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38

무하향 주모를 만난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2-(47) *보살 같은 ,無何鄕 주모. 수안에서 구월산이 있는 은률(殷栗)로 가기 위해서는 사리원을 거쳐야한다. 사리원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던 김삿갓 , 산을 하나 넘어 가니 술집이 보인다. 집은 게딱지같이 초라해 보이건만, 옥호(屋號)는 요란스럽게도 무하향(無何響) 이라고 붙어 있었다. 술청에 들어서니 , 주모는 육십을 넘겼음직한 젊은 할머니였다. "주모 ! 술 한잔 주시오." 김삿갓은 삿갓을 벗어 놓고 술청에 걸터 앉으며 다시 말했다. "게딱지 같은 집에 무하향이라는 간판은 너무도 격에 어울리지 않소이다. 주모는 무하향이라는 말의 뜻을 알기나하고 간판으로 내 거신 것이오 ? " 주모는 술을 따라 주면서, "무하향이라는 말이 어서 나온 것인지 , 술장수가 그런 건 알아서 뭐 한다..

양상문과 이별한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2-(46) *男兒何處 不相逢 김삿갓은 감자를 먹어 가며 , 주인에게 이런 말도 물어 보았다. "이 깊은 산중에서 날마다 숯만 구으며 살아가려면 때로는 외로움도 느끼시겠구려." 지환은 당치 않은 소리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한다. "산에는 산짐승 친구들도 많은데다 , 숯을 굽기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구워내는 숯이 많은 아낙네들에게 큰 도움이 될것 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이 여간 기쁘지 않은걸요." 김삿갓은 비록 숯을 굽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즐겁게 해 나가는 지환의 생활상을 듣자 자기 일에 아무런 사명감도 느끼지 못하고 하루 하루를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도 있는데에 비하면 지..

양상문을 만난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2-(45) * 떠도는 구름 ,흘러가는 물.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푸른 산 뿐이지만 , 산 위에는 하얀 구름이 한가롭게 떠돌고,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천천히 음미하던 김삿갓, (물은 흘러도 앞을 다투지 않고 , 구름은 떠 있어도 서로 뒤지려고 하건만, 어째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웬놈의 말썽이 그렇게도 많을까.) 수안 고을에서 만난 , 양상문과 박용택 사이에 벌어진 계쟁(係爭)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일어났다. 욕심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다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 김삿갓은 풀밭에 네 활개를 쭉펴고 누워, 욕심이라곤 하나도 없는, 산과 구름, 골짜기를 지나는 물소리의 자연 그대로를 즐기고 있었다. 그대로 누운채로 ..

가짜 암행어사 김삿갓의 명판결

●방랑시인 김삿갓 02-(44) * 가짜 암행어사 김삿갓의 명판결. 저희 수안 고을에서는 수 일 전에 산적의 두목놈을 체포했사온데 그 자의 자백에 의하면, 귀 고을에 살고 있는 "박용택"이란 자가, 산적의 일당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적을 일망 타진 하기 위해서는 박용택이란 자를 응당 취조해 보아야 하겠사오니, 황주 수령께서는 그 점을 깊이 양해하시와, 백용택을 체포해 올 수 있도록 , 특별 배려를 하여 주시옵소서. 수안 고을 군수 백창수 올림. 박용택을 난데없는 "산적"으로 몰아 붙인 것은 , 그 자가 워낙 지능범으로 판단 되기에 엉뚱한 올가미를 씌워 가지고 범죄 사실을 자기 입으로 실토하게 하려는 김삿갓의 깊은 계교가 숨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사 협조문을 받은 황주 고을 사또는 산적을 잡아..

박용택체포조를 출발시킨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2-(43) * 박용택 체포조 출발시켰다. 그러나 동헌 정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장은 김삿갓의 행색을 훝어보더니 , 대뜸 코웃음을 친다. "이 미친놈아 ! 한양에서 내려 왔다고 하면 누가 겁을 낼 줄 아는냐 ! 사또님이 누구라고 감히 뵙겠다는 것이냐. 경을 치기 전에 썩 물러가거라." 행색이 허술한 것을 보고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김삿갓은 약간은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후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는 큰소리를 쳐볼밖에 없었다. "자네들이 내가 누구란 것을 모르는 모양일쎄, 나는 하옥 대감의 특별 분부를 받들고 내려온 사람일쎄. 사또에게 그 말씀만 전해 주게나. 그러면 사또께서 반갑게 만나 주실 걸세." 아무리 문지기 사령이라도 하옥 대감이라는 말만 ..

어느새 백발이된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2-(41) * 어느새 백발이 김삿갓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자, 수안댁 생각이 새삼스럽게 간절해졌다 "여보게 주모 ! " "왜 그러세요 ? " "나, 술 좀 더 갖다 주게." "그렇게 많이 드셔도 괜챦으시겠어요 ? " "술값 못 받을까 봐 걱정이 되나 ? " "엉뚱한 오해는 마세요. 술값 못 받을까 봐 손님에게 술 안드리도록 쩨쩨한 여자는 아니에요." 주모가 술을 갖다 주자 김삿갓은 연달아 술을 마셔댔다. 깨끗이 잊으려고 마음을 굳힐 수록 수안댁에 대한 슬픔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손님은 웬 술을 그렇게도 잡수세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만 같네요." 주모는 김삿갓의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뼈 있는 질책을 했다. 그러자 김..

다시 방랑길 떠나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2-(40) * 다시 떠나는 방랑길. 천동 마을을 떠나 다시 방랑길에 오른 김삿갓은 지나간 만 일 년간의 일로 오만가지 감회가 무량했다. 애당초 방랑에 나서게 된 것은 , 인간사로 구애를 받지않고 허공을 떠도는 한조각 구름처럼 자유자재로 살아가자는데 있었다. 처자식과의 인연조차 끊어 버리고 표연히 방랑 길로 나선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세상일은 결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 지난 일년 동안은 수안댁과 생각치도 못한 결혼 생활을 해오지 않았던가. 이제와서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면 , 수안댁과 결혼을 했던 일도 꿈만 같았고 , 그런 생활이 일 년 남짓하게 계속되다가 갑자기 사별(死別)을 하게 된 것도 꿈만 같았다. 인생이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을 면할 수는 없다. ..

수안댁과 송편을 빚은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2-(37) * 금반삭립봉천첩(金盤削立峰千疊) .. 소반위에 나란이 빚어 놓은 송편은 수많은 산봉우리가 첩첩히 겹쳐 있는것 같다. 김삿갓은 혼비백산하여 마누라를 잡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수안댁은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다. "여보게 정신 차리라구 ! " 얼굴에 냉수를 끼얹고 인정(人定)을 비벼주고 하여 한바탕 소란을 떤 후에 , 수안댁은 간신히 숨을 돌렸다. "여보게 ! 정신이 좀 드는가 ? 자네, 별안간 왜 이러는가 ? " 수안댁은 남편의 얼굴을 얼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바라 보다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한다. "몸도 불편하신 당신에게 이런 꼴을 보여 드려 미안해요.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요, 잠시 그대로 누워서 안정을 취하구려." 김삿갓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