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38

장단에서 黃眞伊를 회상하며

김삿갓 66 - [장단에서 黃眞伊를 회상하며]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김삿갓이 임진나루를 건너 얼마를 더 가니 長湍 땅에 이르렀다. 이곳은 송도의 三絶로 불려오는 기생 黃眞伊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당시 송도 사람들은 황진이와 함께 성리학자 서경덕과 박연폭포를 송도 삼절로 불렀다. ​김삿갓은 황진이는 비록 기생이기는 했을망정 신사임당과는 또 다른 분야에서 여성 존재를 길이 역사에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진이는 이처럼 뛰어난 여성이었기에 김삿갓은 황진이의 무덤만은 꼭 참배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전에 많은 남성들을 희롱해 온 일이 무척 후회가 된 임종 직전의 황진이가 ​"내가 죽거든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백골을 밟고 다닐수 있도록 길가에 묻어 달라." 고 했던 황진이의 무덤을 ..

벽제관에서 옛 일을 회상하며 만난 선풍도인

김삿갓 65 - [벽제관에서 옛 일을 회상하며 만난 선풍도인仙風道人] ​ 북쪽으로 북쪽으로만 길을 가던 김삿갓은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길을 가던 초립동이를 보고 물었다. ​ "날이 저물어 어디선가 자고 가야 하겠는데, 이 가까이에 절이나 서당 같은 것이 없느냐?" ​ "절이나 서당은 없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벽제관碧蹄館에 주막이 있어요." 김삿갓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 "그래? 그럼 여기가 바로 벽제관이란 말이냐?" ​ 이곳이 벽제관이라는 소리에 김삿갓은 불현듯 임진왜란 당시의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 선조는 질풍노도와 같이 진격해 오는 왜군을 피해 의주義州 까지 피난을 가게 되었다. ​눈 앞에 압록강을 건너면 명 나라 땅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수도..

결코 만만치 않은, 만만(滿滿)집 주모. "하편"

김삿갓 64 - [결코 만만치 않은, 만만(滿滿)집 주모. "하편"] "지금 저 여편네는 술장사를 해먹을 망정 사람 하나만은 진국이라오. 인정 많고, 남의 사정 잘 알아주고 ... 계집으로서는 돼 먹은 계집이지요." 김삿갓은 조금 전까지 서로 아옹다옹 다투던 모습과는 달리, 백수건달이 주모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형이 주모를 칭찬하는 것은 너무도 뜻 밖이구려. 나는 두 사람이 개와 고양이 사이처럼 보였는데." "주모와 나 사이가 개와 고양이처럼 보인다구요? .. 근데요 사실은 주모가 나를 아껴주고 , 내가 주모의 사정을 알아주고... 딱히 뭐랄 것은 없지만 그렇게 지내지요." "노형이 주모를 이렇게 좋게 말하고 있지만, 외상술을 안주려는 것을 보면 주모는 노형을 별로..

결코 만만치 않은, 만만(滿滿)집 주모. "상편"

김삿갓 63 - [결코 만만치 않은, 만만(滿滿)집 주모. "상편"] 인왕산을 내려온 김삿갓은 세검정을 지나 무악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주.장단을 거쳐, 오백년 망국지한이 서린 고려의 도읍지, 송도에 가보려는 것이었다. 무악재 고개위에 올라서니, 넓은 들판이 한눈에 환하게 내려다 보여, 한양을 돌아보며 생겼던 갑갑증과 함께 우울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터벅터벅 산 길을 내려오던 김삿갓의 눈 앞에는 커다란 소나무 그늘 아래서 농삿꾼 인 듯싶은 장정 하나가 지게와 낫을 옆에 놓고 네 활개를 쫙 펴고 태평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나무를 하러 가다가 낮잠을 자고 있는듯 하였다. 김삿갓이 가까이 다가 가자 그가 불현듯 벌떡 일어나 앉는데, 두 눈이 왕방울 처럼 부리부리하고 머리에는..

한양 광교 다리 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김삿갓 62 - [한양 광교 다리 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 잠자리를 찾아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는 동안 어느덧 거리는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얼마후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저마다 도망이라도 치듯이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렇게도 야단스럽던 한양의 거리가 삽시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 김삿갓이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조금전 들렸던 종소리는 통행 금지를 알리는 인정人定소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양 도성에 통행 금지가 있다는 것을 알 턱 없는 김삿갓은, ​(그 많던 사람들이 별안간 어디로 가버렸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어둠이 깔린 거리를 혼자서 유유히 걷고 있었다. ​얼마를 걸어가다 보니 저만치서 순라군 巡羅軍인 듯한 사람 네 댓이 김삿갓 쪽으로 비호같이 달려..

오얏나무 이씨 조선, 한양의 풍수와 인심

김삿갓 61 - [오얏나무 이씨 조선, 한양의 풍수와 인심] 참담한 가슴을 안고 남한 산성을 내려온 김삿갓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양으로 향했다. 이렇게 며칠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봄도 무르익어 이 집 저 집 담장마다 복사꽃과 오얏나무 꽃이 만발해 있었다. 오얏나무는 이씨 조선과 인연이 깊다. 김삿갓은, 李씨를 뜻하는 성씨가 "오얏나무 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 말엽 공민왕때, 그 당시 한양 땅에는 난데없이 오얏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며 꽃을 피웠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이같이 오얏나무가 무성하더니, 해를 갈수록 그 숫자가 차고 넘쳤다. "이상하다"... 모두가 이렇게 여기고 있을때, 術師가 이를 보고 장차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한양 땅에서 크게 일어 날 것이라고 예언을 ..

병자호란, 남한산성에서 당한 치욕의 그 날을 생각하며

김삿갓 60 - [병자호란, 남한산성에서 당한 치욕의 그 날을 생각하며] 그로부터 두어 달, 김삿갓이 이천 땅을 떠돌아 다니다가 광주 땅으로 들어섰을 때는,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사람이 사는 세상사는 무던히 변덕스럽지만, 계절의 변화는 매년 올곳이 돌아온다. 어제 까지만 하여도 추위를 느꼈건만, 입춘이 지나고 보니 조금만 멀리 걸어도 등골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봄볕에 한결 넉넉해진 김삿갓은 문득 시 한수를 읊조려 본다. 해마다 해는 가고 가고 끝없이 가고 날은 날이 날마다 끝없이 오고 있네 해는 가고 날은 와 오감은 끝이 없는데 우주의 모든 일이 그 속에서 이루어지네. 年年年去 無窮去 연연연거 무궁거 日日日來 不晝來 일일일내 불주래 年去日來 來叉去 연거일내 내차거 天時人事 此中催 천시인사 차..

단명하신 세종대왕과 장수하는 노인]

김삿갓 59 - [단명하신 세종대왕과 장수하는 노인] 신륵사에서 서쪽으로 십 여리 떨어진 北城山 양지바른 곳에는 世宗大王의 英陵이 있다. 세종 대왕의 능은 처음에 廣州 大母山에 있었는데 대왕이 승하하신 19년이 지난 뒤인 예종(睿宗) 원년 1469년에 이곳으로 移葬해 온 것이다. ​세종 대왕은 모든 문물에 조예가 깊으셨지만 불교에 대해서도 남다른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 것을 알고 있는 후예들은 불심이 깊으셨던 대왕의 영령을 받들어 모심과 함께, 대왕의 극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영릉 부근에 守護寺를 새로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땅히 절을 지을 만한 곳을 찾지 못하자, 영릉에서 동쪽으로 십여리 떨어진 신륵사를 세종 대왕의 영령을 수호하는 절로 삼으면서 신륵사란 이름을 報恩寺로 바꾸었으나, ​고려때 부..

각 도(道) 의 이름이 지금처럼 불리는 이유]

김삿갓 58 - [각 도(道) 의 이름이 지금처럼 불리는 이유] 김삿갓은 원주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때는 가을도 깊어져 초겨울 이었지만 산속 오솔길을 비추는 햇볕은 봄날 처럼 따듯했다. 호젓한 산길을 얼마간 걷다가 어떤 촌로 한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원주에 사는 친구의 환갑 잔치에 간다는 것이다. 노인은 길을 가면서 김삿갓에게 물었다. "노형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저는 한양으로 가는 길입니다." "허, 한양을 가신다니 부럽소이다. 나는 육십 평생에 원주 나들이 조차 처음이라오. 원주가 경기도 땅이지요? " 하고 묻는다. 김삿갓은 촌로의 무심함에 적잖이 놀라면서, "아닙니다. 원주는 강원도 땅입니다. 본디 강원도라는 이름은 원주라는 고을 이름에서 따온 것 입니다." 촌로는 김삿갓의 말을 ..

첫날밤 소박맞은 세 자매(하)

김삿갓 57 - [첫날밤 소박맞은 세 자매(하)] (인생은 모름지기 여자로 태어나지 말지어라.) "첫날밤에는 신부가 반드시 옷을 벗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옷을 제가 직접 벗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신랑님이 벗겨 주시겠습니까?" ​큰언니는 옷을 벗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워 소박을 맞았고, 둘째 언니는 자기 손으로 옷을 벗은 탓에 소박을 맞은 고로, 신부 동순은 신랑의 의사를 존중해 줌으로써 소박을 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로 부터 그런 질문을 받자 눈 알이 튀어 나롤 정도로 놀라는 것이었다.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신부가 제 손으로 직접 옷을 벗겠다고?" ​"신랑께서 옷을 벗겨 주시거나, 저더러 벗으라고 하시던가 신랑님 좋으실 대로 하세요." ​신부는 어떡하던지 소박을 맞지 않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