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충렬공 김방경선생 묘소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3. 6. 26. 19:47

충렬공 김방경선생 묘소를 다녀와서

 

1950년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발발하였던 6월 25일

11:00  묵향대회의실에서 2023 진성이씨대종회총회를 마치고

일가 어른 세분과 함께 녹전면 죽송리(능동마을)에 있는

충렬공 김방경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능동(陵洞)마을은 충렬공의 묘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충렬공묘 부근의 묘에서 시사(時事)를 지낼때 회오리바람이 불고

가마귀와 까치들이 제물(祭物)을 물고 가버리는 이변이 발생되어

먼저 충렬공 묘에 술을 올려 제사를 지냈더니

이변이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고 한다.

 

묘소 아래 음수재(飮水齋) 앞에는

불교의 청정, 유가의 충의, 도교의 근원을 수행하는 이승휴의 삼교합일

태도와 경지를 평가하여 답한 단모부답부(旦暮賦答賦)비가 자리하고

탄신 800주년기념비와 사적비 등이 서 있었으며

묘소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 1212~1300)선생은

경순왕의 후손으로 한림학사 김효인(金孝印)의 아들로 회곡에서 태어나 

조부 김민성(金敏成)으로 부터 학문을 닦고 상락대에서 무예를 연마하여

1227년(16세 고종 14)) 양은사 동정으로 관직시작하여 삼별초의 난을 평정,

몽고와 일본정벌에 많은 공을 세워왔으며 1273년(원종 14) 문하시중이 되고

1283년(72세 충렬왕 9) 추충정란공신 삼중대광첨의중찬 판전의시사로 퇴임.

1295년(84세 충렬왕21) 첨의령을 더하여 상락군 개국공 공작이 내려지며

식읍 3천호, 식실봉 3백호를 하사 받았으며

1300년(89세 충렬왕 복위2) 개경에서 흉서하여 유언에 따라 녹전에 안장하였다.

 

충선왕은 벽상삼한삼중대광 선충협모정란공신을 추증하고 '충렬' 시호를 내리며

왕명으로 신도비를 세워 우리나라 신도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 묘소를 참배하였더니 비문에는

高麗 推忠靖難定遠功臣 壁上三韓三重大匡 僉議中贊世子師

上洛郡 開國公 諡忠烈 金方慶 之墓라고 쓰여져 있었다.

 

충렬공 묘소를 참배하고 뒤편에 있는 묘소를 찾아보았더니

贈嘉善大夫吏曹叅判 兼同知義禁府事 成均生員 金公 之墓

貞夫人 陽城李氏 之墓라 새겨진 비석이 있었으며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조

농수(聾守) 김효로(金孝盧 1454~1534)선생의 묘소였다.

 

묘소를 내려와 유래비와 기념비 등을 돌아보고

진주대첩의 김시민 장군이 충렬공의 12세손이고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선생이 충렬공의 24세손이며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조는 충렬공의 7대외후손이라는 사실도 배우며

 

재사주변에 심어져 누렇게 익어가는 잎담배를 보면서

잎담배를 따고 엮어서 황토벽돌로 지어진 담배굴에서 쪄내어

말린다음 손질하여 수매를 하던 옛 추억을 떠 올리며

우리는 선양리를 거쳐 예끼마을로 갔다.

 

예끼마을에서 옛 선성현 관아이었던 곳을 찾아

선성현아문(宣城縣衙門)을 지나 장부당(掌簿堂)카페에 들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더위를 식히며 한참을 쉬었다가

나오면서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솟대도 구경하고 

예안 31운동의 유래에 대하여도 알아보고

우리는 온혜의 도계정사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