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69>
북진 도강을 하겠다는 종택 장군의 상소를 고종은 불허하고, 간신 장방창은 능지처참을 당한다.
개봉에 있던 장방창(张邦昌)은,
종택 장군의 예측데로 저항없이 곡단의 군사를 받아들여 고종 황제가 내린 전지를 받았다.
개봉을 접수한 곡단 장군은 무법천지가 되어 있는 치안부터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 하자
점점 치안이 회복되어 갔다.
곡단이 개봉을 통제하자,
장방창은 이제는 황제가 될 꿈을 버리고 이틀이 지나자 남경(南京)의 고종황제(高宗皇帝)에게 가기로 마음 먹고
황제에게 바칠 금은 보화와 궁안에 남아 있던 여인들 중에서 새 황제를 모실 궁녀를 데려가기로 마음 먹었다.
오랑캐가 철 수하면서 자신을 황제에 임명 했지만 자신은 즉위하지 않고 개봉 사수에만 전념 하였다는
실적을 내세워서, 황제에게 환심을 얻어 왕후(王侯)의 자리를 하나 얻어 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많은 군사를 대동할 수 없는 관계로 육로 보다는 시간이 좀더 걸리더라도
궁녀 대동과 호위에 안전한 뱃길을 이용해 가기로 하였다.
맹황후를 모시고 많은 궁녀들을 태우다 보니 백여척의 대 선단이 되었다.
장방창의 생각은 운 좋게도 그대로 적중 하는 듯 하였다.
오랑캐에게 부역을 한 역적이라며 능지처참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재상 이강(李康)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것이다.
오랑캐의 위험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는 양자강 남쪽 금릉(金陵)으로천도(迁都)해야 한다는 간신 왕백언과
황잠선의 주장을 극력 반대 하다가 재상에 오른지 불과 칠십 칠 일만에 파직되고 만 것이다.
장방창이 이십 여일의 항해 끝에 남경에 도착하여 선물과 궁녀들을 갖다 바치자,
이강이 재상으로 있을때에는 장방창을 참수 할 생각이었으나,
우매하고 겁이 많은 고종 황제는 새 재상 황점선에게 장방창의 처리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냐고 물어 본다.
황잠선은 장방창과 같이 한결같이 오랑캐와의 전쟁을 피하고 화친을 주장 했던 터라
은근히 감싸고 돌면서 말한다.
"소신의 장방창의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금나라의 협박에 못이겨 황제의 자리를 수락 했던 것은 사실이나,
즉위는 하지 않았으며, 황제 폐하의 전서를 받고는 폐하의 명에 의하여개봉을 접수하는
종택 장군에게 대적 하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자진해서 폐하에게 충성을 다 할 것를 맹세하는 것이니
가벼히 처리하심이 옳을 줄로 아옵니다."
"으음, 그렇지?
짐의 생각도, 만약 그를 괄시하면 후일 오랑캐에게 재침의 구실을 줄 수도 있으니
차라리 왕작(王爵)을 하사하여 짐의 넓은 아량을 배풀면 금나라와의 화친에도 유리 하지 않겠어?" 하며
한 술 더 뜨는 황제 였다.
오랑캐에게 전 국토를 말 발굽에 짖밟히고 백성들은 고통을 시달리고
아버지 휘종과 형 흠종이 포로로 잡혀 갔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골치아픈 것은 피하고,
호사스러운 궁중에서 아릿따운 미녀들과 황제의 재미나 누리겠다는 고종의 생각이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은 장방창의 생각데로 안군왕(安郡王)에 명해져 국가의 주요 대사의 결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편,
종택 장군이 십만 대병을 이끌고 개봉성에 입성하자,
강건너에 주둔하며 개봉의 상항을 수시로 확인 하고 있던 금나라군은 대경실색 하고 말았다.
어떻게 십만의 군졸을 단번에 양성하였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오랑캐들은 정상적인 방법만 생각 했지,
산적을 단 몇날 만에 관군으로 편입시켜 정예화 하였단 사실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충신 종택 장군이 개봉유수로 부임했다는 소식이 퍼져 나가자
전국 곳곳에서 오랑캐에게 저항하던 의병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명정 장소(张所)의 휘하로 들어가 있다가 장장군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귀양을 가자
흩어졌던 의병장 왕언(王彦)과 악비(岳飞)도 개봉으로 종택 장군을 찾아왔다.
"오오, 악 장군!
과연 소문이 다르지 않소, 풍체에서 영웅 호걸의 모습이 풍겨옵니다.
이제 장군까지 오셨으니 실지를 수복하고
두분 황제 폐하를 모셔오는것도 어렵지 않게 되었구려!
나라의 앞날이 장군 같이 젊은 이에게 달려 있구료"
고희(古稀)의 노장군 종택은 그동안 신출 귀몰한 작전으로
오랑캐의 혼을 빼놓았다는 이야기를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막상 삼십대의 젊은 악비를 만나고 보니 든든 하기만 하였다.
젊은 악비도 종택 노장군의 충성심과 성품을 익히들어 알고 있었으나
막상 대하고 보니 마음속에 한층더 존경스러움이 솟아났다.
두 장군은 서로 손을 꼭 잡고는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민족의 영웅들이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금나라군은 마침내 개봉을 포기하고 강건너 주둔지에서 삼백여리나 뒤로 후퇴 하였다.
이기회를 이용 실지를 수복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악비 장군은 종택 대원수에게 건의한다.
" 장군님!
이제 실지회복의 기회가 왔습니다.
오랑캐가 후퇴한 것은 현재 우리군의 사기가 충천한 것에다가 정예병을 수십만이나 확보하자
우리가 공격을 한다면 저들은 버티기가 어렵다는 걸 알고서 미리 후방으로 진지를 옮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북에 있는 의병들과 합세 오랑캐를 포위 기습공격을 감행 한다면
수천리가 되는 북방 금나라에서 지원군이 적시에 오기가 힘들어
우리가 승리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것을 물론이고,
적의 본거지 하란산을 넘어 적도(敌都) 황룡부 까지 무너뜨려 버린다면
다시는 우리 송나라를 넘보지 않을 것입니다."
"옳은 상항판단이요!
지금 즉시 황하를 건너 북진 할 전투준비는 되어있으나,
어찌되었든 황하는 적과 약속한 경계선이니 강을 넘어 진격하려면
황상폐하의 재가를 얻어야 하니 지금 당장 상소문을 써서 폐하의 재가를 받도록 하겠으니,
즉각 출정 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유지 하도록 하시오?"
노장군은 북진을 허락해 달라는 상소문을 써서 급보로 전령을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전지는 짐의 허락 없이는 절대 황하를 넘어서는 않된다고 되어 있으며
조만간 금릉으로 천도하니 궁정이 안정 될때까지 방어에 주력하라는 당부까지 있으니
종택 장군은 허탈하고 기가 막혔다.
그러나 종택 장군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없어
계속해서 도하(渡河)를 윤허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우매한 고종은 오랑캐와 새로운 근심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하여
현상만 유지 된다면 굳이 일거리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계속 불허한다는 전지를 내릴 생각 밖에 없었다.
또다시 상소가 올라 오자 고종은 종택 장군이 자신의 황명을 거역한다고 대노하였다.
그러자 재상으로 있는 간신 황잠선은 고종에게 종택장군이 도적놈들과 내통하여
그들의 죄를 사면해 주고자 오랑캐와 전투를 벌인 후
그 공과를 만들기 위해 '도적놈들을 감싸고 돈다(包庇盗匪)'는 누명까지 뒤집어 씌워버렸다.
천신만고 끝에 죽음까지 각오하면서 태행산 산적 왕선두령을 비롯한 수십만의 정예들을 감화시켜
관군으로 만들어 놓았더니 이제와서 도적과 내통한 반역의 무리라니 기가막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승리를 목전에 둔 절대절명의기회에 윤허를 받기위한 상소문이나 쓰면서 허공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늙은 종택 장군은 울화통에 지병인 등창이 터져 사경을 헤메는 매우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혼미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삼국시대 촉(蜀)이 위(魏)나라 조비(曹丕)를 치기위하여
일곱번이나 출병했다가 끝네 이루지 못하고 오장원(五丈原) 의 황량한 들판레서
떨어지는 별똥별과 함께 숨을 거두었던 와룡생(卧龙生)제갈량(诸葛亮)의 사당을 참배하며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시성(诗圣) 두보(杜甫)의 시를 목청을 높여 또렸하게 암송을 했다.
승상의 사당은 어디서 찾을까?
금관성 밖의 잣나무 우거진 곳이로 구나.
층계의 파란 풀 절로 봄빛이요, 잎사이의 꾀꼬리 부질없이 고운 소리로 우네.
삼고의 번거로움은 천하를 위한 계책이요, 두 조정을 섬기는 늙은 신하의 충성심이라.
출병하여 이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후세에 영웅들의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당(唐). 두보(杜甫).
<촉상(蜀相)>
암송을 마친 종택 장군은 아쉬움이 남는지
마지막 두 귀절을 눈물과 함께 다시 큰 소리로 되눼인다.
출병하여 이기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후세에 영웅들의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좌우를 돌려보던 대원수 종택 노장군은 악비를 향해서 두눈을 부릅뜨고는 외친다.
"장군!
강을 건너시오, 강을!
하~황하를 건너 오랑캐를 무찌르시오?" 하고는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나 부릅뜬 그의 두 눈은 북쪽 오랑캐를 노려보고 있었다.
개봉의 모든 백성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집집마다 장군을 애도하는 상등을 달고 장군의 죽음을 함께 슬퍼 하였다.
그러면서도 후덕(厚德)한 그의 아들 종영(宗颍)이 부임해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고종은 개봉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재상 황잠선의 일당인 두충(杜充) 을 개봉 부윤으로 임명하고 말았다.
두충은 새로 부임하자 마자 산적 출신이었던 왕선(王善), 양진(扬进), 이귀(李贵)등의
부재를 홀대하며 군량도 배당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명식 참수해 가기 시작하자 다시 뿔뿔이 흩어져 옛 소굴로 도망가 다시 산적이 되기도 하였다.
왕선등은 아예 개봉 인근의 작은 성을 빼앗아 이를 갈면서 두충에 대항하기 까지 하였다.
금나라 군대는 종택이 단시일 내에 수십만 관군을 편성 개봉에 입성하자
삼백 여리나 후퇴하여 재침공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종택이 죽고 자중지란이 일어나자 다시 황하 북쪽으로 군대를 전진 배치 주둔하였다.
고종은 오랑캐가 전진 배치되자, 서둘러 양자강 남쪽 금릉으로 천도해 버리고 말았다.
개봉성은 점점더 절해고도(绝海孤岛)의 고립무원(孤立无援)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신출 귀몰한 작전으로 오랑캐의 제일 겁을내는 장수
의병장이었던 악비 장군만이 개봉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
목숨까지 걸어가며 몸소 태행산에 찾아가 왕선 두령과의 담판으로 칠십만 산적을 감화시켜
막강한 힘의 관군을 만들어 감히 오랑캐 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우매한 황제 고종과 간신들의 치정이 다시 나라를 수렁텅이에 빠뜨리고 있었다.
한편,
재상에서 물러난 강직한 충신 이강은 장방창을 중벌로 처벌 해야 한다는 것을
누차 상소를 올리자 조정의 중신들의 중론도 장방창을 중벌 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고종은 장방창을 처벌 할시 금나라의 보복이 두려워,
잠시 담주(谭州)로 가서 피신해 있으면 다시 복위 시키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장방창이 담주로 가고나자 조정에서는 그를 감싸주는 중신들이 말을 아껴서 하게 되었다.
염랑세태(炎凉世态)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이에 용기를 얻은 맹황후가 고종에게 화국부인 이씨와의 불륜을 고해 바치자,
고종은 대노하여 화국부인 이씨를 금부(禁府)로 압송하여 친히 문초하였다.
고종은 이씨 부인을 메달아 놓고는 옷을 빨가 벗겨
지글지글 달아오르는 숯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되자
연약한 여인인 화국부인은 궁중의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순순히 실토하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고종은
장작더미위에 발가벗은 이부인을 산채로 올려놓고는 화형에 쳐하고 말았다.
복숭아처럼 빠알간 연지 바른 그 얼굴,
애당초 하면 언될 잘못된 사련(邪恋)
하루아침 뼈는 재가 되어 바람에 날리니,
무산(巫山) 운우(云雨)의 정(情)도 한점 이슬이 되누나!
장방창은 담주에 도착하자 마자
금의위관(锦衣卫官)들에게 체포되어 금릉으로 압송되었다.
문초가 시작되자 완강히 부인하던 장방창은 형틀에 묶어 주리를 틀며
궁녀등 증인들과 대질 신문이 이루어 지자 이실직고(以实直吿)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방창은 저자거리의 나무 기둥에 못 박혀 죽었다.
죽은 시체는 다시 사지(四肢)를 말 여섯마리에 묶어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이라는 극형에 처하였다.
백성들은 이 광경을 지켜 보았고 찢어진 시체는 들 짐승의 먹이로 주었다고 하니,
간신의 한 때의 영화가 이렇게 비참하게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나라가 위태로워야 국난을 극복 할 우국지사가 나타나고,
백성들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나라가 흥성하고 평화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역사속에서 교훈으로 보아 왔다.
충신들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에 온갖 고생과 실행을 실천하는데,
정작 앞장서야 할 황제는 오직 자신의 영달에 온 힘을 쏟는구나
휘종, 흠종에 이어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한심한 고종이여!
장차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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