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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鳳山龍鳳寺 니들이
행정동우회산악회에서 충절의 고장, 도청소재지도시
충남홍성에 있는 용봉산용봉사로 등산을 나섰다.
기암괴석이 장관인 용봉산은 높이 381m로 산전체를 뒤덮고
있는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보는듯하여 소금강이라 하며
고려시대는 北山, 조선시대는 八峰山
일제시대에는 홍성군에 위치한 산줄기가 龍鳳山(용봉사)
예산군에 위치한 산줄기가 수암산(수암사)로 불렀으며
1973년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땅에 사는 온갖짐승과 새의무리는봉황이 지배하고
물고기를 비롯한 물속의 모든것들은 용의 지배를 받아
평화로운 시대를 보내고있었다. 그후 하늘의 부름을 받아
승천하면서 산의 형상이 용의 몸통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용봉산으로 불렀다.
용봉사는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용봉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로 백제말에 창건
된것으로 추정되며 조선후기까지 수덕사에 버금가는
큰절이었으나 1906년 平壤趙氏가문에서 공조참판을 지낸
조희순의 묘를 쓰면서 사찰을 현위치로 옮겼다.
용봉사 마애불입상(보물제355호)는 799년(신라)에 용봉사
입구 절벽에 조각되었고 머리는 큼직하며 얼굴은 타원형이다.
눈과 입은 얼굴에 비해 가늘지만 미소가 얼굴전면에 퍼져있고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들고있다.
용봉사浮屠는 승려의 유골을 안장한 묘탑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이부도는 용봉사 서쪽능선에
고려시대사찰인 용봉사 터에 있던것을 1910년에 평양조씨
가문에서 문중선조묘를 쓰면서 현위치로 옮겨졌다.
세상사 한마디
부활이라면 예수님을 먼저 생각을 하게된다.
그러나 현대판 부활사건이 일어난 사실이 있었다.
월남전 당시에 월맹군에게 포로가 되어서 실종되었으나
그 당시에는 모두 전사로 처리되어 호적은 사망으로 정리되고
국립묘지에 안장이 되었다.
72년 맹호기갑연대 유ㅇㅇ씨는 전사처리후 포로교환으로
돌아와서 국립묘지는 파묘하고 호적에는 "부활"로 정리되었다.
만주에서는 김일성이 사망으로 정리되었다가 나타나서
호적부에 "출현"으로 기록된 사례도 있었다.
용봉사마애불
용봉사부도
우물위의 약사여래불
병풍바위
평양조씨 묘소
잘정비된 개곡
등산후 하산주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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