쓰고 나서 도자를 임금이 부르이께네 아하 이거 내가 도산서원 현판을 쓰는 구나. 딱 알아챘어요. 그래 고마 놀래가 붓이 떨려서 마지막 도(陶)자를 비뚤게 썼어요. 그래가 도산서원 현판에 글씨가 약간 삐뚤지.

선조를 찾아서 2014.01.24

퇴계의 아홉여인(내고향/희구름박)

첨절 안곗니껴? 호명댁이 박순화씨더 저는 오늘 조선의 대성리학자요, 철학자요, 시인이요, 건축가요, 경제가의 ceo였던 퇴계와 그의여인 아홉사람의 이야기를 한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첮번째 여인은 춘천박씨 어매입니다 퇴계선생은 1501년 온혜 노송정에서 칠남매 중 막내로 "공자가 대문으로 들어오는 태몽꿈" 을 꾸고 태어 났는데 세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컸는데 과부의 자식은 베운게 없고 따돌림을 당하고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소릴 들을까 봐 엄하게 키웠으니 퇴계 묘갈명에서도 "나에게 가장많은 영향을 끼친분은 나의 어머니다""라고 한 첮번째 여인은 춘천박씨 어머니요 두번째 여인은 21살에 장가를 간 영주 초곡마을(푸실) 허씨부인이다 아들 준을 낳고 둘째아들 채를 낳은 뒤 산후조리 휴유증으로 일곱달만..

선조를 찾아서 2013.12.31

퇴계오솔길(녀던길)탐방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하세요 http://blog.daum.net/uh512/5064 녀던길 탐방 5월4일 아침 화창한 날씨를 못이겨 도산면단천리에서 가송리를 이르는 낙동강변을 따라 그옛날 퇴계선생님이 자연을 즐기시며 거닐던 그길을 한번 걸어 보았다. 단천리 백운지입구에서 강변을따라 강물소리, 산새소리를 들으며 학소대와 경암, 한속담등의 풍경을 즐기며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쌓은 돌탑에 돌하나를 올려 놓으며 걷다가 걷더가 도착한곳이 애일당, 분강서원, 농암종택이었다. 그곳에는 오늘도 관광버스가 주차장을 매우고 관람객들이 고가옥을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고산정을 돌아서 나오며 나는 느꼈다. 성현이 봇짐을메고 지팡이를 짚고 거닐던길을 내가 등산베낭을 메고 등산지팡이를 짚고 걸었으..

선조를 찾아서 2013.05.04

퇴계 이황선생의 매화시 모음

퇴계 이황 선생님께서는 많은 매화시에서 매화를 실로 여러 면으로 묘사하셨다. 그러나 그 여러 면의 많은 부분을 아우르는 것은 크게 보아 『깨끗하고 맑음[淸淨] 또는 깨끗하고 참됨 [淸眞]』이라고 한다. 선생께서 68세(1568년) 7월에 임금의 부름을 받아 상경하시어 69세(1569년) 정월28일에 도산의 매화를 그리워하시며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憶陶山梅 도산 매화를 생각하다 湖上山堂幾樹梅 호숫가 도산서당 몇 그루 매화꽃이 逢春延停主人來 봄철을 맞이하여 주인 오길 기다리네. 去年已負黃花節 지난 해 국화시절 그대를 버렸으나 那忍佳期又負回 아름다운 그 기약 어찌 또 버릴까 丙歲如逢海上仙 병인년이 되어서는 바다 신선 만난 듯 丁年迎我似登天 정묘년은 나를 맞아 하늘에 오르는 듯 何心久被京塵染 무슨 마음 오랫동..

선조를 찾아서 2013.04.12

옥당억매

옥당억매(玉堂憶梅) 이황(李滉) 一 樹 庭 梅 雪 滿 枝(일수정매설만지) 마당의 한 그루 매화에 가지마다 눈이 쌓이니 風 塵 湖 海 夢 差 池(풍진호해몽차지) 티끌 같은 속된 세상 꿈마저 어지럽네. 玉 堂 坐 對 春 宵 月(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앉아 봄밤의 달을 마주하니 鴻 雁 聲 中 有 所 思(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울음소리에 내 마음도 달리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이맘때가 되면 남쪽으로부터 매화소식이 들린다. 구중궁궐 홍문관의 앞뜰에 있는 매화나무에도 가지마다 은색 눈이 쌓였다. 백설을 헤집고 곧 매화가 피어오를 것이다. 이 시는 그 광경을 보면서 42세 된 퇴계가 홍문관(옥당이라고도 함) 부교리로 재임 할 때 지은 시다. 그는 유독 매화를 아낀 시인이자 학자였고 정치가였다. ‘梅寒不賣香’(매한불..

선조를 찾아서 201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