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277

40대 과부의 처방전

40대 과부의 처방전 40대 어느 과부가 원인을 알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병원은 안가본 것이 없고 약이라고 생긴것은 거의다 써봤지만 백약이 무효.... 상심하여 낙담하고 있던차에 중국에 아주 유명한 명의가 있다고 해서 과부 용기를 내어 물어물어 중국의 그 명의를 찾았다. 중국의사... 여늬 의사와 다를바 없이 여기저기 진찰하고 눈 뒤집어 보고 맥 짚어보고 청진기 들이대 보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고민하던 의사..... 갑자기 지필묵을 꺼내더니 10개의 한자어를 적어 내려갔다. 그 한자어 아래 숫자까지 썻다 孝(효) 誠(성) 極(극) 之(지) 者(자) 0 1 2 3 4 家(가) 特(특) 萬(만) 福(복) 來(래) 5 6 7 8 9 효성이 지극하면 가정에 큰 복이온다는 아주 평범한..

시링빙야화 2021.04.17

타인능해(他人能解)

타인능해(他人能解) '타인능해(他人能解)'는 全南 구례에 있는 운조루의 쌀뒤주 마개에 새겨진 글자다. 아무나 열 수 있다는 意味로 운조루의 주인이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뒤주를 사랑채 옆 부엌에 놓아두고 끼니가 없는 마을 사람들이 쌀을 가져가 굶주림을 면할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쌀을 퍼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의 自尊心을 생각해 슬그머니 퍼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배려(配慮)는 운조루의 굴뚝에서도 드러난다. 부잣집에서 밥 짓는 연기(煙氣)를 펑펑 피우는 것이 미안해 굴뚝을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뒤주는 열고 굴뚝은 낮춘 운조루는 6·25전쟁 때 빨치산의 본거지였던 지리산(智異山) 자락에 있었지만, 화(火)를 당하지 않았으니 대대로 나눔을 실천했..

시링빙야화 2021.04.16

아버지의 배달원 대하는 태도

아들도 감동~아버지의 배달원 대하는 태도!! - 나는 서른이 다 되어가는 취준생 이다. 요즘 코로나 상황이라서 그냥 부모님께 뭐라도 하는 것을 보여주려 도서관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 5시쯤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약속이 있어 나가셨고, 아버지만 계셨다. 아버지는 맛있는 것 시켜 먹자고 하셨다. 돈도 못 벌면서 부모님 돈으로 저녁을 때워야 하는 상황이 매우 불편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함께 소주 한 잔 하자고 하셔서 족발과 쟁반국수를 시켰다. 그런데, 시킨지 1시간이 넘는데도 음식은 도착하지 않았다. 난 조금 짜증이 나서 족발집에 전화를 걸었다. 떠난 지 30분이 넘었는데 이상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라는 생각으로 아버지와 어색하게 TV를 보며 30분을 더 기다렸다. 그제야..

시링빙야화 2021.04.14

신숙주와 한명회는 절친

신숙주와 한명회는 절친 신숙주와 한명회는 절친한 사이였다. 서로 자란 환경도 성격도 달랐지만 사돈까지 맺으며 오랜 시간 가까이 지냈다. 하루는 세조가 두사람을 불러 술자리를 열었다. 세조는 거나하게 취해 신숙주에게 장난을 첬다. 평소 농담을 할 줄 모르는 그의 팔을 꺽으며 자신의 팔도 꺽어 보라며 팔씨름을 하자는 거였다. 당시 임금의 몸에 함부로 손대는 것은 큰 죄였기에 거절했지만 세조는 더욱 집요하게 부탁했다. 결국 신숙주는 세조의 팔을 살짝 비틀었다. 그렇게 술자리가 끝나고 아무 일도 없는 듯 했다. 하지만 한명회는 신숙주의 하인을 부르더니 집으로 돌아 가거든 주인에게 꼭 방에 불을 끄고 일찍 잠을 자라는 말을 전하라고 일렀다. 그날 밤 세조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신숙주 행동이 괘씸했기 때문이다...

시링빙야화 2021.04.12

친구가 몇이나 되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 친구가 몇이나 되오 " 류진사는 무골호인(無骨好人)이다. 한 평생 살아오며 남의 가슴에 못 한 번 박은 적이 없고, 적선(積善) 쌓은 걸 펼쳐 놓으면 아마도 만경창파(萬頃滄波) 같은 들판을 덮고도 남으리라. 그러다보니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던 재산(財産)을 야금야금 팔아치워 겨우 제 식구들 굶기지 않을 정도의 중농(中農) 집안이 되었다. 류진사(柳進士)는 덕(德)만 쌓은 것이 아니라 재(才)도 빼어났다. 학문(學問)이 깊고, 붓을 잡고 휘갈기는 휘호(揮毫)는 천하(天下) 명필(名筆)이다. 고을 사또도 조정(朝廷)으로 보내는 서찰(書札)을 쓸 때는 이방(吏房)을 보낼 정도였다. 류진사네 사랑방엔 선비와 문사(文士)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인(婦人)과 혼기(婚期) ..

시링빙야화 2021.04.11

소도둑이야기

소도둑이야기 어떤 산길, 농부가 큰 소를 끌고 집에 가고 있었다. 농부의 뒤로 수상한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 한 남자가 옆의 남자에게 말했다. “조금 기다려 봐, 내가 저 소를 빼앗아 오겠네.” “자네가 아무리 소매치기의 달인이라고는 하지만 물건이 좀 크지 않나? “두고 보면 알게 돼..” 두 명의 남자는 소매치기였습니다. 한 소매치기가 농부가 가는 길 앞에 잽싸게 앞질러 가서 새 가죽신 한짝을 그가 발견하기 쉽게 놓아두었다. 농부는 산길을 계속 걸어 가다가 새 가죽신 한 짝을 발견하고 손에 집어 들었다. “안타깝구나. 한 짝만 있으면 아무 소용도 없는데…” 농부는 아쉬워하면서 가죽신을 내버려두고 계속 소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모퉁이를 돌자 조금 전에 보았던 새 가죽신의 나머지 ..

시링빙야화 2021.04.10

당신의 바닥짐

당신의 바닥짐 '맨발의 전도자’ 이 히말라야 산길을 걷다 어떤 이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도중에 눈 위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여기에 있으면 이 사람은 죽어요. 함께 업고 갑시다.” 의 제안에 동행자는 이렇게 대꾸했다. “안타깝지만 이 사람을 데려가면 우리도 살기 힘들어요.” 동행자는 그냥 가버렸다. 은 하는 수 없이 노인을 등에 업었다. 그는 얼마쯤 가다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먼저 떠난 동행자였다. 은 죽을힘을 다해 눈보라 속을 걸었다. 온 힘을 다해 걷다 보니 등에선 땀이 났다. 두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매서운 추위도 견뎌낼 수 있었다. 결국 과 노인은 무사히 살아남았고, 혼자 살겠다고 떠난 사람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 ‘人’은 ..

시링빙야화 2021.04.10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귀한 줄 모른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귀한 줄 모른다, 시골 어느 중년 부인이 날이 저물어 밥을 지으려 하는데, 부엌에 불씨가 없었다...^;;^ 그래서 이웃 마을에서 불씨를 얻기 위해 등불을 들고 밤길을 나섰다...^;;^ 십리 길을 헐레 벌떡 온 그에게 이웃 사람이 불씨를 주면서 한심 하다는 듯, 한 마디... "아니,이사람아! 들고 있는 등불을 두고 어찌 이리 먼길을 달려 왔는가?" 그 소리를 듣고 그는 정신이 뻔쩍~!! 뇌리(腦裏)에 망치로 한방 얻어 맞은듯..... 내가 왜? 등불을 들고 이 먼길까지 고생을 해 가면서 불씨을 구하려 왔지...?? 슬쩍 내 몸을 꼬집어 본다,분명 꿈결은 아니였다...^;;^ 그는, 자신(自身)이 들고 있는 등불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事實)을 전혀 모른채.......

시링빙야화 2021.04.09

人倫의 으뜸되는 德 ''孝''

*人倫의 으뜸되는 德 ''孝'' 조선시대, 새로 등극하여 어진 정사를 펼쳐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임금때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선비들은 글을 읽고..백성들은 잘 교화되어 모두 맡은 바, 소임에 힘을 쓰니 나라가 평안하고 인심이 후하였다 합니다 어느 날.. 세종임금은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둘러보기 위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몰래 도성을 순시하였습니다. 임금이 도성을 둘러보다가 어느 골목길로 들어서니 문득 창문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민가 한 채가 눈에 띄었답니다. 마침 창문이 열려있어 방안을 들여다보던 임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방안에는.. 머리가 하얀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 앞에 술과 안주가 놓여 있었으나. 노인은 술과 안주를 들지 않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하염없이 ..

시링빙야화 2021.04.09

친구가 몇이나 되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 친구가 몇이나 되오 " 류진사는 무골호인(無骨好人)이다. 한 평생 살아오며 남의 가슴에 못 한 번 박은 적이 없고, 적선(積善) 쌓은 걸 펼쳐 놓으면 아마도 만경창파(萬頃滄波) 같은 들판을 덮고도 남으리라. 그러다보니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던 재산(財産)을 야금야금 팔아치워 겨우 제 식구들 굶기지 않을 정도의 중농(中農) 집안이 되었다. 류진사(柳進士)는 덕(德)만 쌓은 것이 아니라 재(才)도 빼어났다. 학문(學問)이 깊고, 붓을 잡고 휘갈기는 휘호(揮毫)는 천하(天下) 명필(名筆)이다. 고을 사또도 조정(朝廷)으로 보내는 서찰(書札)을 쓸 때는 이방(吏房)을 보낼 정도였다. 류진사네 사랑방엔 선비와 문사(文士)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인(婦人)과 혼기(婚期) ..

시링빙야화 202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