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427

인과응보(因果應報)

삼국지(三國志) .. (405) 인과응보(因果應報) 사마소는 강병들의 노고를 치하하여 제 나라로 돌려보내고 낙양(洛陽)으로 개선하였다. 오와 촉을 물리친 사마 형제의 위세는 누구도 따를 자가 없어 조정의 대권은 사마 형제의 손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감히 사마 형제의 말에 토를 달 수 없었으며, 심지어 위주 조방(曹芳)조차 사마사를 두려워하였다. 사마사가 조회(朝會)에 입조할 때마다 조방은 두려움에 절로 몸서리가 쳐지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어느 날에는 조회 시간에 사마사가 허리에 칼을 차고 어전에 올랐다. 신하가 황제를 알현하는데 허락없이 몸에 무기를 지니는 것은 불손(不遜)이라는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심각한 일이었다. 그런데 조방은 사마사를 꾸짖기는 커녕 용상(龍牀)에서 몸소..

삼국지 2022.05.07

강유의 두 번째 북벌

삼국지(三國志) .. (404) 강유의 두 번째 북벌 강유(姜維)는 성도(成都)에서 동오(東吳)의 제갈각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입궁하여 후주에게 아뢰었다. "폐하, 동오 태부 제갈각이 위(魏)를 치려고 군사를 일으켰사온데 우리 촉에게 협공을 하자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기회가 다시 온 것 같습니다. 부디 대군을 일으켜 역적들을 토벌하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후주 유선은 실패로 돌아갔던 강유의 첫 번째 북벌 출정을 생각하면 다소 염려가 되었지만 다부진 강유의 눈빛을 보며 조심스럽게 강유의 청을 윤허하였다. "출정을 허락하니, 이번에는 성공을 거두길 바라오." "황공하옵니다. 기필코 이번만큼은 중원을 회복하여 돌아오겠습니다!" 강유가 이십만 대군을 일으켜 ..

삼국지 2022.05.06

사마의와 손권이 떠나고 그 후(403 - 2 )

(40삼국지(三國志) .. 3 - 2 ) 사마의와 손권이 떠나고 그 후 사마의와 손권이 떠나고 그 후 이상한 일을 겪었던 그날 밤, 제갈각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이고 있는데, 난데없이 안채 쪽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이 생겼나싶어 서둘러 달려가보니, 안채의 대들보가 두 동강으로 부러져 내려 앉아 있다. 제갈각은 불안한 마음을 겨우 달래며 다시 침실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디에선가 음산한 바람이 크게 일더니 어둠 속에서 사람의 무리가 요란하게 나타난다. 그 무리를 살펴보니 낮에 제갈각의 명에 의해 죽었던 상복 입은 자와 문지기들이었다. 각기 자기의 머리를 들고 와서는 목숨을 되돌려 놓으라고 아우성을 친다. 제갈각은 그대로 기절했다가 한참 만에야 깨어났다. 다음..

삼국지 2022.05.05

사마의와 손권이 떠나고 그 후( -1)

삼국지(三國志) .. (403) 사마의와 손권이 떠나고 그 후( -1) 사마의는 세상을 떠나고 사마의의 두 아들이 위의 조정에서 권력을 확장하고 있는 사이, 오나라에서는 오주(吳主) 손권의 병세가 심상치 않았다. 손권에게는 원래 태자 손등(孫登)이 있었으나 태자 등이 일찍이 죽어 둘째 아들 손화(孫和)를 태자로 삼았다. 그러나 태자 화는 전공주(全公主)와 사이가 나빴고, 그녀의 참소로 폐위를 당했다. 그리고 그 한(恨)이 병이 되어 급기야는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금은 셋째 아들 손량(孫亮)이 태자로 책봉되어 있었다. 육손(陸遜)이나 제갈근(諸葛瑾) 같은 조정의 대신들도 이미 세상을 뜬지라, 국정 전반은 제갈근의 맏아들 제갈각(諸葛恪)이 도맡고 있었다. 오의 태원(太元) 원년(251) 8월 초하루, 갑..

삼국지 2022.05.04

중원 진출을 노리는 강유

삼국지(三國志) .. (402) 중원 진출을 노리는 강유 사마의는 눈엣가시였던 조상을 물리친 후, 본인은 물론이고 두 아들까지 모두 나랏일을 맡아보며 위주 조방의 신뢰를 얻고 있으니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사마의의 마음에는 여전히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상의 일문을 멸족시켰으나 그 친족이 남아 있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후패...... 그를 어찌하는 것이 좋을까?' 사마의는 옹주(雍州)에 있는 정서장군 하후패(征西將軍 夏侯霸)가 계속 신경 쓰였다. 그는 조상의 친족이라 혹여 변란이라도 일으키면 골치깨나 썩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마의는 걱정의 싹을 자르고자 하후패를 불러들여 미리 처치해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옹주에서 조용히 지내던 하후패는 사마의의 명이 도착하자..

삼국지 2022.05.03

곧 죽을 것 같던 사마의가

삼국지(三國志) .. (401) 곧 죽을 것 같던 사마의가 이승이 조상에게 사마의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가고 있는 시각에 사마의는 이승이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두 아들을 불러서 말한다. "이승이 돌아가서 조상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내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조상은 마음을 푹 놓겠지. 조상이 성 밖으로 사냥을 떠나면 그때 뒤쫓아서 처치해버리자. 준비를 서둘러라!" 사마의가 이승에게 보여준 모습은 모두 조상을 속이기 위한 계략(計略)에 불과했다. 사마의는 십 년이라는 시간을 은둔하면서 조상의 허점(虛點)을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왔던 것이다. 사마의가 모략을 꾸미고 있는 동안, 조상은 위주 조방에게 선제 조예의 무덤인 고평릉(高平陵)에 제사를 지내러 가자고 청했..

삼국지 2022.05.02

위나라 정권(政權)의 행방은

삼국지(三國志) .. (400) 위나라 정권(政權)의 행방은 사마의가 요동 평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위나라 궁중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날 밤, 조예가 침궁에서 잠들었는데 삼경에 어디에선가 음산한 바람이 일더니 켜져 있던 등불이 모두 꺼지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달빛 아래에 한 무리의 사람 같은 형체가 아른거렸다. 사람의 형체를 한 그것들은 조예가 내린 사약을 받고 유명을 달리한 황후 모씨와 그 궁녀들의 귀신이었다. 모황후는 울면서 조예의 옥좌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조예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목숨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 일을 겪은 이후로 조예는 자리에 몸져 누웠다. 그동안 향락에 몸이 많이 상한 탓인지, 모황후의 귀신을 본 탓인지 조예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었다. 정무를..

삼국지 2022.04.30

사마의의 요동 출정-2

삼국지(三國志) .. (399) 사마의의 요동 출정-2 그날 밤, 공손연은 군사 천 명을 뽑아 거느리고 남문을 열어 동남쪽을 향해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뒤쫓는 위군이 없었다. 공손연은 은근히 기뻐하며 마음을 놓고 달아났다. 말을 재촉하여 십 리를 채 가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산 위에서 포향(砲響)이 울리고 뒤이어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울려댔다. 그리고 한 무리의 군사가 앞을 막아섰다. 어둠 속에서 자세히 살펴 보니 중앙에 서 있는 사람은 사마의였고, 그 좌우에는 사마의의 두 아들 사마사, 사마소가 버티고 서 있었다. 사마사와 사마소는 공손연을 향해 크게 외친다. "이 역적놈아! 어디로 몰래 도망치는 것이냐!" 공손연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급히 말머리를 돌려 도망칠 다른 길을..

삼국지 2022.04.29

사마의의 요동 출정 -1

삼국지(三國志) .. (399) 사마의의 요동 출정 -1 공명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때는 촉한(蜀漢) 건흥(建興) 13년(235), 위(魏) 청룡(靑龍) 3년, 오(吳) 가화(嘉禾) 4년이었다. 이 해는 세 나라의 군사가 서로를 지켜만 보는 조용한 시기였다. 위주 조예는 사마의를 태위(太尉)에 봉해 전국의 병마를 총독하고 각 변방을 지키게 했다. 임무를 받은 사마의는 낙양으로 돌아갔다. 삼국의 전쟁이 잠잠해지자 위주 조예는 수도 허창(許昌)에 화려한 궁궐과 전각을 세우고, 낙양에도 웅장한 규모의 전각, 호수, 동산 등을 새로이 꾸몄다. 대대적인 토목공사에는 이름난 명장(明匠) 삼만여 명이 동원되었고, 삼십여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부역으로 끌려나와 힘든 노동을 견뎌야만 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원망은 ..

삼국지 2022.04.28

공명이 떠나고 그 후 2

삼국지(三國志) .. (398) 공명이 떠나고 그 후 2 양의의 일행은 사마의, 위연과의 싸움을 치른 끝에 공명의 유해를 성도로 무사히 옮겨 올 수 있었다. 후주는 공명의 운구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정의 관료들과 함께 상복을 입고 성밖 이십 리까지 직접 나가 공명을 맞이했다. 후주 이하 문무백관과 백성들까지 하나같이 공명의 죽음을 슬퍼하여 온 나라가 곡성으로 가득할 지경이었다. 궁궐로 돌아온 후주 앞에 양의가 스스로를 결박하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폐하, 폐하의 명 없이 감히 위연의 죄를 처단하였습니다. 독단적인 행동으로 폐하께 심려를 끼쳤으니 마땅한 벌을 내려주시옵소서." 양의는 후주에게 죄를 청한다. 후주는 신하들에게 양의의 결박을 풀어주라고 지시한 후에 양의에게 말한다. "경이 없었다면 ..

삼국지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