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638

거경대학에서 청송 백석탄을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청송 백석탄을 다녀와서 신성리 공룡발자국 화석을 구경하고 나서 안동으로 오면서 신성계곡 백석탄을 찾았다. 신성계곡(薪城溪谷)은 방호정에서 백석탄에 이르는 1.5㎞ 구간으로 길안천이 감입곡류하면서 공격사면에는기암절벽이 생겨나고 맞은편에는 충적지형이 분포하여 농지와 취락으로 이용되어 길안천에서 경관이 제일 수려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함안조씨들이 정착하면서 베어낸 숲이 성처럼 쌓였다고 하여 붙여진 신성리의 지명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백석탄계곡(白石灘溪谷)은 약 7천만년전의 화산활동으로 백석의 용암이 빠르게 흐르다가 신비스럽게 굳어진 것으로 계곡의 수려함과 산모퉁이를 따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의 흰돌들이 모여 여울을 만들었고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태고의 신비를 가득 품은 절경으로 백년설로 뒤 덮인..

지역문화 2021.05.23

거경대학에서 청송 공룡발자국을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청송 공룡발자국을 다녀와서 방호정을 나와서 건거편 신성계곡에 위치한 공룡발자국 화석을 찾아갔다. 신성리 공룡발자국은 연점산등산로 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연점산 등산로는 길안의 천지갑산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청송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신성리 공룡발자국은 단일 지츠면에서 발견되는 국내 최대규모의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로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하여 신사면이 깍이고 무너지면서 드러났는데 2004년 포항 대흥초등학교 이상원 교장선생님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1억년전(중생대 백악기) 신성리는 수심이 얕은 호숫가 였으며 호수와 먼 곳에 초식공룡으로 몸집이 크고 네발로 다니는 용각류 공룡과 곤충 등을 잡아 먹으며 두발로 뛰어 다니는 수각류 공룡들이 살고 있었고 당시 신성리의 기후는 건조하고 가믐이 ..

지역문화 2021.05.23

거경대학에서 청송 방호정을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청송 방호정을 다녀와서 송학서원 답사를 마친 우리는 안덕면 신성리 신성계곡 위치하고 있는 방호정을 찾았다. 감입곡류가 휘돌아가는 다리를 건너 츌입문(松霞門)을 지나면 방대강당(方臺講堂)이 자리하고 그 옆에 길안천이 흐르는 절벽위에 방호정이 있다. 방호정(方壺亭)은 스스로 산림처사로 은거하면서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다 여생을 보낸 조준도(趙遵道 1575~1665)가 1619년에 건립한 정자로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한 사내의 모정이 만들어낸 산물로 생모 안동권씨의 묘소를 밑에서 바라볼수 있는 푸른바위와 맑은 물이 휘감아 도는 위치에 있다. 이 곳의 지형이 '方'자형이므로 스스로 호를 방호(方壺)라 하고 '어며니를 그리워 한다'는 뜻으로 사친당(思親堂)이라 하였으며 전면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

지역문화 2021.05.23

거경대학에서 청송 송학서원을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청송 송학서원을 다녀와서 청송의 소헌공원을 출발하여 부동면을 거쳐 안덕면 장전리에 있는 송학서원을 찾았다. 송학서원(松鶴書院)은 안덕면 장전리에 위치하고 청송지역 유림들이 퇴계 이황이 유풍을 진작하고 유교진흥에 공이 많은 점을 칭송하였고 당저(명당 3리)의 외가에서 태어난 학봉 김성일과 여헌 장현광의 덕도를 흠모하여 지역유림 공의로 1702년(숙종 28) 당저에 서원을 건립하여 세분의 위패를 모시다가 1869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6년에 다시 송학서원으로 복원하였으며 이황이 단양군수 재임중일때 관향인 청송을 그리워하면서 읊은 청송백학수무분 벽수단산신유연(靑松白鶴雖無分 璧水丹山信有緣) 구절에서 '松'자와 '鶴'자를 따서 '송학서원'이라 하고 강당과 동재(直方齋), 서재(..

지역문화 2021.05.22

거경대학에서 청송 찬경루를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청송 찬경루를 다녀와서 시골식당에서 버섯전골로 맛있는 식사를 마친후 객사와 찬경루, 청송심씨사적비, 부사송덕비가 있고 외씨버선길 2길의 시점인 소헌공원을 찾았다. 소헌공원(昭憲公園)은 2011년 4월 7일 지역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선시대 가장 어진 왕후로 칭송받는 세종왕비 소헌왕후의 시호를 따서 이름지어진 역사공원으로 청송은 소헌왕후의 본향이라는 연유로 1459년(세조 5)에 청송군에서 청송도호부로 승격되어 437년간 도호부로서 위상을 지켜오다가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때 다시 청송군이 되었다고 한다.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함께 힘을 합하여 주왕산국립공원탐방안내소에서 단종이 잠시 머물렀던 영월 객사 관풍헌(觀風軒..

지역문화 2021.05.22

거경대학에서 청송 송소고택을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청송 송소고택을 다녀와서 기곡재사 답사를 마친 우리는 파천면 덕천마을의 송소고택을 찾았다. '덕천마을'은 고려말에 이름을 얻어 조선이 개국되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고자 두문동으로 들어갔던 악은(岳隱) 심원부(沈元符)의 후손들이 약600년간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 청송심씨의 본향으로 조선왕조를 통해 정승 13명, 왕비 4명, 부마 4명을 배출하였고 심원부의 형 심덕부(沈德符)는 조선개국 공신으로 좌의정을 지냈고 다섯째 아들 심온의 딸은 세종과 혼인한 소헌왕후라 한다. '송소고택(松韶古宅)'은 영조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대처(沈大處)의 7세손 송소 심호택이 호박골에서 덕천마을로 옮겨오면서 건축한 가옥으로 대문채와 주인이 거처하던 큰 사랑채와 우측에 작은사랑채가 있고 사랑채와 함께 '..

지역문화 2021.05.21

거경대학에서 청송 기곡재사를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청송 기곡재사를 다녀와서 어제 부처님오신날을 보낸 5월 20일 09:00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거경대학에서 버스 2대에 40명이 나누어 타고 청송지역으로 답사를 떠났다. 오후부터 온 다던 비는 버스가 출발하니 내리기 시작하여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나서 권갑현 지도강사는 도산십이곡에 대한 설명을 하신다. 도산십이곡은 퇴계선생님이 지으신 詩에 대전에서 의사를 하시는 김종성님이 곡을 붙여서 도산서원에서 시행되는 모든 행사에서 불려진다면서 전 6곡은 언지를 담았고, 후 6곡은 언학을 담았으며 1곡은 자연에 묻혀 살겠다는 내용이고 2곡은 허물없도록 살겠다는 내용이며 3곡은 착한 인성과 순한 풍속으로 살겠다는 내용이라 설명하며 유튜브와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 보니 버스는 진보를 거쳐 신..

지역문화 2021.05.20

안동의 동족부락과 입향시조

안동의 동족부락과 입향시조 정약용(丁若鏞)은 안동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설명하면서 그 곳(안동)의 풍속은 가문마다 각기 한 분의 조상을 모시고 하나의 장원(莊園)을 점유하여 같은 일가끼리 살면서 흩어지지 않으므로 공고하게 유지하여 뿌리가 뽑히지 않았다. 그 예를 들면, 진성 이씨(眞城 李氏)는 퇴계(退溪:李滉)를 모시고 도산(陶山)을 점유하였고, 풍산 류씨(豊山 柳氏)는 서애(西厓:柳成龍)를 모시고 하회(河回)를 점유하였고, 의성 김씨(義城 金氏)는 학봉(鶴峰:金誠一)을 모시고 천전(川前)을 점유하였고, 안동 권씨(安東 權氏)는 충재(沖齋:權橃)를 모시고 계곡(鷄谷)을 점유하였고, 의성 김씨는 개암(開巖:金宇宏)을 모시고 호평(虎坪)을 점유하였고, 풍산 김씨(豊山 金氏)는 학사(鶴沙:金應祖)를 모시고 오미..

지역문화 2021.05.18

안동 고택 ‘충효당’의 부엌 8각 기둥에 숨은 비밀

[조용헌의 영지 순례] 안동 고택 ‘충효당’의 부엌 8각 기둥에 숨은 비밀 글·사진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한자문화권에는 상수학(象數學)이라고 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거의 30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상(象)은 형상을 가리키고, 수(數)는 글자 그대로 숫자이다. 상과 수가 중요한 이유는 하늘의 뜻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이 무엇이냐? 서양식으로 물으면 ‘신의 뜻이 무엇이냐’다. 이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하늘의 답변은 상과 수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상과 수를 보면 지금 정치가 제대로 가고 있다, 이번 전쟁은 하면 진다, 다음에 흉년이 닥친다 등등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하늘의 뜻은 사태가 오기 전에 미리 조짐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말하자면 상과 수는 고대 제사장의 전공이었던..

지역문화 2021.05.11

선성산성을 다녀와서

선성산성을 다녀와서 온계종택에서 안동무궁화 기념식수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선성산성에 심어진 안동무궁화를 찾아 보았다. 선성산성(宣城山城)은 도산면 서부리 선성현문화단지내에 위치한 독립된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에 태를 두르 듯 성벽을 쌓은 산성으로 기본적으로 신라의 축조방식이나 일부구간에 고구려 축조방식을 따르고 있어 축조시기가 7세경 통일신라 전후로 추정되며 면적 12,881㎡, 길이 약500m이다. 산성은 통일신라 전후부터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용하였음을 말해주는 다수의 유물이 발굴되었고 산성내부에서 확인된 유물의 규모와 형태 등은 당시 성곽조성을 위해 막대한 공력이 투입되었을뿐 아니라 문루와 각주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상당한 수준의 격식을 갖춘 산성임을 짐작할수 있다..

지역문화 2021.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