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97

거경대학에서 윷판대와 이육사문학관을 다녀와서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290 거경대학에서 윷판대와 이육사문학관을 다녀와서 퇴계묘소 참배를 마치고 하계마을 뒷산을 올라 육사의 광야 시상지 윷판대를 거쳐 이육사문학관을 관람한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강의실에서 경전독송시간을 가졌다. 윷판대는 하계마을에서 원촌마을로 가다가 오솔길을 한참오르니 부직포가 깔린 산책로가 있었고 이육사의 시비도 서 있는 산책로를 따라가니 굽이쳐 흐르는 강과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멀리 왕모산이 보이는 곳에 마을 부녀자들이 봄이면 윷놀이를 즐기던 반석에는 윷판이 그려져 있었고 '쌍봉.윷판대'라 표시판도 세워져 있었으며 이곳에서 이육사는 신비로운 절경을 '광야(曠野)' 시로 그려내었다고 한다. 한참을 땀..

선조를 찾아서 2018.04.23

거경대학에서 퇴계묘소와 하계마을을 다녀와서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287 거경대학에서 퇴계묘소와 하계마을을 다녀와서 4월22일 고종황제가 우정총국을 개설(1884.4.22)을 명령한날을 기념하여 1956년 '집배원의 날'로 시작하여 '체신의 날'로부르던 '정보통신의 날'이며 1970년부터 사작된 새마을 운동의 지속적인 실현을 위하여 2011년 제정된 '새마을의 날'이기도 하다. 거경대학에서 4월담사로 퇴계선생의 향기를 느낄수 있는 도산지역을 찾아서 하계마을, 퇴계묘소, 육사시상길, 이육사문학관, 월란정사, 노송정종택, 온계종택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지며 첫번째로 하계마을과 퇴계묘소를 찾았다. 下溪마을은 퇴계선생이 초년에 잠시 양진암(養眞菴)을 짓고 살았던 마을이고 사후에..

선조를 찾아서 2018.04.22

의성 오상리 동강서당을 다녀와서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229 의성 오상리 동강서당을 다녀와서 작승국민학교 옛터를 돌아보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사곡면 오상리(오동)에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85호로 지정(1994.4.16)되어 있는 동강서당을 찾아갔다. 동강서당(桐岡書堂)은 1605년 지어진것으로 전하며 지붕기와 일부에서는 順治 七年八月 日이라는 중국 연호(1650)가 새겨진것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퇴계선생의 삼종손인 桐崗 李希程(1532~1612) 진성이씨 사곡파 입향조가 농운정사에서 퇴계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선조때 통례원 인의(通禮院 引儀)를 지내신후 안동 와룡 주촌에서 임진왜란을 피해 오토산 기슭으로 피신하였다가 오상리(오동)에 동강서당을 지어 인근 선비들..

선조를 찾아서 2018.03.23

거경대학에서 도산서원 참배를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220 거경대학에서 도산서원 참배를 도산서원 선비문화 수련원에서 입교식을 마치고 퇴계시공원과 계상학림등 퇴계선생의 숨결이 살아있는 흔적들을 돌아보고 종택에 들려서 종손으로부터 좋은말씀을 들은후 도산서원을 찾았다. 도산서원에서는 지난해부터 입구에 '도산서원 참 알기 도우미의 집'을 운영하여 토,일요일과 공휴일에 도우미를 배치하여 개별적으로 입장하는 방문객들에게 도산서원에 대한 안내를 하면서 도움을 주고 있다. 도산서원에 도착하여 3개조로 나뉘어서 도산서당, 몽천, 정우당, 절우사, 농운정사, 옥진각등을 탐방하며 선현들의 흔적과 그 유래에 대하여 설명을 들은후 전교당에서 예복으로 갈아입고 상덕사에 들려 퇴계..

선조를 찾아서 2018.03.19

퇴계종택과 계상학림, 시공원 탐방을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219 퇴계종택과 계상학림, 시공원 탐방을 제2원사에서 입교식과 경재잠 강의를 마치고 3개팀으로 나뉘어서 퇴계종택과 계상학림, 시공원등을 탐방하고 도산서원 알묘를 하였다. 종택에서는 종손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좋은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87세의 이근필 종손님은 공부는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보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효과가 있다며 거경대학에서 敬을 배우고자 하는데 대하여 감사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우리 민족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라며 각자가 욕심을 줄이는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인격을 닦아가자고 하셨고 친필로 쓰신 義在正我(의리는 나를 바르게 하는데 있다)와 선대에서 ..

선조를 찾아서 2018.03.19

안동 치암고택(조용헌 살롱)

[조용헌 살롱] [1132] 안동 치암고택 (恥巖古宅)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기사 인쇄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스크랩 글꼴 선택 글자 크게 글자 작게 100자평0 페이스북0 트위터 더보기 입력 : 2018.02.26 03:15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주자학의 가풍은 중국 본토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의 안동·도산 일대에만 명맥이 남아 있다. 안동 일대의 온혜(溫惠), 상계(上溪), 하계(下溪), 계남(溪南), 원촌(遠村), 의인(宜仁), 외내(烏川),내앞(川前), 하회(河回), 무실(水谷) 등이다. 소수민족이 사는 동네 같은 분위기가 있다. 여기에 수백년 된 고택들이 백 여채 남아 있다. 이 주자학 고택들은 동학, 6·25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고 산업화의 물결에도 ..

선조를 찾아서 2018.02.26

선몽대에서 선현들의 발자취를 되새겨 본다(송하)

선몽대에서 선현들의 발자취를 되새겨 본다李 翰 邦(백송파 22세) 경북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행소리)는 퇴계의 둘째 형님인 예천훈도醴泉訓導 이하(李河)公(1482-1544)이 처가 함양박씨 세거지인 용문 금당실에 우거寓居하다가 둘째 아들인 찰방공 이굉(李宏 1515-1573)이 온혜 노송정종택에서 백송리로 입향하게 된다. 난산(卵山)에는 입향조인 이굉과 이열도의 묘가 있고 사두혈이라고 한다. 백송마을은 연소(燕巢;제비집) 형국(形局)이라고 한다. 白松里(백송리)는 건지산에 흰 소나무가 있어 힌소리가 변하여 행소리 또는 백송(白松)이라고 한다. 진성이씨 백송파 입향조인 찰방공은 퇴계 문인으로 퇴계선생으로 부터 편지 2통을 받았고, 1530년대에 금곡리로 부터 처가인 백금리(행소리)로 이거移居하였다. 묘는 ..

선조를 찾아서 2017.12.20

이계양선생의 노송정종택 탐방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 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436 이계양선생의 노송정종택 탐방 온계종택을 떠나 노송종 종택을 찾았더니 입구에 뚝향나무가 반기고 있었으며 聖臨門을 지나서 종택안으로 들어서니 이창건 종손님이 우리를 반겨 맞아주었다. 溫惠마을은 동쪽에 靑溪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龍溪가 용수사쪽에서 남으로흘러 영지산에서 흐르는 溫溪와 와 합류, 마을앞을 흘러 마을어귀에서 청계와 온계가 합수 陶溪로 흘러서 上溪와 下溪로 흘러 낙동강에 이르며 구한말 에안군 의서면이었고 왜정초에 온혜동이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안동시에 속하였다. 노송정 이계양(1424~1488)은 진성이씨 시조 이석의 증손인 선산부사 李禎의 막내아들로 예안 서촌(..

선조를 찾아서 2017.04.19

이인화 의병장의 생가 온계종택 탐방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434 이인화 의병장의 생가 온계종택 탐방 퇴계묘소 참배를 마친후 온혜초등학교 입구에서 내려 온계종택을 찾았다. 온계종택을 가는 입구에는 노송정 이계양선생의 아들이고 퇴계선생 숙부로서 중종때 문장에 현달하신 송재공 이우선생의 신도비가 위치하고 있었다. 溫惠마을은 온계였는데 溫泉이 있어 여러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게 되었다는 뜻으로 온혜라 하였고 노송정 이계양(1424~1488)은 부라촌에 살며 봉화 훈도를 할때 온계를 자나다 스님을 만나 '이곳에 살면 반드시 귀한 자손을 얻을것이다'라고 하여 여기에 집을 짓고 살며 세상에 나아감에 힘스지 않고 자제들의 교육에 임을 써서 후일 동방의 주자로 추앙받는 퇴계선..

선조를 찾아서 2017.04.18

거경대학에서 퇴계선생묘소 참배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432 거경대학에서 퇴계선생묘소 참배 이육사문학관에서 고개를 넘어서니 하계마을입구에 독립운동기적비가 서 있고 기적비 건너편 계곡에는 퇴계선생 묘소가 있고 묘소가는 입구에 바위(東巖)가 있고 바위 옆에는 퇴계선생이 초년에 잠시 기거 하시던 養眞庵古止 표석이 있으며 우측계곡에는 퇴계 가학을 전승한 손자 李詠道도의 東巖宗宅과 증손 李岐의 守拙堂이 위치하고 있다. 下溪마을은 퇴계선생의 동암 이영도(1559~1637)가 터를 열어 살게되면서 400여년 문인,학자가 배출되어 영남의 유림문화를 주도하여 왔으며 조선시대 문과출신자가 15명,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25명이 한마을에서 배출되었고 경술국치 자정순국, 3.1만..

선조를 찾아서 2017.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