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산적 두목 이전이 산채로 돌아오자

오토산 2021. 7. 6. 15:54

금옥몽(속 금병매) <169>

산적 두목 이전이 산채로 돌아오자 길일을 택해 요공과 금병의 혼례를 올린다.

금병은 화촉밝힌 신방에서 정랑과 불법을 논한다.


모래밭에 알알마다 햇빛 고루비추이니,
범인 성인 따로없이 불심으로 교감하네.
한가닥 잡념없이 무념무상 잠기울 때,
속세의 몸뚱아리 구름속에 가리우네.

번뇌를 쫓으려다 더 큰 병 생기나니,
진리를 고집하다 도리어 사악(邪恶)얻네.
중생연분 순종하며 거스리지 말지어다.
열반과 생사(生死)는 한갓 망상일 따름이다.

요공은 이전 대왕의 산채에 잡혀와 본의 아니게 금병과 혼인을 약조 하도록 강요받고

계속 산채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공은 절대로 파계해서는 안된다는 굳은 마음으로 금병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낮에는 같이 어울려 불경을 읽고 설명해 주기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하였지만

밤이 되면 반드시  자기의 침상에서 잠을 자며 금병을 여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양씨도 그 이상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저 남편인 이전(李全)대왕이 돌아오면

택일해서 정식으로 혼사를 치루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산적 두목 이전은 휘하 군사를 이끌고 올술을 따라 강남(江南)정벌에 참가 했지만,

올술이 참패하여 악비(岳飞)장군에게 쫓겨가는 통에 더 이상의 참전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산채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부인 양씨와 딸 금병의 환영인사를 받은 이전은

그동안의 산채 현황을 보고 받고는 관리 목록을 살펴 보았다.

금전과 포로 그리고 산적들이 상납한 물건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을 하다가

'사미승 요공' 이라는 조목을 발견하고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니,

부인 참 우습구려.
아니 중놈이 무슨 쓸모가 있다고 남겨 두었소?
여기가 무슨 절간이라도 된 단 말이요?

우리하고 향불 피우고 목탁 두드리는 일하고 무슨 상관이 있소?
흔히 하는 말로 중이나 비구니들은 세가지 재수가 없다는데

당장 목을쳐서 늑대 밥으로 버리세요."

"호호호,

대왕, 모르시는 말씀이어요.
그 사미승은 금은 보화와도 비길 수 없답니다.
면상이 둥근 달 같고 눈에서는 광채가 나는 것이

제법 득도한 스님의 위엄이 묻어나는 비범한 인물이예요.

그러니까 말이죠,

금병이 벌써 열여섯이나 먹었는데 시집은 보내야 될 것 같구,

이산채에 쓸만한 사위감은 안보이구 하여 답답한데 마침 사위감으로 될것 같아 붙잡아 놓았다우.
제가 보기에는 우리 금병이와 사미승이 천상 배필 같아요.

당신이 돌아오면 길일을 잡아 혼례를 올려 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침 우리에게는 아들도 없으니 이 사람을 후계자로 삼으면

금병의 무예도 뛰어나니 아주 잘 이끌어 가지 않겠어요?"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전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즉시 요공을 불러오라 했다.
그러나 잠시 후 불러온 요공은 남루한 갈색 가사를 입고 합장을 하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만 외우고 있을 뿐 이전에게는 절도 하지 않았다.
이전이 유심히 살펴보니 과연 부인이 극구 칭찬한 것을 알것도 같았다.

축 늘어진 두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컷으며 두 손은 무릅까지 닿았으며,

붉은 입술에 하얀 이가 가지런 한 것이 어찌보면 금병과 많이 닮아 보여 남매라 하여도 속을것 같았다.

사주팔자를 물어보니 신기하게도 금병과 생년월일 뿐만 아니라 태어난 시각 까지도 똑같았다.
출신 내역도 산동 청하현에서 제형천호까지 지냈던 서문가(西门家)의 아들이라니

그만하면 출신도 괜찮다고 여기졌다.

"그래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
사실대로 낱낱이 고하렸다!"

이전이 큰소리로 약간 겁을 주며 이곳에 온 연유를 물었다.
요공이 자초지종을 사실대로 차분하게 말을 했다.

"그러하오니,

제발 대왕께서는 자비심을 베푸시어 소승을 하산케 하여 모자 상봉의 소원을 이루게 도와 주신다면

이는 큰 공덕을 쌓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그러나  이전은  짐짓 딴전을 폈다.

" 하하핫!

네가 여기 오게 된 사연을 들어보니 참으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구나.
어쩌면 내 딸과 생시(生时)가 똑 같으냐?
이것을 보면 둘은 천생연분이요

이미 정해져 있는 배필이 틀림없지 않는가?"

이전은 즉시 책력을 가져 오게해 길일을 따져보더니,

바로 오늘이 황도길일(黄道吉日)로 나오자 급히 명령을 하달하여

잔치 준비를 하고 혼례를 치를 채비를 하라 하였다.
두목 이전의 추상 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일사천리로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요공은 강제로 끌려가 목욕을 하였다.
어차피 피할 수 없을 바엔 혼례를 치루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곳을 벗어 나야 겠다고 생각하고 순순히 응하였다.
사모관대에 비단 옷과 신발을 쪽 빼 입으니 훤칠한 키에 늠름한 신랑감으로 다시 보였다.
금병도 목욕재계하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새색시 차림을 갖추고 나오니

꽃처럼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차려진 혼례상으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는 천지신명에게 절을 한 다음,

이전 부부에게 절을 하자 부부는 의젖한 모습에 흐뭇해 했다.
뒤에 마지막으로 서로 맞절을 했다.

이로서 혼례는 모두 끝나고 어쩧던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명의 아낙네가 나와서 중신 어미격으로 요공과 금병 두 사람을 신방으로 안내해

첫날 밤을 보내게 했다.

산채는 두목 딸의 혼례 잔치와 전쟁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떠들썩하고 푸짐한 잔치가 벌어졌다.
신방에 들어오면 원래 합환주를 마셔야 되지만 요공은 주계(酒戒)를 깨트릴 수 없다며

완곡히 거절했다.

금병은 강요하지 않고 그냥 상 위에 놓았다.
촛불을 켜고 둘이 앉았는데 이미 한 집안에서 같이 오래 지낸 터라

별 쑥스러움이 없이 대할 수 있었다.

시녀가 차를 들여다 놓고 나가자,

요공은 향불을 피워놓고 대비관음아라니주(大悲观音阿罗尼咒)와 금강경(金刚经)을

낭랑한 목소리로 읽었다.

어느덧 이렇게 한시진이 지나고 나자,

금병은 혼자서 신부단장을 지우고 요공 옆에 앉아 불법(佛法)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불교의 도리 중에 남녀가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으면서도

여자는 내세(来世)에 가서 남자의 몸으로 바뀐 뒤에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이죠?
그렇다면 여자의 몸은 어떻게 해야만 남자로 바뀌지는 것이죠?"

"우리가 보고 있는 우리의 육신은 마치 허수아비 같고 나무토막을 조각해 놓은 것과 같아,

결코 우리의 참 모습이 아니오.
모든 부처는 정해진 형체가 아니며, 일단 우리가 불성(佛性)을 깨우치게 되면

그때는 더 이상 여자의 몸이 아닌 것이오."

"그런, 모든 중생들은 어떻게 해야 생사(生死)의 윤회에서 탈출할 수 있지요?"

"원각경(圆觉经)에 의하면, 모든 중생은 다 '무(无)' 에서 시작하지만

은애와 탐욕 때문에 윤회의 씨를 갖게 된대요.

그래서 남녀의 음욕으로 자꾸만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되며,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업보를 창출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그러므로 오직 모든 욕심을 버리고 여래불(如来佛)의 깨우친 경지에 도달하려 노력한다면,

온 몸이 깨끗해지고 여래(如来)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설명하던 요공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어 낭랑하게 선시(禅诗) 한 수를 암송하였다.

어찌하여 윤회하느뇨?
모두가 탐욕과 은애 때문이라!
사랑의 씨가 갖은 욕심 일깨우니,
중생들은 목숨 걸고 욕심을 챙기누나.
스스로 더러우니 진리의 꽃이 어찌 피어나리!

윤회의 원인이 무엇이뇨?
오직 음욕(淫欲) 하나로 생사가 갈라지네.
깨끗하고 티끌 묻지 않은 몸만이,
'무(无)' 의 높은 도리를 깨우치리라!

금병이 또 물었다.
"인간에게는 다섯가지 감각이 있는데 그 중에서 왜 하필 만지는 촉감을 통해 쾌락을 얻지요?
남녀가 서로 만지고 서로의 몸을 밀착시켜 피부가 부딪쳐야 비로소 부부가 되었다 할 수 있을 터인데,

만져서 좋을 때도 있고 만져서 안 좋을때도 있는데,

그러면 대체 만지는 것이 좋은가요 안만지는 것이 좋은 가요?
도대체 만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죠?"

"우리의 육신은 진정한 모습이 아닌 허상이니,

몸을 만지는 촉감 또한 허망한 짓일 뿐이지요."

"촉감이 진정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왜 남녀가 서로 만질때 진정한 쾌락이 마음 속으로부터 생기면서

마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같이 느껴지는지요?"

금병이 요공의 손을 포근히 잡고는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러자 요공이 항급하게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말했다.

"우리의 육신을 아는 것은 촉감이고,

또 촉감을 아는 것은 우리의 육신이지요.
그렇다면 촉감은 우리 몸이 아니고,

우리몸은 촉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이렇듯이 몸과 촉감이라는 두가지 개체는
원래 같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에,

두사람의 몸이 합쳐지면 앞의 두가지가 분리되고

몸은 그저 빈 껍데기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금병은 요공의 불경 강독을 듣고나자 머 리가 맑아지며 마음이 시원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무언가 느낌이 온것 같아 금병은 요공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도 진심으로 불교에 귀의해서 윤회의 죄를 어서 끝마치고 싶어요."

금병은 요공의 몸을 어루만지던 손을 거두고

침상에 올라가 휘장을 내린뒤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청했다.
요공도 침상 아래에 좌선을 하고 앉아 참선을 하기 시작했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