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427

간신에게 좌지우지 되는 나라의 운명

삼국지(三國志) .. (412) 간신에게 좌지우지 되는 나라의 운명 촉한 경요 5년(262) 10월, 대장군 강유는 왕관이 파괴한 잔도를 복구하면서 군사와 무기를 정돈하고 군량을 비축했다. 그리고 한중의 수로에 대규모로 배를 모아놓고 후주 유선에게 표문을 올렸다. 신이 여러 차례 출정하여 아직 큰 공은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동안 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적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에는 성공하였습니다. 지금껏 군사를 양성한지도 오래이므로, 싸우지 않고 그냥 두면 군기가 나약해져서 반드시 병폐가 생길 것이옵니다. 이제 병사들은 죽기로 싸울 마음을 먹고 있고, 장수들은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히 정벌에 나설 때가 아닌가 하옵니다. 만일 신이 이번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목숨으로서 그 벌을 받..

삼국지 2022.05.21

거침없는 사마소와 강유의 얻은 것 없는 승리( 2 )

삼국지(三國志) .. (411) 거침없는 사마소와 강유의 얻은 것 없는 승리( 2 ) 등애는 왕관이 보낸 밀서를 받아보았다. 서신을 읽고 기뻐하며 등애가 장수들에게 말한다. "8월 15일, 담산 골짜기로 대군을 이끌고 가서 먼저 가 있는 왕관과 협력하여 촉군을 칠 것이다!" 등애가 받은 서신은 물론 강유가 제 입맛에 맞게 고친 것이었다. 8월 15일, 등애는 오만의 정예병을 이끌고 담산 골짜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찰병을 산마루에 올려보내 상황을 살펴보게 했다. 돌아온 정찰병이 등애에게 보고한다. "군량을 실은 수레가 끝없이 많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꼴자기의 후미진 사잇길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등애는 직접 말을 타고 산을 올라 군량 수송대의 모습을 살펴봤다. 과연 정찰병의 말대로 군량을 수송하..

삼국지 2022.05.20

거침없는 사마소와 강유의 얻은 것 없는 승리( 1 )

삼국지(三國志) .. (411) 거침없는 사마소와 강유의 얻은 것 없는 승리( 1 ) 중상시 황호를 매수하여 결국엔 강유를 기산에서 성도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당균은 기산에 머물고 있는 등애를 찾아가 그 사실을 보고했다. 등애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사마망에게 말한다. "군신(君臣)이 화목하지 못하니 조만간 촉에는 내분이 일어날 거요." 그리고 당균을 낙양으로 보내 사마소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다. 사마소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촉나라에서 내분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은 위나라에게는 기회가 될 터였다. 그때부터 사마소는 촉을 칠 마음을 먹고 중호군 가충(中護軍 賈充)에게 묻는다. "촉을 정벌할까 하는데 시기적으로 어떻겠나?" 가충이 대답한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지금의 황제가 주공(主公)에게 의심을..

삼국지 2022.05.20

허망하게 날려버린 기회

삼국지(三國志) .. (410) 허망하게 날려버린 기회 오주 손휴(吳主 孫休)는 손침을 비롯한 나라의 역적들을 제거하고 권력의 기틀을 바로 세웠다는 사실을 서신으로 적어 촉한(蜀漢) 성도(省都)로 보냈다. 후주 유선(後主 劉禪)은 사신을 보내어 동오의 안정을 축하했다. 동오에서는 답례로 다시 설후(薛珝)를 촉에 사신으로 보냈다. 설후는 동오로 돌아와서 황제에게 복명했다. 손휴가 설후에게 묻는다. "요즘 촉의 동향은 어떠하던가?" 설후가 아뢴다. "요 몇 년 간 중상시 황호(中常侍 黃皓)의 세도가 드높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공경대신들조차 황호에게 아첨하는 자가 수두둑했사옵니다. 조정에서는 임금에게 직언을 올리는 신하가 없고, 궁궐 밖에서는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습니다...

삼국지 2022.05.18

강유의 다섯 번째 출정과 동오의 정권 교체( 2 )

삼국지(三國志) .. (409) 강유의 다섯 번째 출정과 동오의 정권 교체( 2 ) 호림 땅에서 낭야왕(琅琊王)으로 있는 손휴(孫休)는 손권(孫權)의 여섯째 아들 이었다. 손휴가 밤에 자다가 꿈을 꾸는데, 자신이 용이 되어 하늘을 짓쳐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용의 꼬리가 없는 것이 보여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 이튿날, 조정의 종정 손해(宗正 孫楷)와 중서랑 동조(中書郞 董朝)가 손휴를 찾아와서 공손히 절을 하더니 청했다. "도성으로 돌아가시지요." 손해와 동조는 손침의 명에 따라 낭야왕 손휴를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손휴는 자세한 내막은 모른 채 둘을 따라 나섰다. 일행이 곡아(曲阿)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다가와 자신의 이름은 간휴(干休)라고 밝히면서 머리를 조아려 말한..

삼국지 2022.05.17

강유의 다섯 번째 출정과 동오의 정권 교체( 1 )

삼국지(三國志) .. (409) 강유의 다섯 번째 출정과 동오의 정권 교체( 1 ) 낙양으로 개선하려던 사마소에게 도착한 급보는 촉한의 강유가 장성(長城)을 공격하여 군량과 마초를 빼앗고 위군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크게 놀란 사마소는 바로 문무관들을 소집하여 촉군을 물리칠 대책을 상의했다. 이때는 촉한이 연호를 연희(延熙) 21년(258)에서 경요(景耀) 원년으로 고친 해였다. 강유는 한중에 머물면서 서천 출신 장수 두 명을 뽑아 매일 군사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강유가 새로이 발탁한 두 장수는 장서(蔣舒)와 부첨(傅僉)으로, 그 둘은 담력이 뛰어나고 용맹스러워서 강유가 무척이나 아꼈다. 어느날, 강유는 회남의 제갈탄이 사마소를 토벌하고자 군사를 일으켰으며 동오 손침이 ..

삼국지 2022.05.16

사마소의 전횡(專橫)과반발하는 제갈탄 ( 2 )

삼국지(三國志) .. (408) 사마소의 전횡(專橫)과 반발하는 제갈탄 ( 2 ) 위군은 수춘성 벽 둘레에 토성을 쌓아 회수(淮水)의 흐름을 막아 놓았다. 그것을 보고 제갈탄은 회수가 범람하여 위군이 쌓은 토성이 무너지면 그 기회를 잡아 군사들을 몰고 나가서 적을 공격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위군이 홍수로 혼란에 빠져있을 때 공격하면 위군을 격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 이르러서도 비는 소식이 없었다. 성 안의 식량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어 군사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두 아들과 함께 작은 성문을 굳게 지키고 있던 문흠은 군사들이 굶주림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 보다 못해 제갈탄을 찾아갔다. "식량과 마초가 바닥나서 굶어죽는 병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북방에서 동원해..

삼국지 2022.05.14

사마소의 전횡(專橫)과 반발하는 제갈탄 ( 1 )

삼국지(三國志) .. (408) 사마소의 전횡(專橫)과 반발하는 제갈탄 ( 1 ) 강유가 큰 패배 이후, 제 스스로 벼슬을 깎고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동안, 위나라에서 등애는 진태와 함께 큰 잔치를 열어 전쟁에서 고생한 삼군에게 넉넉한 상을 내렸다. 진태가 낙양에 표문을 올려 등애의 공을 알리자, 사마소는 등애의 벼슬을 높이고 그의 아들 등충을 정후(亭侯)로 봉했다. 위주 조모는 연호를 정원 3년(256)에서 감로(甘露) 원년으로 고쳤다. 사마소는 황제의 윤허를 받지 않고 스스로가 대도독(大都督)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삼천 명에 달하는 효장(驍將)의 호위를 받으며 다녔고, 조정의 모든 정사를 위주 조모에게 아뢰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결재해버렸다. 사마소의 마음 속에는 찬역(簒逆)의 싹이..

삼국지 2022.05.13

강유와 등애의 대결 ( 1 )

삼국지(三國志) .. (407) 강유와 등애의 대결 ( 1 ) 사마사가 죽고 대권이 그의 아우 사마소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은 성도(成都)에 빠르게 알려졌다. 강유(姜維)가 위나라의 소식을 듣자마자 후주 유선(後主 劉禪)을 찾아 뵙고 아뢴다. "사마사가 죽고 사마소가 권력을 잡은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사마소는 낙양을 쉽사리 비우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이것을 기회로 삼아 위를 정벌하여 중원을 회복하고자 하옵니다." 후주는 선선히 허락했다. 강유는 곧장 한중으로 가서 군마를 정돈하며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강유로서는 중원 회복을 위한 세 번째 출정이었다. 이번에도 또 실패하면 후주를 뵐 면목이 없을 것이었다. 강유가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데 정서대장군 장익(征西大將軍 張翼)이 강유에게 말한다. "우리 국..

삼국지 2022.05.11

반란의 결과는

삼국지(三國志) .. (406) 반란의 결과는 관구검(毌丘儉)과 문흠(文欽)의 반란 소식에 사마사는 먼저 진동장군 제갈탄(鎭東將軍 諸葛誕)에게 예주(豫州)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여 안풍진(安豊津)으로부터 수춘(壽春)을 공격하게 했다. 이어서 정동장군 호준(征東將軍 胡遵)으로 하여금 청주(靑州) 일대의 군사를 이끌고 초(譙)와 송(宋) 지역으로 나가 관구검 군의 퇴로를 끊게 하는 한편, 간군 왕기(監軍 王基)에게는 전군(前軍)을 이끌고 진남(鎭南)을 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사마사 자신은 주력군을 양양(襄陽)에 주둔시키고 문무관원들을 장막으로 불러모아 대책을 상의했다. 광록훈 정포(光祿勳 鄭褒)가 말한다. "관구검은 꾀는 많지만 결단력이 부족하고, 문흠은 용맹하지만 지혜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가 생..

삼국지 2022.05.09