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망해가는 나라 걱정한 충신의 역대전리가

오토산 2024. 8. 24. 05:08
● 불원재 유교문화 해설(155)
【망해가는 나라 걱정한 충신의 역대전리가】
 
○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는 ‘고대 제왕들의 치적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변화하는 이치’라는 뜻으로
고려말 이유헌(理猷軒) 신득청(申得淸)이 공민왕에게 치세의 거울로 삼아 실정을 바로 잡고자 지어 올린
363구 1426자의 4.4조 가사 상소문으로 원문은 한자이고 토는 이두식(吏讀式)으로 되어 있다.
 
이 가사는 중국의 역대 제왕들의 나라를 잘 다스리거나 어지럽히거나, 흥하게 하거나 망하게 한 일들을 거론하였다.
첫째 단락은 하나라 걸왕, 은나라 주왕, 주나라 유왕, 진나라 시왕의 잘못된 사례를 들어
선정(善政)을 해야 함을 말하고 있고,
둘째 단락에서는 왕실이 선교, 불교, 무교에 빠졌음을 나무라면서 공자의 가르침을 따를 것을 권유했으며,
셋째 단락에서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빌려 자신의 품은 절의를 밝히고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성군과 충신을 논하며,
마지막 단락에서는 이 노래를 거울삼아 성군과 충신이 나와 치세의 세상이 영원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 역대전리가 원문 해설
貪虐無道 夏桀이난/ 탐학무도한 하(夏)나라 걸(桀)임금은
丹朱商均 不肖하야/ 요임금 아들 단주(丹朱)와 순임금의 아들 상균(商均)이 불초하여
堯舜禹의 禪位相傳/ 요순우는 왕위를 아들에게 주지않고 어진이에 물려주니
어이타가 不知하고/ 어쩌하여 알지 못하고
妺喜女色 大惑하야/ 걸(桀)의 왕비 말희(妺喜)의 여색에 크게 혹하여
可憐할사 龍逢忠臣/ 가련하구나 걸왕의 충신 용봉(龍逢)
一朝殺之 무삼일고/ 하루 아침에 죽임 당하니 이 무슨 일인가
淫虐尤甚 帝辛이난/ 음란하고 잔학함이 더욱 심한 은나라 주왕(辛)은
所見無識 다질하다/ 견문이 무식하고 흠결이 많다
夏傑爲鑑 全昧하고/ 하나라 걸왕의 잘못 거울삼기 어두웠고
妲己冶容 狂惑하야/ 달기(妲己) 미색에 미친 듯 현혹되어
又亡國 自甘하니/ 또 망국을 자초하니
六七聖人 先王廟를 保存하리/ 육칠성인 선대임금 사당을 어찌 보존하리
亡國인들 없을손가/ 망국인들 없을손가
微子仁兄 保宗길로/ 주왕의 형 미자는 나라를 보존코자
去國時를 만났으랴/ 나라를 떠날 때를 만났어라
殺剖比干 觀心할제/ 주왕의 숙부 비간이 충간하자 죽여 심장을 꺼내 볼제
佯狂爲奴 箕子至仁/ 거짓 미치광이로 종이 된 어진 기자는
何故得罪 若此하고/ 어찌하여 이와 같은 죄를 얻었는가
九侯顎侯 竝脯할제/ 측신 구후 악후를 포를 떠서 잔인하게 죽일적에
周侯嘆息 無奈로다/ 서백의 제후창의 탄식도 소용없네
天下大老 姜太公이/ 천하의 현인 강태공이
窮困八十 避紂하야/ 팔십나이 곤궁함에 주왕을 피하여
金相玉色 姬聖人의/ 금옥같은 얼굴의 서백의 제후 희성인이
善養老 좋은 말을 飽聞하고/ 늙은이 섬긴다는 좋은 말을 듣고
渭水陽 磻溪石의/ 위수가의 남쪽 반계석에서
廣張 三千六百釣난/ 곧은 낚시로 삼천육백날 낚시하며
待時流送 歲月이라/ 때를 기다려 세월 보냈구나
周侯獵車 行次나니/ 주나라 문왕이 사냥하러 행차하니
太空行道 天授로다/ 강태공의 행한 도는 하늘이 주었도다
相左武王 伐罪하니/ 주나라 무왕을 도와 주왕의 죄를 정벌하니
殷封孤竹 두아들은/ 은나라 고죽군의 두 아들 백이 숙제는
帝辛之惡 모를손가/ 은나라 주왕의 패악을 모르는가
避居北海 此時로다/ 북해에 피해 살던 때가 이때로다
八百諸侯 尊周하야/ 팔백제후가 주나라 높여 섬기려
武王聖人 踐位하니/ 성인 무왕을 추대하니
不食周粟 仗義하고/ 주나라 곡식 먹지 않음을 의로이 여겨
隱於首陽 採薇하야/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 캐먹고 연명타가
餓死自盡 可憐하다/ 굶어서 스스로 죽었으니 가련하다
幽王宮涅 大惡無道하야/ 포사에 빠진 유왕궁열은 대악무도하여
自亡特甚 如此하야/ 스스로 망함이 이처럼 심하여도
伯陽父言 諫災異 不聽하고/ 백양부가 재앙이 있다 간한 말을 듣지않고
慾笑褒似 烽火들어/ 포사를 웃기고자 봉화를 올렸다가
見弑大戎 自孼일다/ 견웅에게 죽음당했으니 스스로 부른 재앙이다
强暴天子 秦始皇은/ 강폭한 천자 진시황은
趙高之惡 全昧하고/ 환관재상 조고의 흉악에 눈 어두워
仁能太子 扶蘇殺之 可憐하다/ 어진 태자 부소를 죽게하니 가련하다
무삼일고 築長城 北方하고/ 무슨 일인가 만리장성을 북방에 쌓고
送徐不 東海하나/ 불로초 구해오라 서불을 동해로 보냈으나
天下豪傑 爭起하니/ 천하호걸 반기들어 다투어 일어서니
燕臺壯士 荊卿匕와/ 연나라 장사 자객 형경의 비수와
韓室忠臣 子方椎는/ 한나라 충신 장자방의 철퇴는
切齒報讐 그만인가/ 이를 갈며 원수 갚으려 함이 아닌가
漢武帝 求仙할제/ 한무제는 신선을 찾을때에
汾水秋風 悔心하야/ 분수의 가을바람에 마음 돌이켜
亡秦跡 不係함은/ 망한 진나라 자취 좇지 않아 교훈을 얻음이니
艱辛하나 거룩하다/ 위태로웠지만 결심이 거룩하도다
事佛明帝 繪像함은/ 한나라 군주는 부처를 섬기고 불상을 그림이
亡國之兆 不知하고/ 망국의 조짐임을 알지 못하고
夷狄君長 지어되니/ 오랑캐 임금을 위해 궁전을 지었으니
蘭臺石室 그곳인가/ 초왕의 궁전(난대석실)이 그곳인가
史策庫는 무삼일로/ 사서고는 무슨 일로
佛經閣이 되았난고/ 불경각 되었는가
垂統萬世 罔測하다/ 만세에 미치도록 망측하다
王家事佛 代作하야/ 왕실에서 부처를 대대로 섬기어서
覆宗絶祀 這人君의/ 종실을 뒤엎고 제사 끊은 저 임금이
佛門으로 일어나/ 불문으로 들어가서 불교를 일으켜서
明心見性 한단말은/ 마음 밝혀 본성 본다는 말은 일신이 미혹하여 망했으니
一身破作 二物이라/ 한 몸뚱이 부수어 두 개를 만듦이라
나도 남남도 내가 되어본가/ 어찌 내가 남이 되고 남이 내가 되겠는가
獲罪天의 無所禱는/ 하늘에 죄지으면 용서받을 곳 없다는 것은
萬古大聖 孔子말씀/ 만고의 성인 공자의 말씀이라
日月中天 밝은 말로/ 하늘에 해와 달같이 밝은 말로
布在方冊 墨卿跡/ 두루 퍼져 있는 글로써져 있는 자취가
내 눈앞에 밝아있고/ 내 눈 앞에 밝아 있고
師父訓書 하여실제/ 사부의 일러주신 말씀이
내귀에 聰明 又在하니/ 내 귀에 밝아서 또 남아 있으니
耳目若此 무삼일로/ 듣고 봄이 이렇거든 무슨일로
無見無聞 저러한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함이 저러한가
漢帝子 楚王英이/ 한나라 왕실아들 초나라 왕 영이
卽地발서 劒下塵 되단말가/ 이 땅에 넘어져 칼날 아래 티끌이 되단 말인가
佛鬼於世 無靈함은/ 세상에 불교귀신 영험이 없음을
誰人不知 할가마는/ 어느 누가 모를까마는
蜀漢後帝 劉禪이도/ 촉한후제 유비아들 유선이도
凶宦妖巫 惑한 말로/ 흉악한 환관과 요사스런 무당의 혹한 말로
西域佛說 借誣할제/ 서역 불교로 속이는데 넘어가서
四百年 大漢基業/ 4백년 한나라 창업터전이
一夕驅亡 全昧하고/ 하루 저녁에 무너짐을 모르고
酷信巫佛 무삼일로/ 불교와 무교를 무슨 일로 혹하여 믿었던고
昭烈皇孫 北地王과 丞相子/ 소열황손 북지왕과 승상아들
諸葛瞻을 虛委一塵 可憐하다/ 제갈첨은 허무하게 칼끝에 티끌되니 가련하다
晉代衣冠 條忽하야/ 진나라 고관 대신들이 모두가 소홀하여
淸談浮屠 橫行할제/ 노장의 청담과 불교가 횡행할제
不諫逆理 這人君이/ 신하 간언 듣지 않고 도리를 거스른 저 임금이
朝得暮失 다 우습다/ 아침에 나라 얻어 저녁에 잃으니 다 우습다
羲皇上人 陶原亮이/ 희황상인(복희) 도원량이
今是昨非 始覺하야/ 어제 그르고 오늘 옳음 비로소 깨달아
彭澤印綬 乃解하고/ 팽택의 수령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고
就荒三逕 돌아오니/ 거친삼경 고향으로 돌아오니
歡迎谷口 童僕이오/ 동네 어귀 어린 노복이 환영하고
候門指點 穉子들이/ 문앞에 기다리는 어린 자식들이
典午老人 마져인가/ 진나라 사마벼슬 전오노인 맞이하는가
携幼入室 自酌하니/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 술을 마시니
綠酒葛巾 翟夫人은/ 갈건 쓴 남편에 적부인은 녹주를 부어주고
林酒盞前 更勸하고/ 기장 술을 잔에 부어 다시 권하고
北窓枕 無絃琴은/ 북창 머리맡에 줄없는 거문고는
能知翁意 含情하나/ 노인의 품은 뜻을 능히 알겠네
門前柳籬 下菊과/ 문 앞 버드나무 울타리 아래 국화는
園中松 庭畔檟는/ 뜰안 소나무와 뜰밖 가죽나무는
晉時光色 常帶하나/ 진나라 때 영광을 잃지 않고 있으나
山外世界 도라보니/ 산밖 세상 돌아보니
寄奴草色 劉宋일세/ 풀색은 송나라 유씨 왕조에 붙어사는 형색일세
南北朝 紛競하고/ 남북조가 나뉘어 분주히 다투고
五胡五季 擾亂時는/ 오호 오대가 전쟁으로 시끄러울 때
唱歌草起 할랴하니/ 노래지어 읊으려 하니
管子毛生 汗穢하고/ 관자 붓털이 땀으로 더럽힐 듯하고
大唐大宋 可觀跡요/ 당나라 송나라의 볼만한 자취는
墨卿與議 할랴하니/ 묵경(墨翟)과 더불어 의논하려 하니
枚枚盡說 難處中의/ 일일이 다 말하기 어려운 중에
宮淫溺寵 大唐이요/ 총여에 빠져 궁궐이 방탕한 당나라요
帝心暗弱 南宋일세/ 황제 마음이 어둡고 약한 것은 남송일세
仙學佛術 蠱惑함과/ 선학과 불교가 갉아먹고 미혹하여
阿諛苟容 蠹悅함도/ 아첨과 여색에 빠져 기쁨에 탐닉함도
前世秦漢 同轍이오/ 앞시대 진나라 한나라와 같음이요
宦寺寵貴 振動함과/ 환관과 총애받는 귀인들이 요란을 일으켜서
忠賢嘉謨 戮逐함도/ 충신과 현인을 즐겨 모함하여 죽이고 쫓아냄도
前世秦漢 不鑑일세/ 앞 시대 진,한의 교훈을 거울삼지 않음일세
不鑑前世 하여오니/ 앞 시대의 멸망을 거울삼지 않았으니
善安從生 興平하고/ 어찌 평생을 좆아 흥하고 평화롭고
亂亡不至 安住할고/ 어지러이 망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겠는가
創興治平 安社稷도/ 나라 세워 테평세상 다스려 사직을 편안히 함도
前世賢君 同轍일세/ 앞 시대 나라 흥하게 한 임금과 같고
烈士忠臣 眞儒賢이/ 열사와 충신 참선비와 어진이가
亂世라고 없을 손가/ 난세라고 없겠는가
蠹小奸諛 凶賊臣이/ 좀벌레 같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흉악한 적신들이
平時라고 없을 손가/ 평시라고 없겠는가
人君心事 如何中의/ 임금의 마음 어떠한가에
蠹反忠 忠反蠹 이러하고/ 간신이 충신되고 충신이 간신됨이 이러하니
亂反平 平反亂 이러하니/ 난세가 평화되고 평화가 난세되어 이러하니
胡爲不思 무삼일고/ 어찌하여 생각지 않음이 무슨 일인가
嗚呼人君 獨豈然가/ 오호라 어찌 임금만 유독 그러하리오
嗟亦人臣 다 그러니/ 슬프다 신하 또한 다 그러니
一時寵貴 좋다말고/ 한 때 총애 받고 귀하게 됨을 좋다 마소
季世誤君 貪榮家의/ 말세가 되면 그릇된 임금과 영화를 탐하는 자들이
媚諛要華 富貴身이/ 아첨하고 화려하게 부귀를 누리는 자들이
傾國前의 屠戮하네/ 나라가 기울기도 전에 도륙을 당하네
殉忠死義 不顧家의/ 충의를 위해 죽음을 돌보지 않는
殺身夷族 樂節人은/ 죽어서 절의 지킨 동이족 사람들은
他國에도 師則하네/ 다른 나라 사람이라도 배울만 하네
昭昭史冊 春秋筆이/ 밝고 밝은 역사책 춘추필법은
無私하니 萬代眸라/ 사사로움이 없으니 만대의 눈이라
興世事蹟 披閱하고/ 흥할 때 일들을 모두 살피고
季世事蹟 揣摩하니/ 망한 때의 사적 헤아려보니
可憐賢人 榮華되아/ 가련한 현인 영화롭게 되어
千世萬世 遺芳하고/ 천세만세에 아름다운 향기 남기고
富貴小人 可憐되야/ 부귀누린 소인은 불쌍하게 되어
千世萬世 恒殺일세/ 천세만세 어느때고 죽임을 당하네
致身行志 하려다가/ 조정에 나가 품은 뜻 펴려다가
百諫一謨 無用하야/ 백마디 간언이 소용없어
退終巖穴 할랴하면/ 물러나 바위굴에서 일생 마치려 하면
林水之樂 豈窮하랴/ 산수의 즐거움 어찌 다하겠는가
天理此間 順命하면/ 하늘과 땅 사이에 천명을 따르면
無限하니 安身일세/ 무한하게 이 몸 편하겠네
比干見殺 殷人이난/ 비간은 죽임을 당했으나 은나라 어진이라
止則止도 성인일세/ 그칠 곳에 그치는 것도 성인일세
一章歌言 荒澁하나/ 한 장의 노래 거칠고 성글지만
節節懇惻 도야시라/ 구구절절 간절한 정성 되었구나
人君爲鑑 하얏으면/ 임금님이 거울 삼으시면
傳世無窮 하압시고/ 대대로 왕조를 전함이 무궁 할 것이고
人臣取則 하였으면/ 신하가 교훈으로 삼는다면
永命無窮 되었나니/ 그 치세가 영원무궁 될 것이니
於噫乎 世上爲君臣이야/ 오호라! 이 세상에 임금과 신하된 자들이여--
 
○ 신득청(申得淸,1332~1392)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를 지은 신득청은 고려말의 유학자로, 경북 영해출신이다.
고려 충숙왕(1332년)때 형인 실직재(失直齋) 백청(伯淸)과 쌍생(雙生)으로 태어났는데
초명(初名)은 중청(仲淸)이고. 호는 이유헌(理猶軒)이며 평산신씨 불훤재(不諼齋) 신현(申賢)의 손자이다.
평산신씨의 시조는 고려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申崇謙) 장군이며 그의 13세손이자 고려말의 대학자로 원나라 황제의 스승이된 화해사(華海師 신현(申賢)이 영해파(寧海派)의 파조로 중시조가 된다.
 
불훤재의 손자 신득청은 27세 때 형제가 동반 급제하여 나라 안의 명사(名士)들과
원나라 유생(儒生)들을 대상으로 문학강론을 가졌고 장령(掌令)이 되었을 때 송나라의 제도와
의례를 회복할 것을 간청했다.
공민왕 10년(1361년) 전리참의(典理參議) 겸 대언(大言)으로서 중도에 피소되어 익재(益齋) 이재현(李齎賢)과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파직 당하자 벼슬을 그만 두고 귀향했다.
이후 공민왕 15년(1366년) 35세 때 집현전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고,
그후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태복판사(太僕判事)를 거쳐 공민왕 20년(1371년) 가을에
역대전리가를 지어 올리는 한편 목은과 정몽주, 이인복, 형 신백청과 더불어 신돈(辛旽)을 강력히 탄핵했으나
조정이 혼미해지자 다음해 1372년에 결국 고향으로 다시 귀향했다.
 
1392년 고려가 결국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쪽을 향하여 통곡을 하다가 동해에 몸을 던져 순절(殉節)함으로써
일생을 마쳤다.
사후 그의 문도(門徒)인 안동 소산마을의 김삼근(金三近), 김계권(金係權) 부자가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의관을 거두어 영해 봉정산에 초혼장(招魂葬)을 하였다.
훗날 두문동(杜門洞) 서원(書院)에 배향(配享)됐다.
그 후손이 주로 주로 영해지방에 살았는데 신득청의 셋째 아들 신자성(申自誠)은 포은 정몽주의 문인(門人)으로,
조선 태종 이방원이 자신이 살해한 정몽주 등에 대한 벼슬을 증직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이때 신자성은 “전조의 대신 정몽주는 도덕과 곧은 충절을 세우고 강상과 절개를 부식하여 오는 세상을 밝게 열었으나,
조선 조정에서 내리는 작위는 더러워서 옳지 못하며 이것은 천리를 더럽히는 해독을 만나는 것이다”라고 상소하고
낙향하여 그 해 홧병으로 죽었다.
그 후 양촌 권근 등이 그의 사후 사건을 파헤쳐 결국 신자성은 부관참시 당했고 가문은 멸문지화를 입게 되었다.
이때 운곡 원천석이 신득청의 장남인 신예(申藝)의 아들을 몰래 거두어 장성한 후에
그들에게 '본관을 평산이라 하지 말고 영해라 하여라.
그리고 세월이 오면 평산으로 복본하여라'고 당부하였다.
이때부터 신득청의 후손들은 1960년 평산신씨로 복관(復貫)하기 전까지
줄곧 본관을 '영해 신씨(寧海申氏)'라고 하였다.
2010년 영덕 해맞이 공원에 가사 일부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