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계집은 담장을 넘고 선비는 혼비백산 법당으로 피신

오토산 2021. 4. 20. 17:35

금옥몽(속 금병매) <106>
비바람 치는 밤 음욕을 못이긴 계집은 담장을 넘고,

선비는 혼비백산 법당으로 피신한다.


오월이지만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고 있던 금계는

칠흑같은  밤중에 쏟아지는 빗물을 피해 몸만 빠져나와서는 무너진 담벼락을 잡고 따라가 보았다.
벽 뒷편에 있던 엄수재도 놀라서 깨어난 듯 여기저기서 새는 빗줄기를 피하느라

한쪽 손에는 등불을 들고 책과 이불을 치우고 있었다.

어둠을 뚫고 등불에 비친 엄수재의 이목구비는 더 남성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금계는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음욕의 불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매일밤 벽에 난 틈사이로 몰래 훔쳐보며 그의 가슴에 안겨보고 싶어 애간장을 녹였던 일과,

가까이서 보기위해 법화암을 찾았건만 못다한 인연을 하늘이 비를 쏟아부어 기회를 만들어 주신거라

제멋대로 짐작하고는 금계는 물 불 가리지 않고 허물어진 벽을 뛰어넘어 엄수재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라버니!

나, 미치겠어요 .
나 좀 살려주세요.

응?" 하면서

다짜고짜 침상위에서 이불과 책을 정리하고 있던 엄수재의  몸을 꼭 껴안고는 

코맹맹이 소리로 뜨거운 입김을 귓가에 불어 넣으며 흐느끼듯 속삭였다.

"당신, 누 누구요?
누구신데 이러는거요,

으악!"

백옥처럼 하얀 전나의 여인이 난데없이 쏟아지는 빗발을 맞으며 한밤중에 나타나

자기를 껴안고는 살려 달라 흐느끼니 순진한 수재는 깜짝 놀라 어안이 없었다.
더군더나 늘씬하게 뻗은 두 다리로 자신의 하반신을 구렁이 처럼 칭칭 감고는

가슴에 와 닿는 젖가슴은 숨을 막히게 하니 귀신인지 사람인지 구분도 못하고

머리가 어질하여 정신를 잃을 지경이었다.

문득 정신를 가다듬고  창밖을 보니

법당에 불빛이 보이며 부처님의 인자하신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제서야 정신를 차린 엄수재는 금계의 알몸을 밀쳐 내면서 벌떡 일어났다.

"낭자!
이러면 아니되오.
이 어찌된 일이오?" 하고는

쏟아지는 빗속을 뛰쳐 나갔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법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몸을 숨기고 말았다.
엄수재의 마음속에서는 석가모니의 온화한 미소가 퍼지고

법당안이 온통 오색빛깔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달빛인가? 안개인가,?
온화한 미소로 바라보는 부처님얼굴,
법당 가득 환하게 퍼져가는 오색광채,
악마와 요괴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고
법당안 불상들은 말끔하게 때를벗네.

반짝이는 유리등불 부처님 공덕인가?
시궁창에 활짝피는 연화(莲花)의 미소.
무생무멸(无生无灭)의 진리를 깨치네.
석가모니 머리위에 피어나는 한줄기 빛,
불탑(佛塔)속에 찬연한 열반의 보석사리.
불경에서 불가사의( 不可思议)란 뜻에는 법화경(法華经)의 온갖 진리가 이 넉자에 담겨있다.

그런데 인간들은 짧고 얕은 머리로서 우주의 온갖 진리 까지도 가사의(可思议)

즉 헤아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총명하고 기지가 있고 기량(技量)이 넘치며

거기다 권모술수 까지 더하여 이러한 '가사의'의 존재들로 말미암아 숱한 충돌과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야심한 오밤중에 쏟아지는 빗물 탓이라 하여도 하얀 알몸의 요염한 처녀가

품에 뛰어 들어와 안기니 고자 아닌 남자라면 어느 누가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엄수재는 혈기왕성한 젊은 나이에 차마 뿌리치기 힘든 유혹을 의연히 이겨내고

법당의 석가모니에게 몸을 의지하였으니, 득도한 성인 군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하니 그때 유리등불이 터지고 떠오르는 햇살같은 찬란한 오색빛살이 법당 안에 퍼진것이다

이것이 과연 어찌된 일이더냐?

인간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헤아릴길이 없으니,

이를 두고 불가사의(不可思议)라 할수 밖에 없다.
엄수재는 어찌나 놀랐던지 아직도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쳤다.
금방이라도 알몸의 여인이 법당안으로 쫒아 들어올것 같았다.
다시 그 여인이 쫓아와 수재를 유혹 한다면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수재는 부처님께 알몸의 여인이 더이상 나타나지 않게 하여 달라고

오채투지(五体投地)의 절을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이 무너져,

내 침상에 누워있는 알몸의 여인이 깔려 죽기라도 한다면 어떡한담?하고

마음씨 착한 수재는 금계의 안위을 걱정했다.

어둠은 사심과 함께 요귀를 부르고, 참된 공덕은 음욕의 불길 물리친다.
한마리 파리는 정갈한 담벽 못넘고, 명경지수에 티끌이 어찌 떠 있으랴?
헛된 망상 잘라내는 지혜의 보검, 함정을 건너뛰어 탐욕의 강 넘네.
닭이 울고 먼동 터 폭풍우 끝나고, 광명정대 진리의 불법 뉘 안믿을까!
훗날 누군가 그 상황을  시로 칭송해 주었다.

금계는 엄수재가 놀란 나머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는 하였지만

틀림없이 돌아 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어떤 남자가 여자의 알몸 공세를 싫어한단 말인가,

돌아오기만 하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안 놓아 줄 것이라고 다짐 하면서

수재의 침상에 알몸으로 누워서 기다렸다.

기다려도 돌아오지는 않고,

음탕한 욕정의 불길은 옥문 주위를 활활태우며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기다려도 오지는 않고 어느덧 먼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
금계는 더이상 번뇌하지 않고 벽 틈사이로 수재의 품에 안긴 생각으로 요분질하던 것처럼

음욕의 불을 끄고는 투덜대며 자기의 방으로 건너갔다.

비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는 밤은 바로 귀신과 신령들이 출몰하는 그런 때이었다.
때마침 어둠을 괸장하는 야유신(夜遊神)과 천둥번개를 일으키는 뇌공(雷公) 전모(电母) 부부

그리고 바람과 비의 신령들인 풍백(风伯)과 우사(雨师)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입을 모아 칭송했다.

"엄수재?
장하다!
혈기왕생한 젊은이가 입안에 들어온 산해진미도 내벹어 버리다니,

참으로 장하구나!"

집안 부뚜막에 숨어사는 부뚜막 신 토군은 날이 밝자마자 이 사실을 토지신에게 보고했고,

토지신은 다시 성황신께 음덕을 내려달라 상소를 올리니

과연 엄수재는 훗날 과거에 응시하여 불가사의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고 볼 일이다.

날이 밝자마자 무섭게 쏟아지던 빗줄기도 한풀 기세가 꺽이었다.
엄수재는 복청 스님에게 지난밤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면서

알몸으로 방에 왔다는 사실은 제외하였다.

그리고는  함께 무너진 서재를 살펴보려 갔다.
법화암과 여씨댁이 경계를 이루고 있던 낡은 담벼락은 빗물이 스며들어

군데군데 무너져 진흙더미로 변한 곳도 있었다.
무너진 흙더미에는 조그만 발자욱이 어지러히 찍혀 있었다.

"아,

여기로 앞집 처녀가 넘어 왔다가 갔구나."

"아니,

여기 이 발자욱들은 여자아이 발자욱 같은데,

왜 여자 발자욱이 찍혀있지?"

엄수재와 복청 스님은 모두 발자욱을 보고 간밤의 사태를 짐작했지만

누구도 입에 꺼내지는 않았다.
잘못하면 남의 규수 앞날을 막아 시집도 못가거나,

아니면 창피스러워 우물에 몸을 던지거나 목메달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청 스님은 발자욱을 지우게 하고는 사람을 수소문해 낡은 벽과 무너진 벽을 새로 쌓았다.
엄수재는 복청 스님에게  인사를 하고는 짐을 싸서 아주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는 법화암 부근에 얼씬도 하지않았다.

금계는 간밤의 일을 생각만 해도 분하고 속이 상했다.
다행히  엄수재나 암자에서 아무도 간밤의 사건을 이야기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엔 요염한 여자의 육탄 공세에도 유혹되지 않는  목석같은 남자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