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식의 칠보시(七步詩)

오토산 2022. 1. 11. 08:32

삼국지(三國志) (303)

시제(詩題)는 형제(兄弟), 내용에는 형제가 없는 시(詩) ->
조식의 칠보시(七步詩)

조비(曺丕)는 아비 조조의 뒤를 이어 위왕(魏王)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지방에 나가 있는 아우 조식(曺植)과

조웅(曺熊)은 아버지 장례에도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왕이 즉위한 뒤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신왕 조비가 속으로 매우 괘씸하게 여기고 있는데,

어느날 조회(朝會)에서 모사 화흠(華歆)이 이 문제로 조비에게 아뢴다.

"조식, 조웅 두 공자께서는 선왕 장례에도 참례치 아니하고

또 신왕 즉위식에도 경축을 오지 않았으니.

이는 반드시 이심(異心)을 품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곧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문죄하지 않는다면

후일 반드시 큰 화를 입으시게 될 것입니다."

"으,음 !

나는 장자이고 조식은 내 아우이니,

나에게 불경한 것은 눈감아 줄 수 있소.

 

허나 선왕께 불효한 것은 용서 할 수가 없소.

모두 알겠지만 선왕의 장례식에 천자께서도 오셔서 절을 올리셨소.
허나, 조식과 조웅은 오지 않았으니
구천에 계신 선왕께서도 용서치 않으실거요."하고,

조식을 죽여 없애고 싶은 내심을 감추고 말하자,
조회에 입시한 중신들이 이구 동성으로,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하고,

복명한다.
그러자 조비가 중론(衆論)을 얻은 것을 기회로 즉시 허저를 호명한다.

 

"허저 !"

"예 !"
허저가 한발 앞으로 나와 명을 받을 자세를 취하자,

 

"먼저 조식을 잡아 들여 죄를 물으시오."하고,

명한다.

이리하여 허저(許楮)가 신왕 조비의 명을 받들고 조식을 붙잡으러 갔다.
조식은 이날도 글벗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집 정자에서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술자리를 막아선 허저가 조식에게 신왕의 부름에 응할 것을 요구하니,

술에 취하여 불쾌해진 조식이,

"난 또,

허 장군이 술 냄새를 맡고 온 줄로 알았소 !"하고,

너스레를 떨면서, 결국 완강한 허저의 동행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와 함께 허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조식이 신왕의 명을 받든 무지막지한 허저에게 체포되어 허창에 왔다는 소리를 듣자,

조식의 생모 변씨(卞氏)가 크게 놀라, 몸소 아들 조비를 찾아왔다.
그리하여 달려온 아들에게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네 형제들 중 환씨 소생의 조충은 이미 죽었고,

네 아우 조창은 두말 없이 병권을 내놓았고,

막내인 조웅은 네게 처벌 받을 것이 두려워 자결을 했다지 않느냐 ?

 

이제 허저를 시켜, 넷째 조식을 붙잡아 왔다니,

네가 왕위에 오른 뒤에 아우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생각이냐 ?
그래서야 우리 집안이 어찌 흥할 수가 있겠느냐 ?

 

네 아우 식으로 말하면,

고작해야 글이나 쓰는 서생에 불과한 데다가, 

선왕께서도 그 문재(文才)를 특별히 사랑하셨으니
선왕의 총애를 생각해서도 네 아우를 죽여서는 안 된다."

조조는 두 명의 본처와 열 명에 이르는 처첩을 두고 있었으니,

완성에서 죽은 맏아들인 조앙은 본 처인 유 부인(劉 夫人)의 소생으로 유 부인도 일찍 죽었고, 
두번째 부인인 변 씨와의 사이에는 조비, 조창, 조식, 조웅을 두었으며 

황제 유협에게 보낸 조 황후의 어머니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려니 자신이 낳은 넷 째 아들이

제왕을 물려 받은 아들 조비의 손에 크게 다치는 것을 염려하여

이같이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왕 조비는,

 

"어머니,

넷 째는 아버님 장례에도 오지 않았으니

부왕께서도 용서치 않으실 겁니다."하고,

불만스런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생모는 조금 전에 화를 내던 어조와는 다르게 사정조로,

 

"잘못이 있으면 형으로서 동생을 꾸짖으면 될 것이지,

꼭 죽여야만 하겠냐 ?
모두 내가 낳은 자식들인데 서로에게 창칼을 겨누고 있으니,

이 어미는 실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구나 !..."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조비가 생모 변씨 앞에 짐짓, 무릅을 꿇어 보이며 말한다.

 

"어머니 !

그건 헛소문입니다.
그런 말은 믿지 마십시오 !"하고,

강변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다시 노하며,

 

"속일 생각 말거라 !
이 어미가 바보는 아니다 !"하고

말한 뒤에 다시 목소리를 누그러 뜨리며,

아들의 손을 잡고 사정한다.

"애야,

자환(子桓: 조비의 字)아,
너는 왕이 되지 않았느냐,

형으로써 든, 왕으로써 든,

모두를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응 ? ...
그리고 명심하거라, 넷 째를 죽인다면
이 어미는 그날로 부왕을 따라 갈 것이다."

 

어머니 변씨는 사정하다 말고,

 말 끝에는 폭탄 선언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자 조비가 일어나며 소리를 지른다.

"대체 어느 놈이 넷 째를 죽인다고 한 것입니까 ?
전, 전..그런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그런 마음을 먹은 적은 없습니다.

어머니 ! 믿어주세요 !"

 

"정말이냐 ?"

 

"네, 어머니...

남에 말은 몰라도, 제가 어찌 어머니 말씀을 거역하겠습니까 ? "

조비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으며 말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도 아들의 손을 움켜 잡으며 다시 애절한 당부를 한다.

"그럼 널 믿어 보마, 응 ?
꼭 지금 말한 대로 할꺼지 ? 그렇지 ?"

"믿어 주십시오

예 ? 믿어 주세요 !..."

 

"오냐,

그럼 어미는 네 말을 믿고,

안심하고 이제 가보마..."

조비의 어머니 변씨는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내전으로 돌아갔다.
모사 화흠이 들어오다가 신왕의 모친이 다녀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조비가 화흠에게 불만어린 어조로 따지 듯이 말한다.

"어찌된 연유로

어머니께서 조식을 불러온 것을 아시고 이리 달려오신 것이오 ?"

"전하, 허창성 안팎에 선비들은 물론,

조정의 관리들과 심지어 백성들 조차도 조식 공자의 글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조식 공자를 소환 한 일은 새어 나가기가 쉽습니다."

"으, 음 !..." 

 

조비는 형제간의 다툼을

잘 모르게 처리하려던 애초의 계획에 차질이 빗어지자,

즉석에서 결정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모친까지 알고 난 뒤에 거센 반대에 부딪치고 보니 더욱 난감하였다.

"전하,

그럼 이제 어찌하실 겁니까 ?"

 

화흠은 조비의 심중을 물었다.

그러자 조비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머니는 평생 힘들게 사셨소.
선왕께서 환 부인만을 총애하셨기에 더욱 냉대를 받으셨지..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땐 어머니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위로해 주셨소.
평생 부탁 한 번 안 하시던 분이 어렵게 애기를 꺼내셨는데 어쩌겠소 ? "

조비는 이렇게 대답하며 조식을 죽일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화흠은,

 

"전하,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왕은 냉정해야 합니다.
조식 공자께서는 재주가 비범하니,
대신들 중에서도 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코 예사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제거하지 않으면 후환이 될 것입니다."하고,

조비의 한 발 물러선 결정을 재고하란 의미로 말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좋겠소 ?"
조비는 마땅한 대안이 생각되지 아니하여 화흠의 의견을 물었다.

"전하,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
조식 공자는 입을 열면 곧, 글이 된다고 하니,

내일 궁에서 그 재주를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소문과 다르면 그 핑게로 죽이시고, 소문대로라면 멀리 보내십시오.
그리하면 공자를 따르는 문인들의 입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음 ! "
     
다음날 모든 대신들이 참례하는 조회(朝會)에 조식이 불려나왔다.
큰 처벌이 떨어질 것이 틀림없는 회동에 겁을 집어먹은 조식이

긴장한 채로 두 손을 모아 입시를 아뢰면서 엎드려 절하였다.

"신, 임치후(臨淄侯) 조식(曺植),

전하께 인사올리옵니다 !"

"음!.. 자건(子建: 조식의 字),

우리가 형제지간 이기는 하나, 조정에서는 군신 지간이다.

선왕께서 승하하셨거늘, 어찌 장례에도 참석하지 않았느냐 ?

불효를 저질렀으니 결코 !...용서할 수가 없다 ! "

신왕 조비의 호령은 냉정하며 추호도 용서할 여지가 없는 어조였다.
조식이 조회의 분위기가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허리를 깊숙히 숙이며 죄를 청하였다.

"제가 잘못 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자 신왕 조비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입을 열어,

"선왕 생존시에 너는 글재주를 뽐내며 다녔다.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詩)를 지을 수 있다고 들었으나,

도무지 믿을 수가 없구나.

오늘 이곳에서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어 보거라.
할수 있다면 살려줄 것이고,

못 한다면 불경죄에다 군주 기만죄를 추가하여 엄히 다스릴 것이다."하고,

용서의 여지가 없는 어조로 말하였다.
조식이 고개를 들며 아뢴다.

"시제(詩題)를 내려 주십시오."

"음 !...

우리는 형제이니, 형제를 시제로 삼겠다. 

그렇지만 내용에는 형제란 단어가 들어가선 안 된다."

신왕 조비의 주문(注文)은 기가막힌 것이었다.
형제란 주제(主題)로 시(詩)를 짓 되,
그 내용에 형제(兄弟)란 단어가 들어가선 안 된다니.. 
그러나 조식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하거라 !"

 

조비의 명이 떨어졌다.
조식이 대청에 한 발을 내딛는다.

"일 보(一步) ! , 이 보 (二步) ! , 삼 보 (三步) !  "

화흠이 조식이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소리쳤다.

 

"사 보(四步) ! , 오 보 (五步) ! ..."

조식이 다섯 걸음을 걸은 뒤, 돌아서 조비를 바라본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것을 바라 보는 조비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낸 칠보시(七步詩)의 시제는
범인(凡人)이 짧은 시간에 쉽게 지어낼 수가 없는 주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육보(六步) !"

 

화흠이 어전 회의가 벌어지는 대청이 찌렁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내딛는 동안 조비의 앞에 시를 지어 바치지 못하면,

조식은 그동안의 영화를 뒤로하고 죽을 목숨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조비는 물론, 조식이 긴장한 채로 입을 열어 시를 읊기 시작한다.

煮豆燃豆冀 (자두연두기) ...콩 깎지를 태워 솥안의 콩을 삶으니 ...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             솥 안에서 콩이 우는구나 ...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시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            어찌 이리도 급하게 볶는가...

조식의 시는 의미하는 바가 너무도 절절하였다.
그리하여 그 시를 듣던 신왕 조비는 절절한 형제애를 표현한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조식을 죽이자고 주장했던 화흠을 비롯한 대신들의 표정도

감탄과 긍정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본시 한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어찌 이리도 급하게 볶는가 !...
 본시 한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 
어찌 이리도 급하게 볶는가 ?..."

신왕 조비는 조식의 시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조식의 앞으로 다가섰다.

 

"좋은 시로다. 훌륭해 ..."

"전하의 위엄에 온 몸이 떨렸으나,

다행히 칠보시를 완성했습니다."

 

조식이 자신의 앞에 다가선 조비를 향해 머리를 숙이며 말하였다.
그러자 조비가 명한다.

"자건, 시는 훌륭히 잘 지었으나 ,

벌까지 면할 수는 없다.

명을 내리마.
봉록 오백 석을 감하고,

안양후(安鄕侯)로 강등하니,

사흘 내로 임지로 떠나거라. " 
그 말을 듣고, 조식이 무릅을 꿇고 신왕을 올려다 보며,

"망극하옵니다.

전하 !"하고,

말한 뒤에 엎드려 절하였다.
             

*인물평
조식(曺植) 192 ~ 232년.
위(魏)나라 시인. 자는 자건(子建),
안휘성(安徽省) 출생으로 조조의 넷째 아들이며 조비의 아우이다.
형 조비와 세자 계승 문제로 암투를 벌이다가

29세 때 아버지 조조가 죽고 형 조비가 왕위를 계승함으로써

시인 정의(丁義) 등 그의 측근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도 평생 정치적 위치가 불우하게 되었다.

 

그의 재주와 인품을 싫어한 형 조비에 의해

그는 거의 해마다 새 봉지로 옮겨 살도록 강요당했고

엄격한 감시하에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가,

마지막 봉지인 진(陳)에서 죽었다.

 

그는 공융(孔融), 진림(陳琳) 등 당대의 건안칠자(建安七子)들과 사귀어

당시의 문학적 중심을 이루었고 오언시를 서정시로 완성시켜

문학사상 후세에 끼친 영향이 컷으며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가 나오기까지

그는 시인의 이상형(理想形)으로 존경받던 처지였다.
                   
304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