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302)
조창의 거병(擧兵), 사마의의 담판(談判)
조조가 죽고 나니 세상은 발칵 뒤집힌 듯이 소란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위로 헌제(獻帝) 라는 천자가 있었으나,
그는 오로지 명색만 천자일 뿐이었고,
한나라의 권세를 마음대로 휘둘러 온 사람은 조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가 조조의 대통을 이어 받아 왕위를 계승할 것인가 ?
세상 사람들은 슬픔에 잠겨 있는 중에도 그 문제가 크게 궁금하였다.
물론 조조가 임종전에 조비(曺丕)에게 왕위를 계승한다는 유언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조가 살아있을 때의 일이고,
그가 죽고난 지금에는 유언보다는 조조의 네 아들의 능력과 실력 여하로
왕위가 결정될 소지가 농후해 보였다.
지금 조조가 서거한 업군에는
세자 조비(世子 曺丕)만이 빈소를 지키며 남아 있고,
다른 세 아들인 조창, 조식, 조웅은 모두 지방에 태수(太守)로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부친의 부음을 듣고 어떤 태도로 나올지가 더욱 궁금하였다.
이러한 위기감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사람은 부왕으로 부터 대통을 낙점 받은 조비였다.
그는 빈소를 벗어나 자신의 집무실에서 마냥 서성이다가 문득, 사마의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
사마의가 입시한 채로 대답한다.
조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마의 앞으로 나가 서성이며 묻는다.
"부왕께서 승하하신지 벌써 사흘째인데,
셋째와 넷째는 ?
문상은 고사하고 연통조차 없구려.
혹시, 딴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닌지 ?...."
조비는 걱정이 되는 바를 사마의에게 밝혔다.
그러자 사마의는,
"만약,
왕위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당연히 나머지 공자들은 욕심이 있을 겁니다.
허나, 그렇더라도 현 싯점에서 왕위를 다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조비가 그 말을 듣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음 !...
맞소, 솔직히 말해,
조식은 풍류에 빠져 있으니 걱정되진 않지만,
조창이 신경쓰인다오."
조비는 사마의의 곁으로 다가가서 목소리를 나직히 말하였다.
그러면서,
"창이는 전쟁에 능하고 군에서는 명망도 높아,
이십만 병력을 장악하고 있지 않소 ?
게다가 장안에 주둔하고 있으니
내게 반감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면
문제가 커질 것이오."하고, 말하는 순간,
시종이 들어오는 바람에 조비의 불안한 질문에
사마의가 답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있었다.
들어온 시종은,
"아룁니다.
천자께서 공신각에 가셨답니다."하고,
입을 열었다.
조비가 한숨을 한번 내 쉰 후에 물었다.
"가서 뭘 하셨나 ?"
"선조들께 절을 올리고 나서,
선왕을 역적이라 하셨다고 합니다."
"으, 응 ?
상관없다.
아마, 속으로는 천만 번도 더 했겠지.."
"또한,
자신이 왕실의 위엄을 무너뜨렸다면서 통곡하셨답니다."
"응 ? 어리석진 않군..
잘 지켜 보라고 하라.
황궁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보고하도록 !"
"네 !"
시종이 대답을 하고 물러간다.
시종이 나가자 곧바로 장수 하나가 들어와 아뢴다.
"아뢰옵니다.
조창 공자께서 병사 십만을 이끌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남문 밖에 주둔중입니다."
"뭣 ?"
조비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리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불안감이 현실로 된 것에
말문을 잃고 사마의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러나 사마의는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아니하고,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일으키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그대로 서 있었다.
사마의에게 바싹 다가선 조비가 눈에 핏발이 선 채로,
흥분한 어조로 소리쳤다.
"왕위를 빼앗으려 온 것이오 !
어떡하죠 ?"
조비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사마의의 의견을 물었다.
드디어 사마의가 입을 열어 차분한 어조로 말한다.
"진정하십시오.
신이 설득해 보겠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칼을 빼 들지도 모르오 !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것이오 ?"
조비는 사마의가 차분히 대답하는 것을 보고,
그의 심중을 물었다.
그러자 사마의는 또 다시 차분한 어조로,
"세치 혀만 있으면 충분합니다."하고,
대답한다.
그 소리를 듣고,
조비가 불안한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만약,
설득하지 못 한다면 귀공의 목숨이 위태로울 거요."
"설득하지 못 한다면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원망 않겠습니다."
사마의는 이렇게 말하고 조비에게 선채로 반절을 해보였다."
"고, 고맙소."
사마의는 그 길로
남문밖에 십만 군사를 이끌고 나타난 조창에게로 갔다.
그리하여 조창의 군막앞에 이르러 안을 향해 고한다.
"사마의가 인사 올립니다."
조창이 안에서 불만어린 어조로 묻는다.
"부왕의 옥새(玉璽)는 지금 누가 가지고 있소 ?"
사마의가 즉각 대답한다.
"옥새는 누가 가지고 있든,
공자와 무관한 일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어쨌든 물어보셨으니 사실대로 말씀드리지요.
선왕(先王)께서 임종 전, 조비 세자께 왕위를 넘기셨으니
옥새는 당연히 지금의 신왕(新王)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군 !
조비가 따지려고 널 보냈구나 !"
조창은 사마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노했다.
그러자 사마의는 큰소리로,
"아닙니다 !
저는 공자가 잘못 알고 계신 마음을
돌리게 하려고 온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사마의 !
웃기는 소리 하지마라 !
허창에는 수비군 만 여명 뿐이니
내가 명령만 내리면 하루면 무너뜨릴 수 있다 !"하고,
소리를 내지른다.
그 소리를 듣자,
사마의가 조창의 군막으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간다.
그리고 조창을 빤히 쳐다 보며 말한다.
"맞습니다.
역시 선왕의 아드님답게 야망이 넘치시는군요.
공자의 실력이면 하루도 안 가겠지요.
반 나절이면 충분할 겁니다 !
그러나 선왕께서도 임종전에 당부하셨지만,
지금의 신왕께서는 형제간에 창칼을 맞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공자께서는 형제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여
기어코 성안을 피바다로 만드실 겁니까 ?"
사마의는 핏대를 올려가며 조창을 몰아세웠다.
그러자 일순, 조창의 기세가 꺾여보인다.
그 틈을 놓치지 아니하고 사마의가
더욱 핏대를 올려가며 조창을 몰아세운다.
"허창을 얻는다고 대업을 이룬다고 보십니까 ?
천만에요 ! ...
신왕께서 선왕의 유언을 천하에 공포하면
번성의 조인, 낙양의 서황, 합비에 장요, 호분 장군 허저,
모두 받아들일 겁니다.
그들이 누구 명을 듣겠습니까 ?
내분(內紛)과 안정적인 발전 등,
어느 것을 원하겠습니까 ?
잘 생각해 보십시오 ! ...
공자께선 용맹하긴 하나,
그들 모두는 전쟁에 이골이 난 장수들입니다.
공자께서 그들을 당해 낼 수가 있겠습니까 ? ...
공자 !
대권의 이전은 선왕의 의지이자 하늘의 뜻입니다.
공자가 그 뜻을 거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 "
"으, 음 !"
조창이 그 말을 듣고,
넋 나간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마의가 그 모습을 보고,
조창이 생각할 여유를 주느라고 장중을 서성였다.
그러면서,
"서쪽에 유비, 동쪽에 손권, 이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공자께서 움직이시면 우리의 내분을 기회로 이들도 움직일 것이니,
애써 이룬 우리의 기반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공자 자신의 목숨조차도...
부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공자 ?
지금 왕위를 노리는 것은
유비와 손권을 돕는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시는 겁니까 !"
"아, 아 ! ..."
조창은 사마의의 말을 듣자,
자신이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리하여 사마의의 앞으로 달려나가,
"사마의 선생 !
내가 잠깐 이성을 잃었었소 ! ..."하고,
말한다.
사마의가 차분한 어조로 대꾸한다.
"신왕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나,
이미 병사들을 이끌고 왔으니 어찌하오 ?"
"이끌고 온 병사들을 그냥 내 놓으십시오.
그럼 다 해결될 겁니다."
"병권을 내놓으라구요 ?
갑자기 형님 생각이 바뀌어 날 죽이려들면 어쩌려구요 !"
사마의가 그 말을 듣고,
조창에게 바짝 다가서며 말한다.
"신왕께선 총명하십니다.
공자께서 병권을 내놓으시면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아서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불의하다는 오명까지 들으면서 공자를 죽이려 하겠습니까 ?
신왕께서는 이제 곧 왕위에 오르셨기 때문에 만백성의 민심을 얻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니 그런 쓸데 없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조창이 그 말을 듣고,
망설이더니 결심어린 소리를 한다.
"좋소 !
선생 말대로 병권을 내놓고,
홀로 성에 들어가 형님께 사죄드리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신왕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실 겁니다."
사마의는 조창에게 돌아서 나가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공자께서는
부귀 영화를 누리시게 될 겁니다."
조창은 군사를 성밖에 머무르게 하고
자기 혼자서만 신왕 조비를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빌고,
부왕의 영전에 나가 목을 놓아 울었다.
이리하여 신왕 조비는
안심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니,
연호(年號)를 건안(建安)에서 연강(延康)으로 고치고
건안 이십오년을 연강 원년(元年)으로 하였다.
그리고 모든 군사들의 벼슬을 한두 급씩 모조리 높여 주었다.
그런데 이채로운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상장군 우금(上將軍 于禁)에 대한 처사였다.
신왕 조비는 우금을
조조의 칠십 개의 무덤인 고릉(高陵)을 지키는
능사(陵事)로 봉한 것이었다.
전쟁터를 누비며 병사들을 호령하던 상장군을
능사로 봉한 것도 아이러니 한 일 이거니와,
우금이 신왕의 명을 받고 고릉에 이르러 새로 지은 재당(齋堂)을 살펴보니,
바람벽에는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은 보통의 그림이 아니라
우금을 지독하게 욕보이는 그림이었다.
그 옛날 우금이 관운장에게 붙잡혔을 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관운장은 상좌에 앉아 호통을 치고 있고,
방덕(龐德)은 그 앞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와들와들 떨고 있으나,
우금은 아에 엎드려 관운장에게 목숩을 구걸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지난날 우금이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가 되었을 때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관운장에게 항복한 일을 비웃는 그림이었다.
우금은 그 그림을 보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왕이 자기를 능사로 봉한 뜻을 그제서야 깨닫고
우금은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한 달이 채 못 가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303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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