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38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하)

김삿갓 76 -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하)] ​김삿갓은 대갈이의 몸짓과 표정이 하도 우스워 아까부터 배를 움켜잡고 웃으며 "가루지기 타령에 나오는 사설을 곧이 곧대로 옮기는 재주와 기억력이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연극은 계속 되었다. ​변강쇠가 옹녀의 옥문관을 들여다 보며 한바탕 잡소리를 늘어 놓고나자, 이번에는 옹녀가 변강쇠의 사타구니를 유심히 들여다 보는 척하다가 사뭇 감격스러운 듯 노래조로 이렇게 뇌까리는 것이었다. ​"낭군님의 물건은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히도 생겼네. 전배(前陪)사령을 서려는지 쌍걸랑을 늦게 차고, 五軍門 軍奴런가 목떠기를 붉게 쓰고, 냇물가의 물방안가 떨구덕 떨구덕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철고비를 둘렀구나. 감기에 들었는가 맑은 코는 무슨 일고 ​性..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 "중편"

김삿갓 75 -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 "중편"] 까불이가 박수소리에 맟춰 어깨춤을 엉거주춤 찌긋찌긋 추어가며 나무 이름을 거침없이 엮어 나가자 좌중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김삿갓은 허리를 움켜잡고 웃다가 술잔을 내밀어 주며 덕담을 했다. "이 사람아 ! 병신 육갑한다더니 , 자네 꼴이 영락없네. 까불이 자네는 어디를 가더라도 밥을 굶진 않겠네." "예끼 이 친구야, 삼십 년 만에 만난 처지에 나를 보고 각설이 패가 되란 말인가 ?" 이렇게 까불이가 익살을 부리는 바람에 좌중에는 또다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또다시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친다. "이번에는 "장타령"을 한번 듣자 ! 뭐 하냐 ? 땅꼬마 ! " 그러자 땅꼬마로 불린 친구가 쭈뼛쭈뼛 빗발치는 독촉에 마지못해 일어서며 말한다...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 "상편"

김삿갓 74 -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 "상편"] 다음날 아침, 김삿갓은 아침을 얻어 먹기 미안해서 변서방의 집을 일찍 나섰다. 밤사이 첫 눈이 내려 발을 뗄 때 마다 뽀드득 소리가 연이어 났다. (오늘은 드디어, 오랜 세월을 두고 그리워했던 천동 마을에 가게 되었구나 ) 이렇게 혼자 중얼거린 김삿갓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흥분이 일었다. 그러다보니 눈으로 얼어버린 길도 제법 쌀쌀해진 산 속의 추위도 관심밖의 일이었다. 한참을 걸어가자 까맣게 잊어 가던 기억속의 희미한 눈에 익은 산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장난꾸러기 친구들과 어울려 50 리가 넘는 곡산 장거리에 몇 차례 다녀 본 길이 아니던가. 이렇게, 눈에 덮힌 험한 산 굽이를 돌아 갈때 마다 옛날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김삿갓이 산길..

고향가는길, 오애청산도수래

김삿갓 73 - [고향가는길, 오애청산도수래(吾愛靑山 倒水來)] 신계에서 곡산까지는 높고 가파른 산길로 백여리를 가야 한다. 김삿갓이 어린 시절을 보낸 천동 마을은 곡산 읍내에서도 다시 산속으로 60여리를 더 들어가야 하는 첩첩 산중, 감둔산 (甘屯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곡산으로 가는 길 조차 산이 높고 길이 험해 고개 하나를 넘는데도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길이 천동 마을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지루한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김삿갓은 눈 앞에 펼쳐지는 산천을 정답게 바라보며 걸어가다가 문득 구양수의 시를 떠 올렸다. 산빛은 멀고 가까움에 다름이 없어 하루 종일 산만 보며 걸어 가노라 보이는 봉우리 모양은 제각기 다르고 그 이름조차 나그네는 알 길 없어라. 고향이 가까워져가자 ..

돌팔이 의원 집에서 보내는 기막힌 하룻 밤(하)"

김삿갓 72 - [돌팔이 의원 집에서 보내는 기막힌 하룻 밤(하)"] 여인은, "약을 먹지 않고도 뱃속에 애기를 떼어 버릴 방도가 있기는 있사옵니까?" 하고 다시 물어본다. 그러자 제생당 의원은 자신 만만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약을 쓰지 않고도 애기를 떼어 버릴 비방이 있지! 그런 비방은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를 걸세." "의원님! 그렇다면 저한테만은 그 비방을 꼭 좀 알려주시옵소서." "자네는 약 값을 낼 형편도 못 된다니까, 내가 싫든 좋든 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김삿갓도 그 비방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어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잔뜩 기울이고 있었다. 만약 제생당 의원이 남이 모르고 있는 그런 비방을 알고 있다면, 그야말로 이곳 제생당 의원이야 말로 천하의 명의임..

돌팔이 의원 집에서 보내는 기막힌 하룻 밤. "상편"

김삿갓 71 - [돌팔이 의원 집에서 보내는 기막힌 하룻 밤. "상편"] 다음날 아침, 조반을 얻어 먹은 김삿갓은 곽호산 훈장에게 금천의 산천을 두루 돌아 보겠다고 말을 하고 떠났지만, 마음은 이미,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곡산에 가 있었다. 그의 발길은 곡산을 향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곡산을 가기 위해서는 신계를 거쳐야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산길을 걷던 김삿갓의 눈에, 신계를 앞둔,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입구에 "臍生堂藥局" 이라고 쓴 커다란 간판이 희미하게 보였다. 김삿갓은 그 간판을 잘못 보았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다시 보니, 틀림없는 "臍生堂藥局"이었다. 김삿갓은 빙그레 웃음을 웃었다. 간판 글자가 터무니 없는 글자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약국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다. 따라서 약..

곽 노인이 말한 "팔도의 특성"

김삿갓 70 - [곽 노인이 말한 "팔도의 특성"] 개성을 떠난 김삿갓이 예성강(禮成江) 물줄기를 따라 이틀쯤 거슬러 올라가니, 그때부터는 사람들의 말씨도 다르거니와 얼굴조차 다르게 보였다. (여기가 어딜까 ? ) 사람들의 사투리가 정겹게 들려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디인지 물었다. "여기는 황해도 금천 땅이라오." 김삿갓은 이곳이 황해도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불현듯 복받쳐 오르는 어린 시절의 향수에 가슴이 젖어왔다. 김삿갓은 어린시절, 황해도 곡산(谷山)에서 7년을 살아 온 바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 금천에서 2백여리만 더 올라가면 곡산이 아니던가 ? 사투리가 정겹게 들린 이유가 이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황해도의 지세는 멸악 산맥이 황해도를 동, 서로 갈라 놓고 있다. 서쪽은 바다가 가까운..

선죽교 참배와 앉힘 술집(하)

김삿갓 69 - [선죽교 참배와 앉힘 술집(하)] ​ 망국의 설움이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처량한 시였다. ​김삿갓은 저물어 가는 선죽교 위에서 선비가 읊는 시를 듣고 문득 선비에게 말했다. ​ "많은 이들이 이곳 선죽교를 다녀 갔을 터인데 알려진 시가 고작 한 편밖에 없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렇다면 제가 즉흥시를 한 수 읊어 볼까요 ? " ​선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만약 한 수 읊어 주신다면, 저는 두고 두고 마음속에 아로새겨 두겠습니다." ​ 김삿갓은 잠시 시상에 잠겨 있다가 시를 한 수 읊었다. ​ 고국강산 입마수(故國江山立馬愁) 옛 강산에 말 멈추니 시름이 새로운데 ​ 반천왕업 일공구(半千王業一空邱) 반천 년 왕업이 빈터만 남았구나 ​ 연생폐장 한아석(煙生廢墻寒鴉夕) 연..

개성 사람들의 두문동 정신. 선죽교 참배(상

김삿갓 68 - [개성 사람들의 두문동 정신. 선죽교 참배(상)] ​김삿갓은 진봉산으로 철쭉꽃을 찾아 떠났다. 과연, 진봉산 철쭉은 변계량이 읊은 시 처럼 천하에 절경이었다. 제법 험한 산 전체에 철쭉꽃이 얼마나 많이 피어 있는지,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산 전체가 훨훨 불타오르는 듯 했는데 가까이 와 볼수록 더욱 놀라왔다. 철쭉꽃은 진달래꽃과 비슷하면서도 취향은 크게 달랐다. 진달래 꽃의 빛깔은 청초한 연보랏 빛이어서 순결 무구한 숫처녀를 연상하게 하지만, 철쭉꽃은 꽃송이 자체도 풍만하려니와 빛깔도 농염하기 짝이 없어 진달래 꽃과 견주어 보건데, 한창 무르익은 삼십대 여성의 육체가 연상된다. ​진봉산에 피어 있는 꽃은 오직 진달래와 철쭉 뿐이었다. 진달래 꽃이 한물 가자, 철쭉꽃이 때를 만난 듯이 황홀하..

개풍군수 강영창의 마부(馬夫) 살리기

김삿갓 67 - [개풍군수 강영창의 마부(馬夫) 살리기] 장단을 떠나온 김삿갓은 개풍(開豊) 땅으로 들어섰다. 이날 밤 김삿갓은 어느 마을에 있는 서당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서당의 훈장의 이름은 한상흥이었는데 , 인물이 풍채도 좋았지만 선량해 보이는 선비였다. 그런데 훈장은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 김삿갓과 마주 앉아서도 연신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김삿갓은 그런 광경을 보다못해 이렇게 물어 보았다. "훈장께서는 어떤 걱정꺼리가 있기에 이렇듯 한숨을 쉬고 계시오 ? " 그러자 훈장은 몇 번의 한숨을 더 쉬곤 ,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는 오십 평생에 남에게 못할 짓은 안하고 살아 왔는데 , 오늘은 사람을 죽이는 실수를 하고 말았으니, 어찌 마음이 괴롭지 않겠습니까."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