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97

거경대학에서 기해년 도산서원 알묘를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949 거경대학에서 기해년 도산서원 알묘를 퇴계종택을 나와서 도산서원을 들렸더니 오늘은 모처럼의 청명한 날씨이라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을 하였으며 안동댐의 만수를 이룬 수면은 비닐이 깔린 봄 들판과 같아 보이기도 하였고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태양이 호수위를 비추어 더욱 빛나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청춘남녀를 포함한 여러 방문객들과 함께 어울려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오가며 권갑현 지도교수로 부터 상세한 설명을 들었으며 도산서당옆 매화원에는 매화가 만발하여 선생의 자취를 알려주고 있는 듯 하였다. 전교당에 올라서 준비된 예복을 입고 유건을 쓰고 별유사로 부터 '중문입동문출'의 알묘례에 대한 안내를 들은 후 ..

선조를 찾아서 2019.03.18

퇴계선생의 숨결을 느끼며 종택과 주변을 다녀와서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948 퇴계선생의 숨결을 느끼며 종택과 주변을 다녀와서 선비수련원의 입교식이 끝나고 퇴계기념공원에서 권갑현 지도교수가 '자명'과 '퇴계'의 시비앞에서 선생의 생각과 그 시대의 시대상 등에 대하여 상세하게 곁들이면서 시 내용을 설명하였으며 기획실장이 돌다리를 건너 계상서당에서 퇴계선생이 50세부터 8년간 제자들을 가르키며 검소하게 사셨던 이야기와 젊은 율곡과 2박3일간을 지나고 율곡의 청에 의해 일생에 대한 조언을 하였던 일화를 듣고 계상서당을 나와서 퇴계종택으로 향했다. 추월한수정에서 종손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추월한수정에 마루에 올라가서 종손은'힌국정신문화 수도'의 시민에 걸맞는 행동을 하여야..

선조를 찾아서 2019.03.17

기해년 거경대학 입교식을 다녀와서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획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947 기해년 거경대학 입교식을 다녀와서 모처럼 날씨가 맑은 3월 17일 도산선비문화수련원에서 수련생 백여명이 모여서 2019년 거경대학 입교식이 있었다. 신종주 기획실장의 사회로 개최된 입교식은 국민의례, 상견례, 관계자 소개가 있었고 김종길 수련원장은 수련생들을 환영한다며 퇴계선생의 삶인 경(敬)의 수련을 통하여 배우고 익혀서 도덕과 윤리가 분명한 도덕사회 건립에 노력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이동수 지도교수는 입교식에 이어 퇴계시공원과 계상서당을 돌아보고 퇴계종택에서 종손과의 대화가 있은후 도산서원 알묘로 오늘 행사를 마치고 10개월간 매월 안동과 인근지역,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탐방한다고..

선조를 찾아서 2019.03.17

진성이씨 문과급제자(진이/아허헌)

眞城李氏 文科 及弟者 아허헌 이종문 科擧制度가 고려 광종 때 人材登用策으로 施行한지 540년 만에 처음으로 松齋 堣(6世)가 朝鮮 燕山 4년 戊午年 (1498)에 登科를 始發로 高宗31 甲午(1894) 文求(21世)가 끝으로 396年間에 걸쳐 59명을 輩出하였다. 及第 當時 最高齡으로는 霞溪 家淳(16世)과 淵默(18世) 두 분이 56歲였고 最年少者로는 中泰(19世)로 弱冠 20歲였다. 세분 모두 增廣試였다. 등과 平均年齡은 38歲이고 細分하여 보면 50代가 6名, 40代가 11名, 30代가 37名, 20代가 5名이며, 科種으로 보면 式年試에 34명, 增廣試에 11名 別試에 6名, 庭試에 8名으로 謁聖試 春塘試 등에는 한 분도 없고 오직 定期的으로 實施하는 式年試가 제일 많은 것으로 보아 距離關係로 情報..

선조를 찾아서 2019.02.28

퇴계선생이 자주 찾았던 명옥대를 다녀와서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595 퇴계선생이 자주 찾았던 명옥대를 다녀와서 봉정사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16세때 퇴계선생이 봉정사에서 공부하며 권민의(權敏義), 강한(姜翰), 사촌동생 수령(壽笭)등과 함께 추억을 만들었고 50년만에 다시 찾아 자연을 즐겼던 명옥대를 찾았다. 명옥대(鳴玉臺)는 봉정사 일주문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다 우측계곡에 있으며 1665년(현종 6)에 사림(士林)들이 건립한 누각형태의 정자로 옛 이름은 낙수대(落水臺)였는데 육사형(陸士衡)의 시에 나오는 '솟구쳐 나난 샘이 명옥을 씿어내리네(飛泉漱鳴玉)"는 글귀에 따라 명옥대라 이름을 고치고 자연석위에 원형기둥을 세우고 누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정면 2칸, 측면 ..

선조를 찾아서 2018.09.16

진성이씨의 분파내역(진이카페)

성씨진성 이씨(眞城 李氏)관향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시조이석(李碩)인구66,470명(2000년 통계청)순위113 1. 기원[편집]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구 경상북도 진보현)[1]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충숙왕대에 과거에 급제한 후 홍건적조선조에서 과거에 58명을 배출해낸 영남의 명문가 중하나이며, 남인이황과 흔히 이육사경상북도 안동시와 청송군 일대에 주로 분포하는 성씨이기도 하다.(청송보다는 봉화 영주 예천 의성 문경에 더 많이 세거하고 있다.)2. 상세[편집]이석의 장남 이자수는 만년에 피폐해진 진보를 떠나 안동 주촌으로 이주하였으며, 이후 안동시[2]이자수는 2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운구(云具)로 공조참의를 지냈고, 차남은 운후(云侯)는 군기시부정을 지냈다. 이 운후의 외동아들 선산부사 이정의 3남..

선조를 찾아서 2018.06.15

거경대학에서 온계종택을 다녀와서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295 거경대학에서 온계종택(삼백당)을 다녀와서 노송정종택에서 온계종택으로 가는 길에는 작약밭이 있었고 비닐밑에서 작약싹이 비닐을 뚫지 못하고 불룩하게 밀고 있어서 일행들이 비닐을 뚫어 작약에게도 정성을 베풀고 농민에게도 일손을 도와주었는데 이런 것들이 베품의 정신이고 나눔의 실천이 아닌가 싶었다. 온계종택입구에도 주차장이 일부 확보되어 다행스러웠다. 온계종택은 온계선생의 종택으로 의병전쟁당시 온계종손의 동생 이인화 (1859~1929)가 예안의병장으로 활약한데 앙심을 품은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되고 종가는 계속되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청송, 예천, 문경등을 전전하다 해방후돌아와 종택별당이었던 취미헌(翠微..

선조를 찾아서 2018.04.23

거경대학에서 노송정종택을 찾아서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294 거경대학에서 노송정종택을 찾아서 월란정사를 구경하고 나서 온혜리에 있는 노송정종택을 찾았더니 종택앞에 주차장이 확보되어 있었고 도로에서 종택까지 들어오는 도로는 확장중이었다. 온혜(溫惠)마을은 동쪽에 청계(淸溪)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용계(龍溪)가 용수사쪽에서 남으로 흘러 영지산에서 흘러온 온계(溫溪)와 합수하여 동남쪽 도계(兜溪)로 흘러 퇴계로 흘러가 상계와 하계로 흘러 낙동강에 이른다. 세종때 영변판관으로 부사를 도와 약산성을 넓히고 영변에 큰진을 설치하고 최윤덕을 따라 모린위를 징벌하는데 공훈이 있어 원종공신의 작훈을 받고 한산과 선산수령이 되어 치적을 남기신 정(禎)의 막내로 태어난 이계양..

선조를 찾아서 2018.04.23

거경대학에서 월란정사를 다녀와서

사진이 잘 보이지 않ㅇ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291 거경대학에서 월란정사를 다녀와서 이육사문학관을 나오니 빗방울이 오락가락하여 월란정사 답사를 할까 걱정을 하였으나 하늘은 우리들의 답사를 도와 주어 오늘답사가 끝날때까지 참아주었다. 월란정사(月瀾精舍)는 내살미마을에서 싹시골(삵실)가는 길 왼족 언덕위에 위치하고 도로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20여분 오르면 의성 사촌의 만취당 김사원과 간재 이덕홍이 도산에 입문하여 10년간 수학하던 월란암(月瀾菴) 옛터에 1860년 사촌김씨 문중에서 지은정자로 동재를 은구재(隱求齋), 서재는 선생이 손수 고정(考亭)의 관선시(觀善詩)를 써 주시어 관선재(觀善齋), 마루는 선생의 서림화운시 연산월영(憐山月映)의 '선생을..

선조를 찾아서 2018.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