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985

거경대학에서 성주 회연서원을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성주 회연서원을 다녀와서 한개마을을 출발한 우리는16:00 한강 정구선생을 모신 회연서원에 도착하니해설사님이 우리들을 안내하였다, 회연서원(檜淵書院)은1583년(선조 16) 외증조부 김장생의 도학을 전수하고 퇴계와 남명에게 수학하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회연초당을 짓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에 1627년(인조 5)에 서원을 세워 1690년(숙종 16) 사액받았으나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1974년 복원하였다고 전하며 見道樓를 들어서니 강당인 景晦堂이 자리하고 그 앞에 동.서재( 持敬齋. 明義齋)가 자리하고  있었으며우측편에 사당과 영정을 모신 崇慕閣과 전사청 등이 있었으며서원 앞에는 매화나무가 자리고 있는 백매원이 있었다. 우리는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서원을 돌아보고 강당..

국내여행 2024.06.23

거경대학에서 성주 한개마을을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성주 한개마을을 다녀와서 14:10 성밖숲을 춟발한 버스는 20분후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지정된 민속마을인 한개마을에 도착하여2개조로 영취산이 마을을 감싸고 앞에는 2개의 하천이 합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길지 한개마을을 해설사님과 탐방하였다. 1450년무렵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李友)선생이 입향한 이후17세기 이정현선생이 문과급제 이후 33명이 과거에 합격하였고18~19세기 응와 이원조, 한주 이진상 등 이름난 유학자들과독립운동가 이승희 등을 배출한 성산이씨 집성촌이라 한다. 해설사님은 과거길이라 부르는 토석(土石)담길을 지나1798년(정조 22) 이중진과 1858년(철종 ) 이문상이 지어서이문상의 부인이 안동 예안에서 시집와서 '예안댁'으로 불리다아들 이국희가 1894년 마지막과거시험에 ..

국내여행 2024.06.22

거경대학에서 성주 성밖숲을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성주 성밖숲을 다녀와서 세종대왕자태실을 탐방하고12:00 대흥가든에 도착한 우리는 손두부김치와 모듬전, 돼지수육과 참외깍두기, 상추쌈으로 소주를 한 잔씩 나누며 콩나물밥을 양념간장에 비벼서 맛 있게 먹고 12:50 성주 성밖숲으로 출발하였다. 성박숲 입구에는 'Clean 성주'라 새겨진 모자이크 벽화와2017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 안내판과 '아름다운 맨발걷기 명소' 표지판도 볼 수 있었고I ♡ SEUNGJU 로고와 참외캐릭터 참별이도 보였으며13:10 버드나무아래 둘러 앉아 해설사님으로 부터 성밖숲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성주읍 서쪽을 흐르는 하천인 이천변에 조성된 마을숲으로나이가 300~500년, 둘레가 1.84~5.97m, 높이 6.3~16.7m..

국내여행 2024.06.22

거경대학에서 성주 세종대왕자태실을 다녀와서

거경대학에서 성주 세종대왕자태실을 다녀와서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였다고 전하는 6월 20일 08:30 안동예술의 전당앞에서 거경대학 회원들이  성주로 떠나서 군위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10:30 세종대왕자태실에 도착, 해설사님과 함께 답사를 하였다. 해설사님은 태항아리 모형이 있는 주차장앞에서성주는 참외의 고장으로 참외하우스 들녁이 성주 10경에 포함되었고참외농가에서는 1년에 세차례의 참외농사로 8~9월을 제외한 10개월을 비닐하우스 안에서 살아가며 참외농사를 짓고 있으며 지난해는 인삼을 능가하는 판매액을 올렸다며 성주를 소개하였고  왕실에서는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때아기의 무병장수와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식으로그 태(胎)를 씻어서 태항아리에 담아 절차에 따라 명당을 찾아 봉안하는..

국내여행 2024.06.21

안동시행정동우산악회에서 석모도 보문사를 다녀와서

안동시행정동우산악회에서 석모도 보문사를 다녀와서 석모도 산행을 마치고 13:40 보문사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낙가산 보문사 탐방을 하였다. 보문사 입구에는 상가와 식당, 노점상 등이 많았고입구에는 축대를 쌓고 전선을 매설하는 포크레인도 보면서일주문을 들어 섰다. 낙가산 보문사(落迦山 普門寺)는 635년(선덕여왕 4) 회장대사가 창립하였다고 전하고 남해 보리암과 양양 낙산사와 함께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시는 성스러운 곳으로 우리나라의 3대 해수관음성지로 불리는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니 멀리 눈섭바위가 보이고그 아래로 사찰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올해 건축을 하여서 준공을 준비중인 전각도 보였다. 용왕전 가는 길로 올랐더니우리나라 유일의 오방용왕을 모신 용왕전(龍王殿)에 이어 좌측에는 황금..

국내여행 2024.06.20

안동행정동우산악회에서 강화 석모도를 다녀와서

안동행정동우산악회에서 강화 석모도를 다녀와서 초여름의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는 6월 19일 06:00안동시행정동우회 화요산악회 회원 39명이매월 세번째 수요일에 실시하는 산행으로 강화군 석모도를 찾았다. 06:201943년 6월 `1일 개교하여 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송현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버스를 승차하였는데 횡단보도에는 '뛰뛰빵빵 !! 살피고 건너요 !!'라 새겨져 있었고 '그린스마트임대형민자사업'중이라서 출입통제가 되고 있었다. 서의문을 거쳐 서안동IC를 통과한 버스는남봉구 사무국장님의 사회로 김택진 회장인사와송용규 등반대장과 권택호 고문의 산행안내가 있었고처음으로 참석하신 회원 네 분의 인사와김치윤 회원님이 해외산행에 대한 안내도 있었다. 치악휴게소와 양주휴게소에서 휴식을 한 후09:15 석모대교를..

국내여행 2024.06.20

국학아카데미에서 봉화 목재문화체험장을 다녀와서

국학아카데미에서 봉화 목재문화체험장을 다녀와서 정자전시관을 출발한 버스는 잠시 달리더니15:05 봉화목재문화체험장에 도착을 하였다. 봉화 목재문화체험장에는 선조들의 목재문화, 우리생활 속 목재의 쓰임새,목재의 생산과정과 종류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주변에 산림욕장과 놀이시설, 잔디광장 등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파인토피아 우드스쿨에서 도마를 만들며 목재체험을 하기로 하였다.우드스쿨에는 여러가지 목공예 도구들과 기계들이 있었다. 지도하시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다릅나무로 미리 만들어진 도마를 한 개씩 골라서물에 담그어 적신 후 그늘에서 마르도록 기다렸다가표면을 깨끗이 말리고 나서 기계로 표면처리를 하였는데 기계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웠으나 조금 지나니 괜찮아졌다. 기계로 표면처리를 하고 나..

국내여행 2024.06.06

국학아카데미에서 봉화 정자문화생활관을 다녀와서

국학아카데미에서 봉화 정자문화생활관을 다녀와서 바래미마을 토향고택을 출발한 우리는12:20 봉성면에 있는 솔봉숯불구이 전문점에서소나무향이 그윽한 돼지고기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시간을 내어 식당앞에 있는봉서루와 영세불망비, 돌거북을 돌아 보았다. 봉서루(鳳棲樓)는 봉성면사무소 자리에 있었던 봉화관아 동헌문루(東軒門樓)로 현내 유현들의 집회장소였던 곳으로 1738년(영조 14) 건립되었고구한말에 현위치로 옮겨져 노인회관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하며루각옆 비각에는 '縣監趙東益永世不忘'이라 새긴 鐵碑가 있었다. 비각옆에는 2005년 봉성장터 정비사업중 발견된 돌거북이 있었는데봉성(鳳城)은 오동나무가 밀림을 이루어 봉황이 서식하는 곳으로뒷산이 봉황이 둥지로 날아든다는 飛鳳歸巢形局의 금륜봉(金輪峰),목..

국내여행 2024.06.06

국학아카데미에서 봉화 토향고택을 다녀와서

국학아카데미에서 봉화 토향고택을 다녀와서 만회고택에서 마을을 조금 걸어서 토향고택을 찾았다.솟을대문에는 토향고택 현판이 달려 있고 건너편에는 '토향고택 뜨락'이라 이름지어진 숲이 있었다. 토향고택(土香古宅)은개암(開巖) 김우굉(金宇宏 1524~1590)의 현손이자바래미 의성김씨 입향조 팔오헌(八五軒) 김성구(金聲久 1641~1707)의넷째아들 김여병(金汝鈵)을 11대조로 모시는 가옥으로안채는 팔오헌선생이 입향하기전 지어진 건물로 350년이 되었으며사랑채는 1876년 숭례원 참봉. 통훈대부를 지내시고 1909년 조양학교(봉화초등학교 전신)를 설립하신 암운(巖雲) 김인식(金仁植 1855~1910)이중수하였다고 전한다. 토향( 土香)은일제의 강제징집으로 중국에서 여러전투에 참여하던중 탈출하여 중국군에 구조된후..

국내여행 2024.06.05

국학아카데미에서 봉화 만회고택을 다녀와서

국학아카데미에서 봉화 만회고택을 다녀와서 10:50 닭실마을을 출발한 우리는11:05 해저리 바래미마을 만회고택을 찾았다. 해저리로 가는 버스에서 해설사님은 바래미마을은 선사시대 바다가 융기된 지역이라기도 하고 마을옆을 지나는 하천보다가 마을이 낮아  바다밑이란 의미로 바래미라 불리다가  한자표기로 해저(海低)라 하었으며여(余)씨들이 살던 마을에 의성김씨들이 입향하여 마을앞에 마을숲을 조성하면서 김(金)씨들의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만회고택(晩悔古宅)은1690년 소백산과 태백산 양백지하(白下)에 세워진 건물로안채는 만회선생의 6대조가 이 곳에 살던 여씨로부터 매입하였고시링채 명월루(明月樓)는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현풍현감, 김해부사,우부승지를 지내신 만회 김건수(金建銖 1790~1854)선생이 세웠고안동의..

국내여행 20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