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그때 그날 밤

오토산 2022. 1. 23. 23:11

사랑방이야기(314)

그때 그날 밤


조선 숙종때 '이운봉'이란 사람이살았다.
열여덟 살 白面書生 '이운봉'은 단봇짐 하나 달랑 메고

문경(聞慶)새재를 넘고 탄금대(彈琴臺)를 지나

주막(酒幕)집에서 겨우 새우잠을 자며,

걸어걸어 '한양'에 다다라 '당주동' 구석진 여관에 문간방 하나를 잡았다.

과거가 한 달이나 남았지만 '한양' 공기도 쐬고 과거(科擧) 흐름도 잡을 겸 일찍 올라온 것이다.

 

허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한 달 동안 먹고 잘 일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였다.
자신이 '행랑(行廊)아범 노릇을 하겠다'며,

좁은 문간방 값을 깎고 또 깎아 다른 방의 반값에 눌어붙었다.

 

밤늦게 외출했던 손님이 돌아올 때면

얼른 나가 대문을 열어 주기도 하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 마당도 쓸었다.

 

밥때가 되면 여관 밥은 비싸서 못 사 먹고 밖에 나가 선술집 국밥을 사 먹기도 하지만,

때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

산적(山賊)처럼 생겨 먹은 '여관주인'은

'운봉'이를 제집 하인(下人) 다루듯 함부로 심부름을 시키고 툭하면 욕을 퍼부어 댔다.

 

하지만, 안주인은 달랐다.

바깥주인 몰래 누룽지도 갖다주고,

삶은 감자도 갖다주며 인정(人情)을 베풀어 어떤 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밤,

안주인은 닭죽에 호리병 가득 탁배기까지 챙긴 소반(小盤)을 들고 '운봉'이 방에 들어왔다.

바깥 주인한테 들킬세라 운봉이가 눈을 크게 뜨자 눈치 빠른 안주인은

 

“걱정하지 마!

그 화상은 노름판에 갔으니 내일 들어올지,

모레 들어올지 몰라.”

 

그러잖아도 배가 무척 고프던 참에

소반을 차고 앉은 '운봉'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닭죽을 비우고 나자,

안주인이 콸콸콸 탁배기 한 잔을 따라 주었다.

탁배기도 단숨에 들이켜고 나자 안주인이

 

“나도 한 잔 따라 주게.”

 

'운봉'이 술을 따라주자 술잔을 서슴없이 비우고 난 '안주인'은

한숨을 푹 쉬더니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여관에서 모은 푼돈이 좀 쌓였다 하면 이 화상은

노름판에 몽땅 처박아 버리고 화난다고 몇 날 며칠 술독에 빠져 살고~,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어느덧 호리병 탁배기가 바닥나자 '안주인'은 부엌에서 또 한 병을 들고 왔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장대비를 맞아 홑적삼이 몸에 짝 달라붙어

40代 초반의 흐드러진 육덕(肉德)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흐~~~,

'운봉'이의 양물이 홑바지를 뚫을 듯이 솟아오른 걸,

적삼을 벗으며 '안주인'이 뚫어지게 보더니 양물을 덥석 움켜쥐었다.

 

"나 좀 살려주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고 빨고 법석(法席)을 떨었다.
소나기 한줄기가 뿌리고 지나가자 옷매무새를 고치며 '안주인'이

 

"운봉이 자네는 이번에 알성급제(謁聖及第)하고

나중에 감사(監司)에 오를 걸세.”

 

'운봉'은 웃으며 지필묵(紙筆墨)을 꺼내

스스쓱~ 글을 써 주었다.
'안주인'은 그걸 들고 호호호~ 하고 한바탕 웃었다.

세월(歲月)은 흐르고 흘러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평양 감영(監營)에 웬 노파(老婆)가 찾아와

'평양감사(平壤監司)의 이모'라며

감사(監司)를 만나겠다고 떼를 썼다.

평양감사(平壤監司)가

 

“나는 이모가 없는데…” 하며

노파(老婆)를 만났더니,
뜻밖에도 바로 그 옛날 당주동(唐珠洞) 여관(旅館)의 안주인이 아닌가! 

 

"그날 밤에 써 주었던 종이를

기름 먹여 이렇게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감사(監司) 어른.”
그때 장난으로 써 준 종이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감사(監司)가 되면 천 냥으로 이 은혜를 갚으리다.

이운봉.’

감사(監司) 덕택에 평양 구경까지 잘하고,

보름 만에 한양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천 냥 보따리를 풀자

중풍(中風)에 걸려 누워 있던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져 사연을 물었다.

노파(老婆)는 이제 반신불수가 된 영감이 겁나지 않아,

그때 그날 밤일을 자세히 얘기해 줬다.
그러자 영감이 버럭 화를 내며 하는 말,

 

“야, 이 바보 천치 같은 여편네야!

기왕 주는 거 한 번 더 줬으면

이천 냥은 받았을 것 아닌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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