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277

십 년 공부 나무아미 타불

야화 십 년 공부 나무아미 타불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한데 쉬어 간들 어떠하리" 위의 시조는 황진이를 대표하는 시조이지요. 벽계수라는 왕족의 건달이 황진이를 사모하여 접근을 하였는데 황진이 또한 그 사나이를 은근히 꼬실 때 지은 시조라고 하지요 벽계수의 본명은 이종숙(李琮淑). 세종대왕의 17번째 아들 영해군의 손자이지요. 영해군의 아들 길안 도정 이의(李義)의 셋째 아들이며 세종대왕의 증손자가 되지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이라면 단연 황진이를 꼽지 않을 수 없어요 보름달 같이 환한 미모에 꾀꼬리 같은 목소리 ...  황진이가 누각에 앉아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를 부르면 재잘대던 산새들도 소리를 멈추고 황진이의 노랫소리와 가야금의..

시링빙야화 2021.03.08

<영악한 마누라>

오십줄에 들어선 과부 웅천댁 앞에만 서면 늙은이든 젊은이든 사족을 못 쓴다. 웅천댁은 지주요, 동네 사람들은 소작농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소작농 범수가 불려 갔더니 웅천댁 왈, “이 사람아, 내일 아침에 고리짝 하나 메고 친정에 좀 가세. 친정아버지 생신이라네.” 어느 명이라 거절하겠나. 이튿날 새벽, 비단옷을 넣은 고리짝을 메고 웅천댁을 따라 길을 나서자마자 눈발이 휘날리더니 이내 폭설이 되었다. 동지섣달 짧은 날도 일찍 출발하면 밤이 늦기 전에 친정에 도착할 수 있는데 눈길이 발목을 잡아 할 수 없이 갯나루 주막에서 하룻밤 묵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웅천댁이 말했다. “방값도 비싼데 두방 쓸 일이 뭐 있겠나. 자네는 내 아들 행세를 하게.” 둘이서 국밥을 먹고 범수는 막걸리 한사발까지 마셨다. 뜨..

시링빙야화 2021.03.06

어느 며느리 이야기

♧ 어느 며느리 이야기 ♧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경남 진주에서 이름 석자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말'이라면 청산유수라 누구에게고 져 본 적이 없는 할머니이었답니다. 이를테면 말발이 아주 센 초로의 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 며느리 역시 서울의 일류 명문학교를 졸업한 그야말로 '똑 소리'나는 규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저 며느리는 이제 죽었다!"라며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어머니가 조용했습니다. 그럴 분이 아닌데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올 때 시어머니는 벼르고 별렀습니다. 며느리를 처음에 "꽉 잡아 놓지 않으면 나중에큰일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혹독한..

시링빙야화 2021.03.06

덕필유린(德必有隣)

?덕필유린(德必有隣)? ==☆==☆==☆==☆== 조선 철종때 경상도 상주 땅에 서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서선달'이라고 불렀다. 원래 선달이란 과거 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사람은 무슨 급제와는 관련이 없었고 그냥 사람이 심성이 착하고 무던해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서선달은 남의 땅을 빌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인가는 봄이 왔어도 그해 농사를 지을 비용이 없을 정도로 곤궁 하였습니다. 생각다 못한 그는 부산 쌀가게에서 장부를 담당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큰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효자 아들은 주인께 통사정을 하여 6개월치 월급을 가불받아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서선달은 ..

시링빙야화 2021.03.06

노년 예찬

♡ 노년 예찬 ♡ 옛날에 한 부잣집 노인이 창고 청소를 하기 위하여 머슴을 시켜 벼 가마니를 들어내는데, 마지막 한 가마니를 들어내려 하자 노인이, "그것은 그대로 놓아두어라." "이 한 가마니는 무엇에 쓰려고 그러십니까?" "쥐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 ?" 이렇게 한 가마니는 그대로 창고에 놓아두었답니다. 이런 일이 있은지 몇 해 후 어느 날 머슴이 마당에 나와 보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머슴은 바로 주인어른을 불렀습니다 "주인 어른, 좋은 구경거리가 있으니 나와 보십시오." 이에, 부잣집 노인 부부가 방에서 문을 열고 마당에 나와 보니 글쎄 큰 쥐 한마리가 머리에 쪽박을 둘러 쓰고 뜰에서 뱅뱅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ᆢ 이것을 신기하게 지켜보고 있던 순간, 오래된 묵은 집이 굉음을 내며 그만..

시링빙야화 2021.03.04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속담의 유래 오래 전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네요. 인정머리라곤 요 만큼도 없는데다, 성미가 고약한 시어머니의 횡포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며느리가 있었답니다. 이제는 시어머니가 죽지 않는 한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자 많은 돈을 싸 들고는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 돈을 다 드릴테니 제발 우리 시어머니를 죽게 해주세요!" ​ 간절하게 애원하는 며느리에게 점쟁이가 말하길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마. 그런데 네 시어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지?" "인절미를 가장 좋아하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100일 간 하루도 거르지 말고 시어미에게 인절미를 만들어 먹이도록 해라. 그리하면 네 시어미는 이름모를 병에 걸려 곧 죽게 ..

시링빙야화 2021.03.03

조선 보부상의 아버지 백달원

[최고의행운 인(仁)을 실천하여 부자가 된 사람] 사내는 지루함과 고달픔을 잊기 위해 소매에서 표지가 너덜너덜한 책자를 꺼내 들었다. 아내가 친정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책자로 사마천의 '사기열전'이었다. 아내는 까막눈인 그에게 글을 가르쳐 읽을 수 있게 했는데, 그는 특히 '화식열전'을 좋아했다. 사내의 이름은 백달원. 황해도 토산 출신의 천민으로 원래 귀족인 왕씨가의 노비였다. 아내는 바로 그 주인집 딸이었다. 노비와 주인 아가씨 신분이었지만, 백달원은 어릴 때부터 아가씨와 오누이처럼 자랐다. 하루는 백달원이 아가씨를 모시고 절에 다녀오게 되었다. 불공을 드리고 내려오는데 소나기가 쏟아져 업고 계곡을 건너다 춘정이 동해서 아가씨를 껴안았는데 아가씨가 거절하지 않았다. 백달원은 아가씨를 몰래 만나서 사..

시링빙야화 2021.03.03

황토 개울물

#조주청의사랑방이야기 (99)황토 개울물 서른셋 젊은 나이에 판윤(조선시대 한성부의 으뜸 벼슬)으로 봉직하는 이서붕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다. 사또와 육방관속이 마중 나와 떠들썩해질까 봐 어둠살이 내릴 때 평상복 차림으로 말고삐를 잡은 하인 한 사람만 데리고 고향집에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홀로 지내시는 모친에게 큰절을 올렸다. “바쁜 공무를 접어두고 어떻게 하경했는고?” “어머님 문안도 드리고 아버님 묘소도 찾으려고 윤허를 받아 내려왔습니다.” 병풍을 등 뒤로 보료에 꼿꼿이 앉아 계시지만 어머니 얼굴의 주름은 더 늘었고, 머리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찬모를 제쳐두고 손수 부엌에 나가 아들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호박잎을 찌고 강된장을 끓였다. “언제나 어머님 손맛이 그리웠습니다.” 저녁..

시링빙야화 2021.03.03

터구 이야기

재미있는 글이 있어 공유 합니다. 제목: 터구 이야기. 조터구가 책가방을 들고 서둘러 안기동 미나리 논을 가로 질러 나이아가라 중국집을 돌아, 저만치 교회종각을 보고 길을 건너는데 학교 뒷산과 교무실 앞 쪽에 핀 아카사아 향기가 거기까지 날아와 코를 벌름거리게 하고 있었다. 조터구 원래 이름은 조병조다. 늘 매사 성실하고 심성이야 착하다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다. 시험은 늘 30점 밑을 돌고 통지표에 양 아니면 가를 받고, 학급 석차도 59명 중에 58등이니 터구 소리를 들어도 싸다. 당체 계산이 안 되고 매사 곧이곧대로 남들 시키는 되로 하고 남을 속이거나, 약지를 못하는 성품이다. 그는 영양석보 깊은 산골 출신으로서 늘 어리벙벙한 태도를 보고 "석보촌넘!" 소리를 듣다가 "터구" 로 불리워기게 된..

시링빙야화 2021.01.11

맹정승의 공당문답(孟思誠 公當問答)

맹정승의 공당문답(孟思誠 公當問答) 맹정승의 공당문답(孟思誠 公當問答)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면서 코로나 전염병이 숙지길 기다리나 백약이 무효인지 점점 더 창궐해가고 민심은 점점 맥이 풀려서 일탈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온 세상은 검은 천지에 날씨조차 엄청나게 춥다. 할 일없는 사람들은 오라는 곳도 사람도 없고, 나가볼 곳조차도 없다. 이러할 때 우리 조상들이 슬기롭고 바르게 살아왔던 고담 한 두 토막을 읽고 힘을 내어보면 어떠할지. 조선 초기의 문신 맹사성(孟思誠)은 황희(黃喜)와 함께 추앙받던 조선 최고의 명상(名相)이고 청백리였다. 후세인들은 흔히 맹고불(孟古佛)은 검은 소를 타고 피리를 불고 다니는 노인으로 생각할 친근한 분이였다. 맹사성(孟思誠)은 성격이 소탈했던 그는 외출할 때면 소타기를 즐..

시링빙야화 2021.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